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자체를 더는 이전과 같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작가, 위대한 작가는 그런 존재다.
--- p.8
거의 일흔 살이 되었을 때, 콜레트는 시도가 “내 인생의 주요 등장인물”(“가을”, 《거꾸로 쓰는 일기》, IV, 163)이었다고 말한다. 등장인물이라는 말은 곧 시도와 함께한 삶이 한 편의 소설이었고, 지속적인 문학 창작 같은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시도는 콜레트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며, 그녀의 작품은 어머니를 기리는 최고의 기념비다.
--- p.39
내 여러 남편 중 한 명이 한 질책은 참 타당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사랑이나, 외도나, 반쯤 근친상간 같은 내연 관계나, 결별 이야기가 아닌 책은 쓸 수 없는 거야? 삶에 다른 것은 없어?” (…)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거기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내 30년 삶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마 나는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우연이 나를 한 남자에게 갇혀버린 여자들, 그래서, 아이를 낳았건 아니건, 노처녀의 조려진 순수純粹를 지하까지 지니고 가는 그런 여자들의 하나로 만들었을 경우가 여러분은 상상이 되는가?…(III, 285~286)
--- p.82
그녀는 생-소뵈르-앙-퓌제의 저택과 고향 마을을 문학 속에 들였지만, 그 후 현실에서는 그것들에서 멀어져, 브르타뉴나 남프랑스의 다른 집들에 애착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의 그 집, 사랑으로 복원되고, 정성을 다해 가구가 갖춰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꾸며진 그 집은 프랑스 작가들의 그 모든 집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집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그 집을 방문했고, 콜레트의 작은 방을 보았고, 정원을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걸어보았다. 모든 게 진짜였다. 그 집을 한 번 방문해보길 권한다 -《클로딘의 집》과 《시도》를 읽고 난 후에.
--- p.89
시선은 물론, 냄새, 접촉, 맛 등, 콜레트보다 더 감각적인 작가는 없다.
--- p.122
신체적으로나, 성생활 면에서나, 글쓰기에서나 콜레트만큼 자유로웠던 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온갖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방랑하는 여인》에서, 작가의 대변인 격인 르네 네레는 한 남자에게 굴종하여 그의 시중을 드는 순간, 이렇게 외친다. “나는 여자였고, 나는 다시 여자가 된다, 그것을 괴로워하기 위해서,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I, 1184)
--- p.130
콜레트는 《클로딘》 연작을 쓴 부도덕한 저자요, 《순수와 비순수》를 쓴 모럴리스트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정의 작가, 형제자매의 작가이기도 하다. “경쟁자 없는 장남” 아실 없이, 그의 엉뚱한 동생 레오 없이, “긴 머리 언니” 쥘리에트 없이 어찌 콜레트를 이해할 수 있을까?
--- p.152
그녀는 전쟁에 관한 자신의 그 글들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1918년에 프랑시스 카르코에게, 그 “하찮은 신문 글 나부랭이들”이라고 말한다.(LSP, 204) 원래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늘 엄하게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 “나부랭이들”을 다르게 본다. 그녀가 나중에 《셰리의 종말》이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듯, 그녀만이 세계대전이라는 그 오랜 세계적 갈등이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두 성 간의 관계에 가져다준 뿌리 깊은 충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긴 시간들》에 수록된 그 글들은 내가 그녀 최고의 소설로 꼽고 싶은 작품을 예고한다.
--- p.169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런 익명의 사람들, 엑스트라의 삶을 사는 많은 이들이 《뮤직홀의 이면》이나 《순회공연 수첩》의 페이지들을 장식하는데, 콜레트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기록한다. 예를 들면 〈굶주린 자〉 같은 글이 그렇다. 그녀가 그를 관찰하는 이유는 그가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무리에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아끼는 사람이지만, 단추 구멍에 히아신스 꽃다발을 하나 꽂고 와서는 콜레트에게 내밀고, 콜레트는 루르드 역에서 그에게 따뜻한 작은 소시지를 하나 사준다. 그 가난한 젊은이에게서 남은 건 이게 다다. 비문(碑文)이 아니라, 전설이다.(II, 242)
--- p.202
“내 책을 읽을 때 여러분은 내가 나의 초상화를 그린다고 생각하는가? 참으시라, 그는 다만 나의 모델일 뿐이다”(III, 275). 콜레트는 적어도 베르트랑 드 주브날과의 관계를 예고한 소설 《셰리》 이후부터는, 문학이 삶을 앞서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 p.211
프루스트와 콜레트는 유년의 세계를, 감각의 소재를, 기억이 주는 감동을 프랑스 문학에 선사했다.
_213
그녀는 글쓰기를 다른 일을 배제하는 직업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의 가게에 걸린 콜레트 홍보 사진에는 이 전설적인 문구가 들어있었다- “귀하는 작가의 부업을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 p.238
그녀는 글을 쉽게 쓰지 못했고, “붓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쓴다는 게 뭔지 몰랐으며(MV, 223), 또한 쓴 글을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쳤다. 그녀는 1939년에 쓴 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한 작가의 추억”을 이렇게 맺는다. “프랑스어는 참 어려운 언어다. 글을 45년째 쓰다 보니 이제야 좀 알 것 같다.”(IV, 176)
--- p.268
“여든 살이 되어서야 나는 훈련된 작가에게 글쓰기를 중단해야 하는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마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글쓰기에 대한 내밀한 욕구, “한 번도 내가 지붕 위에 올라가 그 절박함을 외친 적 없는 그런 욕구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곤 “글쓰기를 끝냈으면 하고 바랐던 그 세월 내내, 나는 너를─그리고 나를─충분히 경계하지 않았던 것일까?”라고 뒤를 잇는다.(BS, 254~5) 마치 그 욕구를 받아들이는 건 곧 그녀의 종말이나 고갈을 초래하는 것인 양 말이다.
---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