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주변으로 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자가 당황하며 여기저기 발길질을 해댔지만, 고양이들은 떨어지기는커녕 더 늘어만 갔다. 드문드문 보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남자가 악을 썼다.
“쳐다만 보지 말고 도와달라고! 여기 고양이 새끼들이 사람 습격하잖아, 지금!”
남자의 말에 몇몇의 시선이 움직였지만, 그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며 남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근처 담벼락에 이미 수십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검은 고양이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남자의 온 사방이, 고양이로 뒤덮였다. 미야옹. 미야옹. 아기 울음소리 같던 고양이들의 울음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하아악. 카아악. 키아악!!
--- pp.9~10
“여기까지인 것 같네.”
문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런 문혁의 표정을 선오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선오가 두 눈을 깜박였다. 문혁이 선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선오의 눈을 보는 순간, 자신도 눈물이 날 것 같았으니까. 그런 문혁의 귓가에, 부드러운 봄바람 같은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알겠어.”
깨문 입술이 아팠다. 문혁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용기를 내 본 것이다. 그렇게 선오와 시선이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약간 달랐다. 선오의 눈빛은 항상 빛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희미하다. 그래. 문혁은 생각했다. 희미해졌다. 언제나 빛나던 그 빛은, 서서히 탁해지며 그림자를 찾아 웅크리고 있었다.
--- p.15
이선오. 지금 제일 잘나가는 연예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이선오를 떠올릴 것이다. 배우로도 가수로도 성공하여 수많은 팬이 존재한다. 다른 연예인의 팬들이 종종 질투심에 선오의 과거를 캐서 흑역사를 찾으려고도 했지만, 까도 까도 미담만 나오는 인성에 혀를 내두르며 오히려 호감도가 올라가기도 했다. 그만큼 완벽한, 천생 스타인 셈이다. 그런 선오의 인성은 그 누구보다 문혁이 잘 알고 있었다. 예술고 시절 동급생이자 절친이었으니.
--- p.17
노트북을 빙글 돌리며, 연모가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대한민국에서 팬심으로 노는 SNS는 한정됐거든요. 그중에 삼대장은 공식 카페가 위치한 포털 사이트, 트위터, 유튜브. 이 삼대장만 잘 노려 살피면 대부분 알아낼 수 있어요. 공카에서 집착하거나 자극적인 게시글을 올린 이들 수소문, 그리고 그 아이디나 말투 등을 트윗과 유튜브 댓글로 검색. 아, 트위터야 워낙 유명하지만 유튜브도 만만치 않아요. 렉카들 판치니까. 얻어걸리는 일도 있어서.”
점점 자신감이 붙는 말투였다. 연모가 잠깐 주리를 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카 집착 팬, 트위터 집착 팬, 유튜브 집착 팬. 아무튼 집착하는 인간들이 문제죠. 금방 나와요. 사생만 찾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연모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에 비공개 트위터 계정이 떠올랐다.
“……또 찾았네요.”
--- p.195
문혁이 뚫어져라 선오를 쳐다보았다. 대사를 해야 하는데 가슴 한구석이 탁 막힌 느낌이다. 문혁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오필리어여. 나는…….”
“저를 사랑하나요?”
“나는…….”
“저를 사랑했었나요?”
“당연히. 내 사랑은 언제나 당신이었소.”
약을 타 가지고 돌아온 아린이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선오가 눈을 감더니,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오가 눈을 뜨더니, 그대로 문혁을 보며 씩 웃었다.
--- p.219
주리가 상체를 숙이더니 빠르게 돌진했다. 갑자기 달려드는 주리에 놀란 경호원 중 하나가 팔을 내밀었지만, 순식간에 위빙으로 피한 주리가 허리를 틀며 그대로 경호원의 턱을 라이트훅으로 갈겼다. 턱이 제대로 돌아갔는지 휘청거리던 경호원이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나머지 경호원과 레이가 놀란 눈으로 주리를 쳐다보았다. 쓰러진 경호원보다 덩치가 더 큰 경호원이 양팔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주리가 씩 웃었다.
“복싱? 누구 앞에서 지랄이야!”
주리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경호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워낙에 덩치가 컸기에 위압감을 느낀 주리가 뒤로 잠깐 물러섰다. 카운터펀치를 노리는 순간, 덩치의 목이 꺾이며 기괴한 비명이 룸 안에 울리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주리가 놀라며 아린을 쳐다보았다.
“와…… 언니 방금 뭐예요?”
“하이킥. 나 킥복싱 유단자야.”
--- pp.234~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