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을 만나며 그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영적 경험들을 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그때 알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장, 도살장, 외국인 구금소, 장애인 시설, 쪽방촌, 강제철거 현장, 그 모든 것은 내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 존재했다.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자 아픔의 범위도 그만큼 확장되었다. 가지치기 당한 도시의 나무들을 보면 그들의 손목 발목이 잘린 것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나의 손목 발목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그런 실질적 연결의 감각을 기존 운동의 언어로는 말하기 어려웠다. 느낌, 체험, 경험 같은 것은 전문성이 결여된 감성의 차원으로 이해되었다.
---pp.13-14 「혜린 ‘삶이라는 기도'」 중에서
건강한 지구, 건강한 문명은 조화롭고 아름답다. 디지털 혁명을 통해 인간은 이제 비인간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돌고래의 초음파 메시지를 분석하고 꿀벌의 춤을 패턴 인식한다. 산과 바다, 숲과 도시의 에너지를 데이터로 주고받는다. 인간의 언어라는 이성적 감옥에서 탈출한다. 5만 년 전 인지혁명으로 열린 선천개벽의 시대가 가고 후천개벽이 온다. 우주 만물과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영성의 시대. 디지털 문명의 풍류도는 생태음악이다. 지구의 소리, 마음, 에너지, 기氣를 온전히 모시고 그 흐름을 따른다. 일단 듣자! 지구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한번 경청해 보자. 바다님과 땅님의 마음은 얼마나 넓은지, 물살이와 버섯은 어떤 지혜를 갖고 있는지, 나무의 생각은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귀 기울일 때다. 듣고 나면 무엇을 할지 보인다.
---pp.30-31 전범선 ’풍류란 무엇인가‘」 중에서
핵심어는 영이나 믿음이 아니라 사람, 관계로 전환된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 곧 동·식물 등 다른 생명체뿐 아니라 바위, 바람 등 비활성 무생물에 속한 존재까지도 ‘사람person’으로 여기고 (그렇게 부르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태도, 세계관, 문화, 삶의 방식을 다루는 것이 새로운 애니미즘 논의이다. 이런 논의에서는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에서 살아있는 일원으로서의 인간-사람이 다른 살아있는 존재인 비인간-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갈 것인가를 주로 다룬다. 토착 인디언들이나 현대 페이건들, 일부 생태주의자들을 포함한 애니미스트들은 잘못된 추론에 근거해서 세계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면서 적절히 관계 맺으려 애쓰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pp.36-37 유기쁨 ‘새롭게 호명되는 애니미즘’」 중에서
페터 춤토르는 세 평 남짓한 작은 성소를 만들면서 건축의 본질은 공간도 장식도 상징도 아닌 존재 자체라고 말한다. 건물과 풍경이 조화하는 것,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재료의 성질을 이용해 정직하게 구축하는 것, 제작과 짓기에 투입된 시간과 노동의 흔적을 남기는 것, 건축 이외에 아무것도 참조하거나 재현하지 않는 것, 경험을 통해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리하여 건물이 자리할 곳에 하늘, 땅, 사람, 영성을 모으는 정주의 터를 만드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건축이다. 이는 『건축, 거주, 사유』에서 “거주란 죽을 자들이 땅 위에 존재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사방 개념을 계승한 것이다. 찰나를 살다 가는 인간은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고유함을 존중하고 보살피며 더불어 살아갈 때 생존이나 숙식의 문제를 넘어 세계의 일부로 관계할 수 있다.
---pp.137-139 남상문 ‘죽을 자들이 땅 위에 존재하는 방식’」 중에서
밭에서 핀 꽃들을 아낌없이 잘라 집의 화병에 꽂고, 텃밭 산책을 같이 한 친구들의 손에도 마음껏 들려 보냈다. 텃밭의 꽃을 실내에 들인다는 것은 수 겹의 꽃잎 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검정주황색 애벌레와 인사하는 일, 연두색 진딧물의 꽃가지 행진을 구경하는 일, 꽃병을 받친 헝겊에 아무도 모르게 고치를 짓고 잠든 초록 애벌레를 깨우는 일 그리고 희고 노란 꽃가루 분진이 방바닥에 나날이 덮이는 두께를 셈하는 일. 그저 시장에서 채소와 꽃을 사기만 할 때에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미지가 내 생활에 뒤섞여 침입했다. 텃밭 가꾸기는 그곳에서 내 몸에 이로운 것을 수확해 소비하는 것을 넘어, 위험하기도 한 자연의 것들의 침입에 나를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p.165 윤경희 ‘작물기Ⅳ’」 중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나는 나 아닌 존재들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당신과 나를 이만큼 길러낸 손길들, 생명들 그리고 태초에 선물로 주어졌던 햇빛, 공기, 물, 대지를 떠올려 보라. 십시일반 기본소득은 다만 나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많은 이들 중 일부를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눈에 보이게 했을 뿐이다. 덕분에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실은 나의 안녕은 다른 이들의 안녕에 깊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나에게 삶이라는 선물을 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보는 것, 그것이 십시일반 기본소득과 생태영성이 만나는 지점이라 생각된다. 기꺼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꺼이 은혜를 입고 베풀며, 기꺼이 의지하고 의지가 되어주는 삶, 그런 삶을 같이 살고 싶다.
---p.214 김소연 ‘존재를 응원하는 십시일반 기본소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