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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레시피가 다르다

숲은 레시피가 다르다

시와사람 서정시선-089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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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80g | 125*200*20mm
ISBN13 9788956656724
ISBN10 89566567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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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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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들녘이 물들어가는 영상을 넘어
소파가 고개를 숙이는 거실로
우화의 강을 건너온 들신선나비
물이랑을 헤친 몇 번의 탈바꿈이
날갯짓에 반점을 새겼으리라
몸을 바꾼다는 것은
비상하기 위하여 때를 움츠린 것
이윽고 더듬이 턱 밑 숨을 고르고
낯선 풍경을 찾아 검색하러 나선다
나른한 오후를 밝히며
벽 등을 켜고 있는 앱 스토어에 깃을 치더니
꿀을 보채는 듯
접었다 폈다 접다 편 자리
말없이 뒷짐 지고 있어도 많은 말을 담고 있는
안개 걷힌 몽유도원도
향내가 수묵처럼 번진다
---「가을 우화」중에서

삼인산 은행나무 오솔길에
노랑 일색의 해름참이
주위를 환하게 겸손해 한다
황색 가사를 두른 바위에
허공이 심연의 눈길로 가부좌하고
눈부처님, 금빛 장삼 여미며 선정에 드신다
방하착의 바람이 쓸고 간 성근 숲길
청동빛 백팔 나한은
근육질의 기둥 곧추세우며
하늘 전각을 받들어 새길 닦는다
품을 비워가며 여백은 깊어가는
늦가을 풍경 안으로
고양이 한 마리 주뼛거리며 들어와
가만, 어디쯤 우리 맞닥뜨린 적 있었던가
산 그림자 낮은 곳으로 깃들이고
구절초 한 송이 눈가에 가는 미소 지그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반가사유하는 그 길머리
---「11월의 반가사유」중에서

손목터널증후군이라고 했다
손목에도 터널이 있어 물길처럼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누구는 나이테에 옹이 박힌 거야 했지만
탈이 난 오른손 몫까지
챙기느라 무리했구나, 짐작했다

호미질하고 차 마시고
마우스의 살랑대는 꼬리 쫓느라
홈쇼핑에 웹서핑, 입술 부르튼 채팅마저
손목이 핑핑 팅팅할 지경이다

지도에 없는 물줄기가
시와 독자 사이에 길을 내듯이
사람 사는 일이란 그저 손목과
손목으로 도랑 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저리다 못해 화끈거리면
지친 잠이 상대 잠을 부르곤 하였다
붕대를 동여매고 사족처럼 한풀 덧 감으며
당신, 발을 구르며 용을 써도
손목은 45도 이상 구부러지지 않아
---「45도의 경고」중에서

저문 단풍과 첫 서리의 어디 쯤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는 어느 거리에서
동동 걸음으로 마주치는 그대,

그대가 아니면
추위로 가는 길모퉁이에
하냥 은빛 머리 억새로 서서
손 흔들어 배웅할 수 있을까

한 해의 은혜를 갈무리하는 이즈음에
잎잎을 오방색으로 단장하고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 연습을
조곤조곤 할 수 있을까

11월, 그대 있음으로
날로 야위어 가는
산 그림자에게 드러난
내 안의 웃자란 헛가지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지치기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대 안의 11월 - 11월은 가지치기하며 온다」중에서

붓을 들어
덧칠하지 말 것

스스로 가득한 여백에

하나 둘 내려놓는
이 무렵은

거침없이 뛰어들어
한 몸이 될 것
---「가을 채석강」중에서

한 무리 배꽃이 수틀을 넘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아 올린 손길마다 송이 꽃 흐드러진다
색색의 자수가 학익진을 펼치는가 싶더니
바지런히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가늘게 네 몸을 통과할 때마다
한 땀씩 혈을 따라 배어나오는 신음소리
바람은 차츰 꽃그늘 짙게 드리운다
그 아래 땀을 들인 한 사내
먼지 걸친 배낭 벗지 못하고 추스른다
부리지 못한 달팽이집처럼
평생 지고 다니는 시름이 입맛 다신다
갈 길은 까마득한데
허리 들쑤시고 발목은 시큰거린다고
꽃잎에 새긴 백년이 점점이 어룽진다
---「꿈꾸는 백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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