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삼중의 경관은 크기나 정원 재현과 분재 모방에 이르기까지 몇 겹의 축소를 거쳐 총체를 구성한다. 상룡석은 정원 공간에서 길조를 이루고, 비파나무와 창포는 상룡석에서 다른 두 종의 길조가 되었다. 그것은 함께 더욱 큰 상서로운 경관을 구성한다. 상서는 제왕 통치에 대한 하늘의 포상이다.
---「「영험한 현상의 재현─「상룡석도」의 다중 경관」, 31쪽」중에서
음력설(춘절)은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며, 음력설 축제의 절정은 원소절에 있다. 남송 때 조정에서는 거의 매년 원소절마다 북송의 관습에 따라 황궁 밖에서 원소절 경축 행사를 거행했다. 백관에게는 보통 3일 내지 5일 정도의 휴가를 주었고, 백성들도 황궁 입구에서 원소절 공연을 관람했다. 이는 북송 때부터 내려오던 관습으로 그 취지는 “천자는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天子與民同樂)”이다.
---「「1220년의 원소절─「답가도」와 황성의 길조」, 44쪽」중에서
둥글부채 왼쪽의 공연 내용은 대부분 국가의 일과 연관이 있다. 소수민족의 무도, 유교?불교?도교의 삼교 관계, 혹은 이민족의 공물 상납, 전쟁터에서의 목숨을 건 싸움 등은 모두 국가 사무에 속한다. 둥글부채 오른쪽의 공연 내용은 확연히 달라서 대부분 익살스러운 일상을 보여준다. 하단의 핵심은 일산을 든 부부 한 쌍이고, 중간의 핵심은 젊은 부부 한 쌍으로 부인은 손으로 어린아이를 안고 있다. (……) 둥글부채 왼쪽이 ‘나라’와 정치의 일이라면, 둥글부채 오른쪽은 바로 ‘가정’과 일상의 일로, 이를 합하면 완벽한 ‘내’ ‘외’ 균형과 ‘국가’ 개념을 구성한다.
---「「공주의 부채─「백자도」와 남송 황실 혼례」, 53쪽」중에서
진관이 보기에 연리송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었다. 일반적으로 남녀의 정, 즉 애정을 상징한다고 여겼으나, 친구 간 감정의 증표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소나무는 근본적으로 군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연리송은 문인이라는 맥락에서는 애정이 아니라 한마음 한뜻이 되는 두 군자이다.
---「「깊은 궁전의 사랑─「장송누각도」의 비밀」, 74쪽」중에서
깊은 산의 고송에는 솔방울이 맺히기 쉬우며, 솔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솔방울이 땅에 가득한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 그곳은 확실히 그윽하고 고요하며 속세와 격리된 환경일 것이다. 간섭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직시하여 선리를 깨닫기 쉽다. 목계 그림 속의 구관조를 자신의 깃털을 정리하기보다는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으로 볼 수는 없을까?
---「「깨달은 구관조─「팔팔조도」와 선승」, 199쪽」중에서
시간 개념인 사계는 중국 회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사람은 ‘사계’라 말하지 않고 ‘사시’라 불렀다. 유가 경전 『예기』에서는 “하늘에는 사시가 있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天有四時, 春夏秋冬.)”라고 했다. ‘사시’가 없으면 ‘천(天)’이 될 수 없다. 또다른 유가 경전이자 사전의 원조인 『이아(爾雅)』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말했다. “봄은 창천이고 여름은 호천이며 가을은 민천이고 겨울은 상천이다.(春爲蒼天, 夏爲昊天, 秋爲旻天, 冬爲上天.)” 춘하추동이 각각 ‘천’의 4분의 1이다. ‘천’은 자연물이자 더욱이 초자연의 신비한 역량이며 우주만물 생성의 내재적 동력이다.
---「「시간과 정치─「조춘도」의 시각적 상징」, 253쪽」중에서
송대에 백이와 숙제는 확실히 선인으로 여겨졌다. 일부는 그들이 사후에 구천복야(九天僕射)가 되어 전적으로 톈타이산을 도맡아 다스린다고 여겼다. 이러한 견해는 민간에 떠도는 전설일 수 있으나, 송대에 마찬가지로 백이와 숙제는 제왕의 추봉을 받았다. 도교를 숭상하던 송 휘종은 숭녕 원년(1102)에 백이를 ‘청혜후’로 책봉했고 숙제를 ‘인혜후’로 책봉했다. 이러한 칭호는 일반적으로 민간신앙에서 평안을 보호하는 신령에 가까운 인물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백이와 숙제를 책봉하는 조령 첫머리에 “신은 상나라 말기에 태어나 해변가로 주왕을 피해 해변가로 갔다(神生于商末, 避紂海濱.)”라고 했다. 이 형제는 이미 관방에 의해 확실히 ‘신’으로 자리잡아 국가의 정기적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채소와 선경─「채미도」의 다른 면」, 365쪽」중에서
이렇게 해서 「관화도」의 인물 관계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몸에 눈 도상을 걸친 의사이며, 그의 뒤에 놓인 노점은 의사 일을 하는 의원이다. 그는 호랑이를 탄 붉은색 도포를 입은 관원을 그린 족자 그림을 의원 노점 앞으로 온 몇몇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다. 호랑이를 타고 붉은색 도포를 걸친 관원을 그린 족자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의원 기호다. 둥글부채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의(醫)’가 이 그림의 주제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의원 노점 측면에 검은색 동물을 탄 어린이 그림을 배치했는데, 그림 속 의사가 소아과에서 명망이 높음을 표명한다.
---「「그림으로 병을 치료하다─「관화도」 속 그림」, 425쪽」중에서
원대 이래로 축국은 결코 상류층 여성의 놀이가 아니었고, 주로 교방의 공연 중 하나였다. 남성은 여성의 축국 놀이를 즐겨 보았다. 축국 놀이는 전신운동이라서 옷이 위아래로 휘날리고 머릿결이 흩날리며 땀을 흘리는 모습에서 생기는 육감적인 매력은 저항하기가 어렵다. 서서히 기생집 여성들이 점차 축국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축국은 그녀들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예 중 하나가 되었다. 수많은 남성이 기생집에 와서 기녀와 축국 놀이 하기를 좋아했다.
---「「기생집의 풍류―「축국도」와 『금병매』」, 513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