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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꽃, 흔들리다

엉겅퀴꽃, 흔들리다

시와사람 서정시선-09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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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66g | 125*200*20mm
ISBN13 9788956656762
ISBN10 8956656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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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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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삼천 궁녀의 붉은 목숨처럼
떨어진 자리에
웅성거리며 일어서는 흰 옷자락
생때 같은 여인들 애끓는 아우성에
산봉우리 놀라 휘파람 소리를 낸다
물거품이 연못 하나를 삼키고 맴돌이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는 구舊신들

나뭇잎 파란 날개 펴고 망묵굿 올리고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폭포 아래서」중에서

중생衆生을 인도하는 불경의 말씀들이
수만 송이 꽃으로 빨갛게 피어나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굽이굽이 갈래길을 따라 대웅전에
머리 조아려 기도하는 사람들
얼굴빛이 환하다

산등성이마다 불꽃으로 타고 있는
마음을 다스리며
열매 없다고 기죽지 말거라
한때 아름다운 생이면 족하니라
꽃송이를 둘러싼 수술들의
칼날 같은 죽비 소리를 뒤로하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세상속으로 되돌아 나온다.
---「불갑사의 꽃무릇」중에서

풀리지 않은 매듭들이 뭉친 것이다
멀고 아득한 옛날부터
나무의 수많은 이파리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쉬지 않고 흔들리며
잔가지들 바람에 힘없이 꺾이는 아픔을 바라보면서
나무는 견디어 왔던 것이다
그래도 억울하게 풀 수 없는 매듭들이 웅크려 있다가
이파리의 몽니들과 나무의 겨드랑이 밑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먼 곳을 자유롭게 다녀온 바람의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며
새들이 주둥이로 물고 와 조잘거리는
먼 도시, 간신히 목숨 부지한 삶의 이야기를
다 삭히지 못해 응어리진 언어들도
한 가닥 두 가닥 함께 들어앉은 것이다

자귀나무의 꽃들이 피고
자작나무 잎들이 하얗게 일어서도
속홀씨의 꿈 조각들을 품에 안은 소년들의 기도가
나무의 옆구리 둥근 집으로 들어서는 날
옹이는 부풀대로 부풀어서
밤새 ‘끙 끙’ 앓다가 몸뚱이에 종기가 되어
딱딱하게 굳은 것이다
빗장 걸린 둥근 집 한 채가 된 것이다
---「옹이의 집」중에서

나무는 다른 손이 쑥 옆구리를 파고들어와
속셈을 보여도 욕하지 않는다
소리 없이 자신의 팔을 내려준다
뻐꾸기 밤마다 산천이 들썩이게 울어서
깊은 잠 설쳐도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새는 없다
개울물은 알토와 베이스로 맑고 차분하게
합창을 한다

가을날
똘감나무 열매 해찰하다가
소나무 정수리에 털썩 떨어져 붉은 물감
온몸에 뒤집어써도
‘감나무네 아가들 집 떠나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소나무.
개똥벌레는 개똥을 굴리고
불개미는 붉은 힘을 합하고
두더지는 타고난 기술로
땅을 일구어가는 숲.
사시사철 바람의 연주에 맞춰
노랫소리가 파랗게 일렁이는 세상.
해님은 하늘문 열고 온힘 다해 햇빛을 내려보낸다
---「화음和音」중에서

봄처녀 기다리는 섬 머스마
한참도 앉아있지 못하고
가로 뛰고 세로 뛰고 갈피를 못 잡는다
우 ~ 우 모랫벌을 내닫다가
다시 되돌아와 먼 수평선 넋 잃고 바라보더니
열병앓이 가슴만 울렁울렁.
결국, 태풍의 몰매 한 번 야무지게 얻어맞고
방파제에 처박히더니
하얗게 벌떡 일어서고 있다
갈매기 떼로 몰려와 손뼉을 친다
---「바다의 꿈」중에서

출렁거리는 옷 벗어버린 갯벌이
수줍은 듯 웅크리고 앉아있다
만 가지 용궁의
속살을 들켜버리고
어찌할 수 없어 꼼지락거리며 돌아앉아 있는
갯바위들이 헛웃음을 웃는다
게들이 웅성거리며 발가벗은 알몸뚱이를
가려주고 있다

바닷물을 기다리는 사금파리 마음들이
어 영 차!
힘을 모아 끌어당기자
파도가 하얗게 다시 돌아온다

날마다 파도는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뒤돌아 선다.
---「그리움」중에서

울타리에 노랑 장미 꽃송이들이
흐드러져 피었다
할머니 홀로 마당가를 서성거린다
샛노란 꽃가루 사방으로 휘날린다
모두 떠난 빈 집.
누군가 창문을 두드릴 것만 같은데
바람만 휘적휘적 골목길을 휘몰아다니며
장난질을 한다
노인은 뭉쳐둔 몽니 풀어 중얼거리고
노랑 장미꽃 귀를 쫑긋
이야기를 듣는다
누룩뱀 한 마리가 흙담 넘어간다
시간은 가시덤불 성성한 길을 돌아
한 번 뒤엉킨다.

석양을 들쳐메고
밤은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데
하늘의 별들은 상여꽃으로 피고
떨어지는 꽃잎과 피어나는 꽃잎이 서로 엇갈린다
노랑 장미꽃잎 팽목항 리본들처럼
한 잎 두 잎
쭈그렁바가지 먼 길 떠날 채비 돕고 있다

까마귀 한 마리 지붕 위에 앉아 듬성듬성 울고 있다.
---「노란 장미꽃이 피는 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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