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것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작은 인간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일이며, 동시에 계산 없는 사랑을 퍼부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지쳐도 끝낼 수 없지만 누가 지금 당장 끝내준다 해도 거부할 일이고, 헌신이 필요하나 그렇다고 마냥 괴롭지만은 않은 일이다.
--- p.7
육아에서 힘듦과 사랑스러움은 한 세트다. 힘든데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데 힘든 이 일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왜 사람들이 첫째에서 그치지 않고 둘째를, 또 셋째를 가지는지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이해하게 됐다.
--- pp.7~8
내가 일 때문에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 다음 날 아침, 나의 목을 끌어안으며 “엄마가 사라질까 봐 꼭 껴안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그 언어 세계에서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욕심일 뿐, 유하는 거친 말, 차가운 말, 아프거나 슬픈 말도 나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배워갈 것이다. 그때가 오면 새 단어를 익혔다고 환호할 일도 없겠지만, 유하가 온갖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나와 대등하게 대화하고, 때로는 말로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 미래도 나는 기꺼이 맞이하고 싶다.
--- pp.78~79
나는 자라면서 생각보다 내가 되게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갔고, 그럴 때 엄마의 칭찬을 받으면 어딘가로 도망가거나 사라지고 싶었다. 내 보잘것없는 재주들이 엄마의 큰 칭찬에 어울리지 않아서 창피했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칭찬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하를 낳고 길러보니 (조)부모의 칭찬을 굴절 없이 받아들이고 마음껏 의기양양해하는 것도 나름의 효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어찌 보면 칭찬해주는 사람의 사랑을 온전히 흡수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 pp.102~103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그 역방향의 사랑을 가뿐히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사랑이 그 어떤 사랑과도 다르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원가족이나 배우자와의 관계, 친구들, 일, 취미 생활 등의 구성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모의 세계에서 자식은 1순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언정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반면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 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거의) 전부다.
--- pp.130~131
육아는 늘 내 최악의 모습을 이런 식으로 들춰놓는다. 그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 앞에서, 도망갈 데도 숨을 데도 없는 곳에서.
--- p.146
부모를 만드는 건 시간이다. 열 달 동안 배 속에 품고 있었다고 해서 처음 보는 존재에 대한 모성애가 벼락처럼 생기지는 않는다. 겉싸개에 미라같이 감싸여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던 신생아는 분명 귀엽긴 했으나, 숨이 막힐 정도의 사랑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아이가 내 팔에 조그만 머리를 올리고 한참을 산새처럼 지저귀다 잠들었을 때, 내 팔뚝에 솜사탕 같은 머리카락이 닿아 있고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작은 손가락들이 물방울처럼 찍혀 있을 때 불현듯 깨닫는 것이다. 아, 나는 이제 망했구나. 이 애 없이는 한시도 살 수가 없구나.
--- p.149
변기에 앉아 있는 아이 사진을 그냥 보면 ‘왜 이런 사진을 찍었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변기가 무서워서 못 앉던 아이가 오늘 드디어 용기를 낸 것을 기념하는 사진임을 알게 되면 기특한 마음이 들 것이다. 누군가를 세밀하게 사랑하려면 맥락이, 역사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 p.151
캠핑 의자에 앉아 김밥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이제껏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이 지금 내 눈앞의 유하로 이어진 것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 해도 절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잘못 했다고 느꼈던 결정도, 땅을 치고 후회했던 선택도 모두 다 그대로 둘 것이다.
--- p.214
내가 해야 할 일은 유하가 해낼 때까지 초조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고, 유하가 해야 할 일은 마음껏 실패해보는 것이다. 그 실패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아마도 나는 유하를 조금씩 더 깊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