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밤에도 끝까지 눈물을 흘리진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의사는 이따금 “그래요…” 하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서른을 넘긴 남자가 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에도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 적절한 직업적 무심함에 오히려 안심이 됐다. 나는 마지막 망설임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울어 젖혔다.
“선생님, 전 너무 억울해요. 죽고 싶은데,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겠어요. 억울해요.”
그때 차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의사는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억울함이라는 건 어떤 의미죠?”
순간, 터치형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순식간에 눈물이 그쳤다.
물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내 증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뜻인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게는 ‘대체 너에게 억울할 게 뭐가 있느냐?’는 호통으로 들렸다. 난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에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벌어진 입으로 간신히 “아…” 하는 탄식 소리만 내면서 의사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질문만이 수만 마리의 파리 떼처럼 난동을 피우며 요란하게 두개골 안쪽을 두드려댔다.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거지?’
--- p.16~17
“화가예요.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볼거리녀의 ‘건방짐’의 핵심이었다.
화장실 가는 척, 슬그머니 가방을 챙겨 회식 자리를 빠져나왔다. 막차를 기다리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밥벌이는 따로 한다.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제였을까? 그러고 보니 손님 없을 때나 브레이크타임에 우리가 여기저기 드러누워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시시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늘 손바닥만 한 노트 안에 소묘를 끄적거렸다. 그때마다 강퍅한 직원은 제지하고 싶은데 마땅히 명분이 없어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제야 우리가 볼거리녀를 미워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 것이다. 식당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알바생이 아닌 화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겐 이방인이었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또한 그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아 도리어 우리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다. 남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믿었고, 자신의 밥벌이를 존중했지만 존경하진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 성의껏 일했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그녀에겐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 p.30~31
그러나 점차 일이 익숙해지고, 코앞에 닥친 업무 외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노동자 계급은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보니 계약직은 다시 무기 계약직, 그냥 계약직, 파견 계약직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난 파견 계약직이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계약직과 파견 계약직의 급여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났다. 그 차액은 고스란히 파견 회사의 몫이었다. 굳이 같은 돈 쓰면서 파견 직원을 쓰는 이유는 뻔했다. 필요 없어졌을 때 쉽게 자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고용 안정성이 낮으면 오히려 돈을 더 줘야 합리적인 거 아냐?’와 같은 불평을 하진 못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대부분이 계약직이었으니까.
--- p.77~79
거나하게 취한 그는 급기야 학교가 서울에 좀 가까웠거나 집안이 유학이라도 보내줄 형편이었다면 자신도 현대미술관에 갈 수 있었을 거라 했다. 어쩐지 치사한 말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난 충분히 이해했다. 세상엔 남의 상처 뜯어먹으며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도 넘쳐나는데, 우리 형은 최소한 품위는 있었으니까.
더더욱 취한 형은 문득 호수처럼 잠잠해졌다. 그리고 날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삶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거야. 꼭 창작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난 한 박자 늦게 그것이 형다운 점잖은 방식의 ‘정신 차리라’는 말임을 깨달았다. 난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투정 부리듯 말했다. “형, ‘된다 혹은 안 된다’가 아니라 ‘한다 혹은 안 한다’잖아. 난 하기로 했어.”
“꼭 찍어 먹어봐야만 아니?” 형의 반문에도 난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꼭 찍어 먹어봐야만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꼭 찍어 먹어보지 않고는 평생 후회하게 될 순간이 있다는 걸 그도 내심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p.148~149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에는 싸움이 잦다는 어느 시의 구절처럼, 가난한 동네의 편의점에는 싸움이 잦다. 우울과 외로움을 그저 터뜨리는 방식으로만 해소할 줄 아는 사람들을 대하며, 나는 경멸에 찬 혼잣말에 나 자신조차 놀라곤 한다.
“저러니 지지리 못 살지.”
어쩌면 오래전 친구의 말에 놀랐던 건 그게 비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나의 근거 없는 우월 의식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직 한 가지만은 잊지 않기를 다짐한다. 사람은 비루해서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해서 비루하다는 걸. 나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라도 비루해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기실 비루한 게 아니라 상처받았을 뿐이라는 것을.
비루한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자는 속 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날 분노하게 하고 때론 증오마저 일으키는 것은 상대의 다른 특성이 아닌 비루함이라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겠다는 것이다.
상대를 구성하는 비루함 외의 다른 무수한 특성들, 즉 성별, 세대, 출신 지역, 학력, 직업, 그리고 가난으로 분노한다면, 결국 우연히 같은 특성을 가진 다른 모든 사람에게까지 부당한 분노를 가지게 될 테니까.
뭐,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