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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이외수
Lee Oi soo,李外秀
해탈의 경지를 알고 싶으면 물풀을 보라.
물풀은 화사한 꽃으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도 않고 달콤한 열매로 물짐승들을 유인하지도 않는다. 봄이면 연둣빛 싹으로 돋아나서 여름이면 암록빛 수풀로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다갈색 아픔으로 흔들리다 겨울이면 조용히 스러지는 목숨. 그러나 물풀은 단지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채 살아가는 방법 하나로 일체의 갈등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생명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의지대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오르지 물살과 합일된 상태로만 흔들린다. 진정한 사랑도 합일에 있고 진정한 깨달음도 합일에 있다. --- p.136 - 138 |
좀도둑은 만 개의 자물쇠가 있으면 만 개의 열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큰 도둑은 한 개의 열쇠로도 만 개의 자물쇠를 열 수 있다. 깨달음이란 천지만물이 간직하고 있는 진리와 사랑의 알맹이를 한 개의 열쇠로 감쪽같이 도적질하는 일이다.
--- p.63 |
인간은 네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 어떤 눈을 개안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크기도 달라진다. 여기 잘 익은 사과 한 개가 있다. 보는 눈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열거해 보이겠다. 육안, 가장 저급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눈이다. 육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에게 사과는 단지 둥글고 붉은 빛깔의 음식물에 불과하다. 음식물을 먹어치우는 일이 곧 음식물을 사랑하는 일이다. 뇌안. 육안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로 진화된 눈이다. 뇌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린다. 그에게는 탐구가 곧 사랑이다. 그러나 본성에 이르지 못하고 현상에만 머물러 있다. 심안. 현상을 떠나 본성에 이른 눈이다. 심안을 가진 인간의 사과에 감동한다. 그야말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인간이다. 영안으로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은 깨달음을 얻은 자다. 신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과 자신의 본성과 사과의 본성이 하나로 보인다. 비로소 삼라만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본문 중에서 |
우리의 평균 수명은 인간들의 시간으로 삼천 년이다. 하지만 인간계에서 이백 살이 될때까지 깨달음을 얻은 인간을 만나지 못하면 허공에서 소멸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백 살이 될 때까지 깨달음을 얻은 인간을 만나 도림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깨달음은 도깨비들의 절대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 p.59 |
어디에 진리와 사랑이 있는가. 천지만물 어디에나 진리와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욕망과 허영에 눈이 멀어 진리의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진리의 껍질에만 한눈을 팔고 있다.
--- p.62 |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과 절연하는 방법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세상과 조화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조화로움이 곧 아름다움이니까요. --- p.109 |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랑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
'물풀을 보라, 물풀은 화사한 꽃으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도 않고 달콤한 열매로 물짐승들을 유인하지도 않는다. 봄이면 연둣빛 싹으로 돋아나서 여름이면 암록빛 수풀로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다갈색 아픔으로 흔들리다 겨울이면 조용히 스러지는 목숨.' '오늘 그대가 흘린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 내일 그리운 이의 가슴에 사랑의 감로수가 되리라.' --- p.5,136-138, 219 |
그대의 인내가 그대의 고통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대의 고통이 그대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대의 사랑이 그대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지니, 그대가 우주의 중심이며, 그대가 우주의 주인임을 알게 되리라. --- p. |
군자들은 개떡 같은 말을 듣고도 천금 같은 진리를 깨닫고 소인배들은 천금 같은 말을 듣고도 개떡 같은 생각에 머물러 있네. 하지만 이승에서 맡은 배역이 다만 개떡 같을 뿐 어떤 존재든 그 본성은 아름답도다.
--- p. 140 |
감동을 모르면 눈물도 모른다. 눈물을 모르면 사랑도 모른다.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은 반드시 이면에 그만한 눈물이 내재되어 있다.
--- p.128 |
우화(寓話)가 아닌 우화(寓畵)라는 새로운 형식의 매력
이 책의 형식은 그림이 있는 에세이나 단순한 우화집이라고 하기에는 완벽하게 새롭다. 왜냐하면 『외뿔』에서 이외수는 우화(寓話)가 아닌 우화(寓畵)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에세이적인 감성이 넘치는 글'과 '명상에 빠져들게 하는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작가의 기존 어느 작품과도 또 어느 작가의 작품과도 차별되는 『외뿔』만의 독특한 매력을 내뿜는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도 힘들기는 했지만 매우 즐거운 작품이었다. 1천 장의 파지로 그려낸 작가의 신작 그림들과 텍스트 읽기의 한계를 넘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이 작품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텍스트 읽기의 힘겨움으로 책과 거리가 멀어진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외뿔』의 화자는 도깨비 몽도리로, 인간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 천계에서 밀파된 화두의 전령이다. 미풍양속이 미국풍양속이 되어버리고, 도깨비라는 존재는 어느 틈엔가 텔레토비, 몬스터, 디지몽에 밀려 나버린 세상. 몽두리의 화두는 "어디로 가십니까"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 두 질문은 모두 도의 본질을 묻는 화두로 쓰였다. 옛날 조주선사가 제자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물은 질문에 제자가 밥은 먹었노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곧 깨달음을 얻었느냐는 의미와 동일한 물음이었다. 거기에 연계해서 깨달음을 탐구하는 일을 가장 높은 공부로 생각했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질문을 일상의 인사법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무도 그것이 깨달음을 묻는 화두임을 모른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도인의 나라다. 도의 본질을 묻는 화두를 전국민이 일상적인 인사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한국이라는 나라 하나뿐이다. 도깨비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만 존재한다. 몽도리가 내려 앉은 춘천시 의암호 물속 세상은 욕망과 허영에 빠진 인간 세상의 축약판이다. 의암호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물벌레는 보잘것없는 외모와 나약함 때문에,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금붕어에게, 떼로 몰려다니며 힘을 과시하는 납자루떼에게,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베스에게 늘 시달리는 존재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호수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이 작은 물벌레는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