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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지막 햇볕으로 꽃을 피우는 시기

지금은 마지막 햇볕으로 꽃을 피우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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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6쪽 | 218g | 130*210*20mm
ISBN13 9788993703504
ISBN10 899370350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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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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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위로다

‘시를 왜 읽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이 물음에 대한 내 답은 ‘위로받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외로워진다거나 슬픔에 처했을 때, 시를 가까이하고 읽어 왔기 때문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내가 읽었던 최초의 시는 어린 시절 시골 이발관에 걸려있던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였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을 그리워하느니라

나는 평생 긴 독서와 먼 여행을 즐겨하며 살았다. 물론 성경도 불경도 읽어 보긴 했다. 그러나 솔직히 시처럼 위로받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남들이 성지 순례를 할 때, 나는 푸시킨의 도시를 워즈워스의 고향을 릴케나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마을을 찾아다녔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나라를 여행했다.

시집을 낸다는 것은 내겐 부끄러운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이상은 쓸 수 없다.’는 내 능력의 바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정도의 사람으로 비치고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나이고 나의 한계인 것을. 하지만 내 가슴에 남아 있던 미련 하나만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든 이들 내 시는 간직하고 싶은 내 마음이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표요, 나누고픈 마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 보잘것없는 시가 읽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더없는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나는 괘념하지 않겠다. 그것은 내 시가 나 자신을 위로해 줄 것이기에…….
2023년 5월
괴산 樂書齋에서
---「자서(自序)」중에서

가을에는 잠시
흔들려 보는 것도 좋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낙엽이
길을 덮을 때
바람 따라 낙엽 따라
흔들려 보는 것도 좋다

억새는 언덕에서 더욱 빛나고
어느새 투명해진 강물
구름은 그림자를 이끌고
산 너머로 흘러간다

이제
바람 따라 불려가도 좋고
구름 따라 흘러가도 좋다

가을에는 고독하게
슬픔에 젖어
잠시 흔들려 보는 것도 좋다

술렁이듯
흔들리듯
---「가을에는 잠시」중에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나간 시간은 살 수가 없고
그래서 시간은 가치 있고도 소중한 것

지금은 마지막 햇볕으로 꽃을 피우는 시기
그러니 서둘러 가라
네가 꿈꾸고 사랑했던 그곳으로
---「그가 나에게」중에서

어젯밤에 주먹 같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는데
아침에 나와 보니 이뻐서 그런지
아이고, 누가 다 가져갔더구먼……

여보, 걱정하지 말아요
밤 되면 다시 갖다 놓을 거예요
---「대화」중에서

우리 인류가 쏘아 올려 가장 멀리까지 간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 그것은 지금도 무한 우주 공간에서 미아가 된 채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겠지.

광대무변한 공간을 탐사하던 그것이 태양계의 외곽에 도달한 후, 카메라를 돌려 마지막으로 지구를 찍었다는 저 사진. 그것이 오늘도 내 마음을 경건한 세계로 이끌어 간다.

암흑 속 우주 공간에서 꺼질 듯 파리하게 빛나는 우리 별 지구. 지구는 저리도 작고 저렇게도 외롭고 볼품없는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구나.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 거기에 기대 사는 우리 인간이 더없이 중하고 신비롭지만, 우주 속 우리 존재는 그저 먼지에 불과할 뿐.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의 저자. 공교롭게도 그는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멈추지를 않는다. 폭탄이 터지고, 아파트가 무너지고, 학교 건물이 불타고, 아이들이 죽는다. 책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멀리 보고 겸손해라

욕심부릴 것도 없다
싸울 것은 더더욱 없다

서로를 친절하게 대하라
---「창백한 푸른 점」중에서

물이 저 멀리서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가끔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 보면서
흙탕물이 맑은 물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흐르던 물이 얼고 풀리는 것을 보면서
새들이 강으로 돌아오고 살다 가는 것을 보면서
물고기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자라다 때때로 먹이 되는 것도 보면서
풀이 나고 꽃이 피고 숲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면서
짐승들이 내려오고 깃들어 사는 것을 보면서
낮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흘러감으로써 깊이를 더해 가는 것을 보면서
먹이고 씻기고 키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서
나도 한 줄기 강물 됨을 생각도 해 보면서
---「강을 보며 사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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