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형식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신인 지망생들의 작품을 여기에서 직접 들춰보긴 어려우므로 4천여 편의 예심을 마친 『중앙일보』 기사(2015.9.4.)를 읽어본다.
손택수 씨는 대뜸 “태양이 너무 눈부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상태와 같은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촘촘하게 배치해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쳐 정작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작품들을 그렇게 평한 것이다. 강동호 씨는 세련된 스타일이 대세로 느껴질 만큼 내용보다 기량이 승한 작품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강 씨는 “특히 40대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의 응모작 가운데도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 선생들이 주로 젊은 느낌의 모던한 시를 가르친 결과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건 전통 서정시다. 소수,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강 씨는 “형식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중에서
기형도의 시 「물속의 사막」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여름 밤 장맛비, 빌딩 안, 밤 세 시. 도심 속의 한 점 섬인 양 완벽하게 단절되고 구원이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는 갇혀 있다. 제목에서의 '사막'은 막막한 절망의 심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지된다,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통과하지 못한다" 등 부정 어법에서 끼치는 절망감은 흑백의 대비적인 풍경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 속에서 “밤, 석탄가루, 검은 유리창”과 함께 “흰 개, 비, 비닐집, 환한 빌딩, 와이셔츠 흰빛”의 흑백 대비는 어쩌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세시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푸른 옥수수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뿐, '무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기형도의 ‘물 속의 사막’ 감상」중에서
이 시에서는 축산농민과 소, 돼지의 위치가 전복돼 나타나 있다. 마스크를 쓴 소들이 우리에 갇힌 농민들을 끌고 나와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 어디서 봤더라, 이런 장면을…. 아, 그건 1980년 5월 광주에서 본 그 장면 아닌가. “어둠이 검은 것은 슬픔 때문이다”라는 경구(警句)가 검은 상복처럼 낮게 깔리고, 다시 장면은 비록 비유의 몸을 입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살해의 연속. 깊이 파헤친 흙구덩이 속으로 한꺼번에 몰려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의 모습, 그게 오늘 우리들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렇게 묻는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고통」중에서
…저 물고기/ 절 집을 흔들며/ 맑은 물소리 쏟아 내네/ 문득 절 집이 물소리에 번지네// 절 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풍경(風磬)」 부분
절 집의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그 쇠로 된 물고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울려내는 맑은 물소리. 시인의 어법을 잘 드러내는 이 시의 묘미는 '뒤집기'에 있다. 절 집에 매달린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가 절 집을 물고 있다는 것. 세계를 뒤집어 생각하기에서 시인은 영감을 얻는 것일까.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저수지 전체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도로 내립다 칠 때"라고 낚시터의 풍경을 묘사한 시 「저수지에서 생긴 일」도 바로 그런 식의 발상이다.
---「전복과 함축된 여백, 서정춘 시집 『봄, 파르티잔』 중에서
내가 바라보는 왼쪽(東)에 동작대교가 보이고 관악산을 오른쪽으로 끌며 한강대교(西)가 서 있습니다. 그 옛날 초대 대통령이 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남보다 먼저 피신한 다음 한강 이북의 서울 시민들은 나 몰라라, 인민군들에게 떠맡기고 부숴버린 한강철교가 있던 곳. 더 아래로 마포 쪽입니다. 거기 있는 원효로 부근 강변3로 어딘가 자기 오빠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다고 정부가 암암리에 뒤집어씌운 정인숙 여인 피살사건의 슬픈 현장이 있습니다. 정인숙 여인의 어린 아들의 귀가 마치 누구의 쪽박귀를 쏙 빼닮았더라는 풍문이 그 당시 국회 안에서 회자되던 뒤끝이었습니다.
졸시 「강변북로」는 관악구를 2011년 1월에 떠나 강 건너 용산구 이촌1동으로 이사한 그해 3월에 쓰고 격월간 《유심》 5/6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자작시 해설 「강변북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