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뻣뻣하게 굴다가는 이번처럼 비싼 값을 치르게 될 거라는 메시지였다. 너 같은 생짜배기는 많았다. 그런 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개인적 공명심으로 법을 휘두르지 마라.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 p.10, 「곤희」
실내는 서늘했다. 습관인 것 같았다. 손수건은 잘 다림질되어 있었다. 다림질해 접은 게 아니라 접어 다림질했다.
--- p.11, 「곤희」
함께 있는 동안 알게 된 거지만 곤희는 자신의 불행을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쩌면 그런 교환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몰랐다.
--- p.18, 「곤희」
“원했어, 원했다고 생각해?”
“원했다고 생각해요.”
두 눈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피곤이 몰려왔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좀 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 p.33, 「곤희」
꼬막. 나는 매번 쓸모없어지고 마는 세이프워드를, 우리가 지었고 그가 허문 룰을 다시 한번 말했다. 아직. 선배는 아직이라고 했다.
--- p.36, 「곤희」
병동 사람들은 그 여자를 피자언니라고 불렀다. 자기는 환자가 아니라고 믿는, 자기만 환자가 아니라고 믿는 모든 환자들을 비롯해 의사와 간호사, 보호사, 방문객까지.
--- p.45, 「마음만 먹으면」
그 애는 짧고 통통한 손가락을 꼽아가며 유치원에서 배워 온 F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주워섬겼다. “패밀리…… 플라워…….”
“또?”
아이가 히죽 웃었다. “퍽 유.”
--- p.49, 「마음만 먹으면」
나는 불행과 우연히 충돌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연에는 이유가 깃들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기억이 쫓겨나며 많은 것을 데리고 갔다.
--- p.56, 「마음만 먹으면」
마음만 먹으면. 그게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나는 이제부터 수도 없이 배울 터였다.
--- p.70, 「마음만 먹으면」
내가 아는 한 마음은 단수형이 아니었다. 하나로 온전했던 게 부서진다기보다는 바투 분분했던 게 흩어지는 쪽에 가까웠다. 그 편이 덜 아프다는 건 축복이었다.
--- p.72, 「마음만 먹으면」
호아는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만 하엘이를 돌봐줘.” 호아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 p.81, 「새끼돼지」
하엘은 사촌형부 내외의 자식들과 함께 자라며 오랜 세월 눈칫밥을 먹은 것 같았다. 누군가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아예 제 존재감을 지운다는 인상이었다.
--- p.83, 「새끼돼지」
파인애플은 식탁 위 접시들 사이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수빈이 떠먹여주는 투명한 밥을 받아먹으며. 수빈은 이제 파인애플 인형을 하엘과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믿었다.
--- p.91, 「새끼돼지」
만약 베트남으로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촌형부를 손봐줄 것인지. 하엘의 의사는 확고했다. 사실 그 질문을 통해 내가 알고자 한 건 복수 여부가 아니었다. 하엘이 엄마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는지 아닌지였다.
--- p.99, 「새끼돼지」
“닥쳐.” 그가 말했다.
“그래.”
나는 부엌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부엌으로 나와 어둠 속에서 그를 두들겨 팼다.
우리의 불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수빈이었다.
--- p.101, 「새끼돼지」
그다음 일들은 오로지 시간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산주는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기보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리라는 것을 아는 쪽이었다. 그 애에게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 p.112, 「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