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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

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

리뷰 총점10.0 리뷰 11건 | 판매지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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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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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18*188*20mm
ISBN13 9791186963555
ISBN10 118696355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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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불을 버리려고
툭,
던져 놓았는데
잊어버렸던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의 엄마도
잠들어 있다
웅크린 모양새에
울컥하여
장롱 문을 닫았다

아빠 바보, 아빠 바보
울지 말라고
장롱 너머에서 까르르
웃는다

안과 밖이 이렇게
멀다고
눈물이 말했다
---「툭」중에서

(전략)
아버지와 식사를 마치고
몇 마디 식은 말들을 주고 받았다
아버지가 불쑥
둥글게 깎은 감알 하나를 내밀었다
입가심이여
나는 무심코 예, 하였지만
이 무심해질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난감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나 나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중략)
어쩌면 내가 믿는 그것은
본래부터 크기와는 무관하지 않았을까
문밖을 서성이던 모든 말들이
붉은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감알 하나」중에서

(전략)
그 고양이들은 지난봄
막 꽁지깃이 생기기 시작한 병아리들을 잡아먹었고
엄니는 약사에게 독한 쥐약을 달라했다
(중략)
약사는 고양이를 함부로 죽이는 일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그것은 큰일이라 하였고
큰일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하여

빈 손으로 돌아오셨다
뭔가를 해치려는 마음 자체가 상처다
엄니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남은 밥에 비린 것들을 더하여
고양이들을 먹이기 시작했다
(중략)
바야흐로 그놈이, 그놈이 되어버렸다
(중략)
살진 고양이들이 아지랑이처럼
엉덩이를 흔들었다
---「엄니와 고양이」중에서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사랑한다 말해 달라네
저 눈만 봐도
아득한 감옥인데
어떻게 너를
빠져나가랴
---「폭설(暴雪)」중에서

꿈에 네가 보였다
내 가슴은 뛰었지만
자꾸 아내 생각이 났다
꿈인 줄 알았다면
모든 것을 버렸을 것이다
---「춘몽」중에서

(전략)
너를 향하면 저주가 될 것 같아
누구도 섞이지 않은 나에게
오로지 나에게만 질문을 하였는데
(중략)
그 많은 뒷걸음질이 얼마나 많은 나를 살렸나
별처럼 그대가 깜박거리고
속아준 거짓말이 진실처럼 빛나고
비로소 숨이 트이고
---「인과(因果)」중에서

(전략)
나의 전부를 주마
헌것도 새것도 아닌
처음의 나를 다오

처음의 내가 생각나질 않아
내가 섞이지 않은 나
처음의 나를 다오
---「두꺼비집」중에서

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어느 날 꺾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심해지기로 했다
---「어떤 결심」중에서

(전략)
더딘 걸음으로 누이는
멈춰버린 생이라고 주검을 정의했다
나는 누이의 정의에 저것은 존재가 남긴 외피이며
더 큰 자유가 남긴 상징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누이는 슬픔이 많은 사랑이 치유가 된다고 믿었고
존재는 사랑이며 사랑에는 치유가 필요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후략)
---「나비가 죽다」중에서

(전략)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다
모든 질문이 울음 속으로 사라졌고
소리가 사라진 암컷의 몸에
나 같은 궁금증 하나를 더 낳았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울음도 죽음도
단숨에 쏟아져 내렸다
왜에
왜에
왜에
왜에
왜…
---「칠 년의 이명(耳鳴)」중에서

가을엔
마음 단단히 먹고
움켜잡았던 것을 놓는다
나였다가 전부였다가
나만 남게 된
나無

가을엔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무너지는 거예요
무너지면 알게 돼요
남은 것도 떠난 것도
나라는 사실

내가 남아
나를 추억하는 일
떠나간 그가
나를 남기는 일
그리하여
드러난 직립
하나라는
나無
---「가을엔」중에서

(전략)
먹이를 준다
먹이를 주지 않는다
주인을 물면 죽인다
그렇게 누대를 거쳐 야성은 사라지고
개는 결국 주인을 물지 않게 되었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개가 되었다
개의 승리다
---「개의 탄생」중에서

뭐라도 된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꽃이 찬란하고
아무것도 아니어서
초록의 심연을 함께 했다
뭐라도 된 날엔
그것으로 넘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넘치는 그것마저 좋았다
그게 그것의 자유였다
---「아무것도 아니어서」중에서

(전략)
모든 잎을 버리고
뿌리만큼 깊어진 가지들이
그늘의 뼈를 더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이
바람으로 흔들립니다
서로를 지우며 사라집니다
수십만 번을 그어도
그대로인 허공처럼
---「그늘의 문장」중에서

(전략)
모를 일이지 내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몫을 뺀 삶의 나머지가 나인지도
겨우 반올림하여 기어이 넘어가도
맨 끝자리에 불과한 나머지가 나인지도
---「나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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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공감입니다. 공감하는 시는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뒤적이게 합니다. 윤관은 일기 쓰듯이 시를 썼습니다. 담담했습니다. 마치 이야기 일기를 읽는 듯하였습니다. 깔끔한 그의 시를 읽으면 산골짜기 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 납니다. 자연을 응시하는 윤관의 눈엔 자연의 이치와 소소한 일상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것들이 화두로서 우주적 물음을 던집니다. 참으로 깊은 마음입니다. 이런 시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윤관의 시를 읽으면 저는 누군지도 모를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 최돈선 (시인)
정직과 진정은 시인의 의무이겠지만 그 길에서 실족하지 않기 참 어렵다. 시인 윤관은 시인의 자세를 타고났다. 절대로 허튼 길을 걷지 않는다. 바르고 곧은 언어는 세상의 때를 입지 않은 것이다. 시인 윤관이 베푸는 높고 낮은 음성은 이 나쁜 시대에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귀한 시인이 나왔다.
- 류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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