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주역을 만난 것은 50세에 이르러서였다. 그동안 공자는 세상의 수많은 것을 이미 터득했지만 천지의 이치를 찾으며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알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삶의 목적이 오로지 깨달음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역은 만물의 근원을 밝힘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또한 깨달음을 응용해 인생에 적용함으로써 깨달음 이후에 살아가는 방법까지 밝히고 있다. 공자가 그토록 주역을 좋아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들어가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첫걸음, 4~5쪽」중에서
여기서 다시 한번 묻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주역을 공부해야 하는가? 만물의 뜻을 알고자 함이다. 인생의 뜻을 알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역이란 무엇인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만물의 뜻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만물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해간다. 주역은 바로 이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다. 공자는 만물의 뜻을 알고자 오랜 세월을 노력했다. 그러다가 주역을 발견하여 크게 기뻐했다. 주역에 바로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공자는 평생을 주역에 매달리며 수명이 짧음을 한탄했던 것이다.
인간이 주역을 공부하면 크게 발전하게 된다. 만물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 주역 공부이니 당연히 발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만물의 뜻을 공부해 커다란 뜻을 갖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 57~58쪽」중에서
‘담겨 있다는 것’의 작용은 매우 놀랍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품속에 담겨 있을 때 그 마음도 평안해진다. 무술의 달인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능력은 기술이 아니라 바로 평정이다. 그들은 많은 기술을 연마하지만 가장 갖기 힘든 게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도인들이 벽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이유도 바로 평정을 기르기 위해서인데, 평정이 없다면 생각도 얕아지는 법이다. 도인은 평정을 수련함으로써 세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들떠서 살고 있는데, 이것이 심하면 병을 초래하고 나쁜 운명을 끌어들이게 된다. 넘치지 않는 법,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양이의 태평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유연하고 침착하다. 고양이는 당황하는 법이 없고, 언제나 태평하고 행동을 하는 데는 정밀하고 침착하다. 고양이는 한마디로 침착한 동물인 것이다. 호랑이도 마찬가지다. 옛사람이 호랑이에 대해 ?의 성질을 가졌다고 말한 것은 정밀하고 탁월한 분석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나 자신부터 침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곤란한 일을 당했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는가? 참 어려운 일이다. 뛰어난 싸움꾼이었던 김두한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 싸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침착하지 못한 사람은 적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흔들려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옛말이 있는데, 이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라는 뜻이다.
---「사물의 핵심에 다가서는 길, 72~73쪽」중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가? 어린 시절은 힘이 넘친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원초적인 힘인데, 나이가 들면서 그 기운이 점점 빠져나간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의기소침해지고 생명력이 빠져 처져 있게 된다. 이 현상은 이상한 것이 아닌가? 우리 영혼은 늙었다고 변하는 존재가 아닌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몸이 늙으니 영혼이 그것에 속아서 마음마저 늙게 된 결과다. 우리는 젊을 때조차 병이 나면 의욕이 떨어지는 등 생명력이 감소한다. 주변에서 나쁜 일이 생겨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에 따라 생명력의 부침(浮沈)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고 부덕(不德)하다 아니할 수 없다. 어두움을 보면 어두워지고 밝음을 보면 밝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본연의 마음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으니 외부 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바로 주역의 괘상 ?이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일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하늘의 무한한 생명력을 깊게 확인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늘의 도, 114쪽」중에서
사람은 해서 안 될 일이 분명히 있다. 아무리 궁색해도 남의 재산을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면 그 모두 분수를 모르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욕심이 너무 적으면 의지박약, 너무 많으면 과욕이다. 진시황은 영원히 살고자 했는데, 이는 분명 과욕이다. 어떤 대통령은 법을 고쳐서라도 그 직위에 더 있고자 했는데, 이것도 과욕이었다. 인생은 열심히 목표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일에 대해 과감히 체념하는 것도 도전 못지않게 필요하다. 체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한번 하고 싶으면 누가 말려도 고집을 꺾지 못하고 무리한 행동을 한다. 과감한 체념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충심으로 타일러 선한 길로 이끌되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두어 스스로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 즉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둔다는 것이다. 불굴의 신념이란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고 덤비라는 것이지 무작정 마음만 앞서면 이는 시작부터가 옹졸한 것이다. 공자는 맨몸으로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것,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겠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체념을 잘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과욕은 반드시 후회를 낳는 법이다.
---「괘상 속의 숨은 뜻, 263~264쪽」중에서
우리 모두는 보편적이고 끝없는 저 하늘로부터 각자 태어났다. 그러고는 주어진 숙명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이란 하늘이 만들어낸 세계에 참여하는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저 아무렇게나 본능을 따라 즐거운 대로 살면 이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으므로 인생이 너무 아깝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났으므로 그에 걸맞은 삶을 영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에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 하늘의 섭리와 함께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열심히 행복하게 살면 된다. 큰 도리와 합치고, 세상에 참여하여 남을 돕고, 그러고 나서라면 마음껏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
---「나가며, 각자에게 걸맞은 삶을 위해, 274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