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건물 앞에 서 있는 경비원에게 다가가 달라이 라마를 뵈러 왔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는 듯 9시 넘어서 오란다. 나는 돌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런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아마도 그 긴 시간 동안 험한 길을 달려오면서 태연한 척 억눌러왔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리라.
울고 있는 나를 본 경비원들이 뭐라고 보고했는지, 비서라는 분이 나왔다. 여기서 울지 말고 숙소로 가서 차 마시고 쉬었다가 9시 넘어서 오란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주워섬기며 떼를 썼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우리 교수님이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고 빨리 돌아가야 한다, 그냥 이대로 있을 테니 달라이 라마를 뵙게 해달라….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비서는 달라이 라마의 수석비서 텐싱 케실라였다. 달라이 라마가 외국을 나가실 때 항상 곁을 지키고 있는 분이다. 이분이 훗날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크라잉 걸crying girl'이다.
내 모습이 너무 가여웠는지, 두 시간 뒤에 돌아온 텐싱 케실라가 나에게 따라오란다. 눈물 콧물 흘리며 그분을 따라 언덕을 올라갔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붉은 태양이 내 앞에 서 있다고 해야 하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달라이 라마께서 그 큰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안으로 이끄셨다.
나는 그분의 발밑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실컷 울었다. 일생 동안 더 나올 눈물이 없을 만큼 울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경호원들과 비서들이 당황해하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달라이 라마께 잡힌 손을 슬그머니 빼었을 때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제 다 울었느냐?”
그러고는 비서에게 녹음기를 가져오라 하셨다. 말씀을 녹음해주신 뒤, 돌아가서 천천히 들어보라고 하신다. 무슨 말씀을 녹음하셨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p.19
다음 날부터 사흘 동안 나는 의술 린포체 옆에 앉아 모든 치료 과정을 지켜보았다. 온갖 생각과 마음 너머, 개념의 유희나 감정 따위가 전혀 없는 나라에서 3일을 살았다. 경전 읽고, 환자 힐끗 보고, 버터차 한 모금 마시고, 또 경전 읽고… 말 한마디 없다. 약도 침도 없다. 그의 혀가 모든 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각양각색의 환부를 혀로 핥아주신다. 아픈 부위가 어디여도 상관없었다. 귀에 고름이 잔뜩 끼어서 온 할아버지, 관절염으로 다리를 끌고 다니는 아주머니, 피고름이 잔뜩 낀 피부병으로 온 젊은 남자, 발가락 사이가 짓물러 터진 어린 소녀…. 아… 나는 얼굴을 돌리고, 찡그리고, 헛구역질하고, 못마땅해하고,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멈추는 별별 경험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첫날은 비위가 상해서 하루 종일 굶었다.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에 또 갔다. 그분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것이 축복이다, 이것이 축복이다' 되뇌면서….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역겨움과 메스꺼움뿐이었다. 그러는 내가 싫어서 눈물이 났다. 눈물을 훔치는 나를 린포체가 힐끗 보시고는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신다. 그리고 더 큰 소리로 경전을 읽고 또 읽는다.
--- p.48
니란잔 총장님을 모시고 한국에 왔다. 춘해대학과 제주대학에서 큰 세미나와 워크숍을 했다. 아마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처음으로 요가를 제대로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니란잔 총장님은 요가철학에 대해 강의하고, 영적 수행을 위한 도구로써 요가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설명하고, 명상과 각성에 대한 이론과 훈련법을 전하는 등 큰 업적을 남기셨다. 그 중 하나가 춘해대학 안에 생긴 요가학과이다. 당시 이 학과에서 공부했던 학생이 지금은 학과장으로 헌신하고 있다.
요가의 기본 학문과 철학에 중심을 둔 비하르 대학원 대학교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것이 니드라 행법이다. 요가 니드라는 탄트라의 한 형태이다. 잠을 자는 것도,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으로 통하는 내부의 방을 여는 것과 같다. 이 행법을 통해 우리는 내면적인 의식의 단계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게 된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내자의 목소리만 따라 하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눈을 감고, 몸은 침묵한다. 마음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 있으면 되고, 집중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조절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나의 육체를 잘 살펴본다. 육체라는 아름다운 방에 누워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분석하거나, 노력하거나, 집중하지 말라…. 여러 명상법 중 제일 쉽고 간단하다.
--- p.91
신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우리들은 신에 대해 알 수가 없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영성의 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길이 실제로 우리 안에 존재하더라도 물리적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우리 몸 안의 세포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신은 여기도, 저기도 있다. 어디에도 있다. 그러나 책이나 토론을 통해서는 신의 존재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안내자이다. 스승이 필요한 것이다. 신은 우리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인간의 모습을 한 화신을 보내셨고, 이들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인도해주신다. 이런 안내자나 스승이 없다면 우리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승들은 우리를 찾아온 백조이다.
--- p.107
초파일 행사가 끝나고 저녁공양을 마친 뒤에 서옹 큰스님이 나를 방으로 부르셨다. 등 하나를 주시면서, 위에 있는 암자에 다녀오라 하신다. 이 시간에…? 초 하나를 더 주시면서, 다 꺼지기 전에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것을 들고, 늘 큰스님 모시고 산책 다녔던 산길을 따라 암자에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이면 올라가던 그 길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나는 초 두 개가 다 타도록 암자에 도착하지 못했고,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맸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무서웠다. 문득 큰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밤길을 가다 길을 잃으면 하늘을 보아라.'
두려움에 떨며 올려다본 하늘… 칠흑같은 어둠 속에 떠 있는 별과 달…. 나는 평화로움 속에 서 있었다.
--- p.154
‘지금은 읽어도 이해하기가 힘들 거야' 하시면서도 매일 원효 대사의 《초발심자경문》을 풀어주시던 큰스님. 목욕재계하고 작은 법상 위에 경전을 올려놓고 앉아 큰스님을 기다리던 시간들이 보석과 같은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미약한 존재를 위해 가사장삼 두르시고 경전을 가르쳐주시던 스님. 당신께서는 거칠고 메마른 제 영혼의 싹을 키워주셨습니다. 그 덕분으로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제게 왜 그리하셨는지 이제는 알았습니다. 스님의 큰 자비심과 깊은 바람 귀하게 간직하고 더욱 정진하여 이 생을 마감할 때 스님 계신 높은 의식의 장으로 가겠습니다.
--- p.166
우리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위기가 발생한다.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은 없다.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고, 세계적인 격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안에 평화가 있다면 마음의 안정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마음의 안정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의 질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불행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 불행은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을수록 걱정은 많다. 걱정이나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말라. 미래를 염려하지 말라. 남들을 비판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라. 걱정이나 두려움, 그리고 불행을 주는 생각과 느낌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런 것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내면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명상을 통해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 p.233
위저드 코스는 다시 미국 올랜도에서 했다. 이곳에서 해리 팔머를 두 번째로 만났다. 코스 중에 해리와 함께 호텔 복도에 애들처럼 쪼그리고 앉았을 때, 그분이 나에게 아주 조용히 말했다.
“네가 하는 공부에 팁을 하나 주고 싶은데….”
“당연히 알려주셔야죠.”
그분은 매우 진지했고, 진한 사랑의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 불안은 뭘까…?
“넌 지금 갑옷을 입고 있어. 그걸 벗어야 돼.”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면서 뭔가가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맞다!’ 머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양심은 알고 있었다. 갑옷이라니! 내가 갑옷을 입고 있다니…. 인도에서 10년 넘게 수행 생활을 하고 온 나의 에고가 아직도 이토록 두껍단 말인가…?
갑옷을 벗기 위해 그 뒤로 7년 넘게 아봐타를 했다. 국제 트레이너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하던 어느 날, 해리 팔머가 나를 놀리듯이 말했다.
“아무도 코리아 문에게 활을 쏘지 마시오. 문은 갑옷을 입고 있소.”
그분께 감사드린다. 아봐타를 못 만났다면 아직도 갑옷으로 나의 부정직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게 있다는 생각도 못 하고 지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명상으로 다 녹여내지 못한 때를 닦아내고 있다.
거미가 열심히 거미줄을 짠다. 아름다운 거미줄이 완성되었을 때, 거미는 자신이 쳐놓은 줄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 그것이 자신을 소유해버렸음을. 에고는 그런 것이다.
--- p.243
마음을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에 비유한다면, 어항에 있는 물은 의식이고, 금붕어는 생각이나 개념들이고, 금붕어의 배설물들은 우리의 감정이다.
영적 작업에서는 이해 자체가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해는 내적인 성숙과 영적 발전을 가져다준다. 영적 노력은 잘못된 관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관점을 선택하는 것이다.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되는 또 다른 요소는 성급함, 조급증이다. 천천히 바르게 훈련하는 것이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 성급하게 마음과 싸우려 드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다.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우리 안에 있는 영적 힘과 에너지, 그리고 더 높은 에너지장들, 스승들과 그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컴퓨터로 치면 의식은 하드웨어이고, 사회적 프로그래밍은 소프트웨어이다. 소프트웨어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하드웨어는 여전히 물들지 않은 채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진리는 원래 단순하다. 우리들의 에고가 만들어낸 온갖 환상이 그것을 복잡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 뿐이다.
--- p.263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은 한국에 계시는 동안 고찰을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박사님을 모시고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그분의 오래된 전생에 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펩시콜라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분을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했다.
박사님은 진심을 다해 한국인들을 사랑하셨다. 한국인들을 위해 ‘한국의 밤’도 열어주셨다. 우리들은 해마다 박사님의 삿상을 듣기 위해 세도나로 갔다. 100명 넘는 사람들이 단 네 시간의 삿상을 듣기 위해 그 먼 거리를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다녔다.
영성의 영역은 의식의 영역이기도 하다. 영적 성장은 의식의 여러 측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스승의 역할은, 유서 깊은 가르침들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설명하고 통찰함으로써 헌신자들을 완전한 존재가 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박사님의 설명은 명쾌하다. 마음에는 ‘생각하는 마음’과 ‘아는 마음’이 있다. ‘아는 마음’을 곧 ‘앎’이라 하고, 이 ‘앎’을 통해 수행해야 한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영적인 앎을 촉진하고 인류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 p.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