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동하며 배운다. 그러니 이 책에서 배운 원칙을 터득하고 싶다면 행동으로 옮겨라.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해당 규칙을 적용하라. 그러지 않으면 금방 잊는다. 지식은 활용할 때만 머릿속에 남는 법이다. (중략) 인간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침서로 삼아라. 아이를 대하거나, 배우자를 설득하거나, 짜증 난 고객을 진정시키는 등 구체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 충동적인 반응을 억제하라. 그런 반응은 대개 잘못된 것이다.
--- p.19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에 대한 욕구는 인류와 동물을 나누는 핵심적인 차이 중 하나다. 내가 미주리주 농장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좋은 두록저지 종의 돼지와 순종인 소를 키웠다. 우리는 중서부 전역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와 가축 쇼에 키우던 소와 돼지를 출품해 1등 상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흰 모슬린 시트에 상으로 받은 파란 리본을 핀으로 꽂아뒀다가 친구나 손님이 오면 꺼냈다. 아버지가 모슬린 시트 한쪽 끝을 잡고 내가 다른 쪽 끝을 잡으면 아버지는 리본을 보여줬다. 돼지들은 자신이 딴 상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중략) 그런 욕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동물과 같았을 것이다.
--- p.41
나는 오랫동안 친구들의 생일을 애써서 알아냈다. 어떤 방법을 썼을까? 나는 점성술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래도 친구에게 태어난 날이 성격이나 기질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지 묻고 나서 태어난 날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생일이 11월 24일이라고 하면 속으로 ‘11월 24일, 11월 24일’이라고 반복했다. 그러다가 친구가 자리를 떠나는 순간 이름과 생일을 적어두고, 나중에 생일을 기록하는 수첩으로 옮겼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자동으로 알 수 있도록 친구들의 생일을 달력에 표시했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는 편지나 축전을 보냈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인기를 얻었는지 모른다! 내가 세상에서 그들의 생일을 기억한 유일한 사람인 경우도 많았다.
--- p.82
때로는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더 그렇다. 많은 사람은 그런 이름을 외우려 하기보다 쉬운 별명으로 바꿔 부른다. 시드 레비는 ‘니코데무스 파파둘로스’라는 고객을 한동안 찾아갔다. 대다수 사람은 그를 ‘닉’이라 불렀다. 레비는 우리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ㅡ 저는 그를 방문하기 전에 여러 번 그의 이름을 되뇌면서 제대로 발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안녕하세요, 니코데무스 파파둘로스 씨”라고 인사하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꽤나 오래 아무 반응이 없을 정도였죠. 마침내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레비 씨, 이 나라에 산 15년 동안 아무도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고 하지 않았어요.”
--- p.97~98
논쟁은 십중팔구 서로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더욱 굳게 믿는 것으로 끝난다. 논쟁에서 이기는 길은 없다. 논쟁에서 지면 당연히 지는 것이고, 이겨도 지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당신이 이겨서 상대의 주장이 허점투성이며, 상대가 제정신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치자. 그래서 얻는 게 뭔가? 물론 기분이 좋을 것이다. 상대는 어떨까? 당신은 상대를 열등감에 빠지게 했다.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그는 당신이 이긴 데 분개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에 반해 설득당한 사람은 여전히 의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 p.143
자녀나 배우자, 직원에게 어떤 일에 서툴다거나, 소질이 없다거나, 모조리 틀렸다고 하면 잘하려는 의욕이 거의 사라진다. 정반대 기법을 활용하라. 한껏 격려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재능이 있다고 하라. 그러면 더 잘하기 위해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연습할 것이다. 인간관계에 탁월한 로웰 토머스는 이 방식을 활용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전하고, 용기와 믿음을 불어넣었다. (중략) 로웰이 말했다.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기억력과 판단력만 있으면 돼요. 당신은 기억력만으로 글도 쓰잖아요. 브리지는 아주 쉬울 거예요. 당신에게 딱 맞는 게임이에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난생처음 브리지를 하고 있었다.
--- p.280~281
메리 앤은 30년 동안 디즈레일리를 위해, 오직 그를 위해 살았다. 그녀는 자신의 부조차 그의 삶을 더 편하게 해주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여겼다. 그 답례로 디즈레일리도 그녀를 경애했다. 그는 그녀가 죽은 뒤 백작이 됐지만, 평민이던 때도 메리 앤을 귀족 신분으로 격상해달라고 빅토리아 여왕을 설득했다. 그녀는 1868년에 비콘스필드 자작부인이 됐다. 메리 앤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멍청하고 덜렁대는 모습을 보여도 디즈레일리는 절대 그녀를 비판하지 않았다. 나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그녀를 조롱하면 맹렬한 기세로 변호했다. 메리 앤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30년 동안 지치지 않고 남편에 관해 이야기하고, 칭찬하고, 흠모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디즈레일리는 말했다. “30년 동안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아내가 지겨운 적이 없었다.”
--- p.314~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