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무크지 아크가 호를 거듭하면서 주변 독자분들은 제게 다음 호의 주제가 뭔지 물어옵니다. 저는 천기누설이라며 책이 나올 때까지 알려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제에 따른 저의 신중치 못한 단견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입니다. ‘기분’을 아크 6호 주제로 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이 ‘기분’으로 어떤 인문학적 내용을 담을 수 있겠나 했던 질문은 곧 어떤 내용이 담길지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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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무크지 아크 6호 주제를 기분으로 정하고부터는 늘 ‘기분’이 따라 다녔습니다. 휴대폰 문자를 보낼 때도, ‘좋은 하루 되세요’가 아닌,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한 기분을 살피게 됐습니다. 아크 6호 『기분』을 엮으며 만난 총 18편의 글은 제게 ‘난실의 벗’이 되었습니다. 아크가 독자들에게도 ‘난실의 벗’으로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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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현대에서 기술은 닦달(Ge-stell)이라는 진리인 것이다. 예전에 농부들이 밭을 경작할 때는 씨앗을 뿌려 잘 자라도록 보호하였는데, 오늘날 농토의 경작은 자연을 닦아세우는, 즉 농토에게 무엇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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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용기, 치기, 객기, 패기, 혈기, 광기, 똘끼 같은 것들을 찬양하고, 온기와 냉기, 한기와 열기 사이를 오가며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세계의 윤기와 찰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남은 것은 허기뿐이지만, 저 맛있는 초코우유조차 쳐다보기 싫을 만큼 입맛도 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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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 수신하여 좋은 기를 몸과 마음에 가득 차게 하는 것, 좋은 기가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서 내 표정과 내 말과 행동이 평안하고 즐거운 것, 그런 표정과 말과 행동으로 남을 대함으로써 남도 즐겁고 평안하게 하는 것, 이것이 기분의 본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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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문학의 정치란 문학 작품 속에서 ‘정치적 소재’를 다루거나 작가 자신이 현실정치에 투사로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개인적, 집단적으로 환기되는 ‘우울한 기분’, ‘불쾌한 기분’, ‘속박된 기분’, ‘억압받는 기분’ 등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이를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의미의 지평을 정초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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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폐한 젊은 날을 사람들은 ‘흰색 시대’라 불렀다. 위트릴로 흰색의 거리에서 우리의 감수성 속으로 스며드는 것은 희로애락 같은 감정이 아니다. 그의 거리 풍경에는 이런 감정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정서의 흐름이 자기만의 이름표를 가지기 이전에 젖는 모호한 기분, 혹은 분위기 같은 것이 안개처럼 온몸으로 스민다. 우리도 그런 안개 같은 것 속에 한동안 뭔지도 모른 채 헤매고 있을 때가 더러 있지 않은가.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데 그 모든 감정의 근저를 조용히 흔들고 있는 것, 그것을 ‘기분氣分’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 p.62
다시 정리해보자. 슈타이거의 관점에서 시인들은 그들의 고독에 주관적 감정 표현을 부여할 수 있으며, 벤이 말하는 대로 엄격한 지성 속에서의 은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지난 2백 년간을 반영하는 역사적으로 제약된 관점에서 내려진 평가이며, 서정 장르의 본래 특성을 전도시킨 극단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서정시 중에서 가요시(Lied)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서정시가 세 장르 중에서 가장 사회적인 것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 p.81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소개할 때 언급한 바처럼, 개인들은 자신의 기분을 완전히 탕진하지 않는다. 이를 적절히 유보하거나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한 때가 오면 이를 바람직하게 발산하기도 한다. 물론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발산이기 때문에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이를 정서(이제는 기분이라고 해도 좋다)의 실천의식이라 불렀을 것이다.
--- p.92
하지만 기분에 대응하는 말이 ‘기모치’와 ‘기분’ 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우리말의 기분에 대응하는 말이 일본에는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간지 感じ”, “기쇼쿠 氣色”, “고코로모치 心持ち”, “고코치 心地”, “기미아이 氣味合い”, “오모이 念い”, “오모이 思い”.
--- p.99
자투리 천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던 어머니의 정성어린 바느질 솜씨로 흩어지고 엉켜버린 연안 풍경을 한 땀 한 땀 다시 꿰매어 회복시키며 재창조해야 한다. 섬세하면 섬세할수록 느리면 느릴수록 좋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치유와 절제를 통한 부산 풍경을 위한 노력은 ‘부산’이란 이름을 들은 이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것이고, 그들 기억 속의 부산을 되찾게 해줄 것이다.
--- p.128
기분이 어때? 음, 다 재미없어. 가끔은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아. 출판된 지 오래된 이 책이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들이 깔려있다. 기분과 감정의 학습은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습득해야 하는 주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분과 감정을 파악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가 타인의 기분과 감정,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 p.133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날 백일몽을 꿨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건과, 참사 1년 뒤 일어난 국립대 교수의 투신 소식을 듣고 일으킨 ‘정신발작’의 느낌이 몸과 마음에서 거의 떨어져 나가 잠잠해질 무렵 ‘그것’은 내게 나타났다. 한 손은 2L짜리 생수병을 들고, 또 다른 손은 담배를 쥔 여학생이 내게 등을 진 상태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은 햇빛에 반사되어 내 눈을 어지럽히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 p.143
온갖 테크놀로지와 편의 수단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기분이 삶과 죽음, 패가망신과 영웅 탄생, 희열과 절망을 결정해 버리는 사례는 점점 는다. 기분 나빠 술 먹고 인터넷에 글 한 줄 잘못 올리면, 당신은 매장된다. 당신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그런데 우리는 ‘기분’ 그 자체에 관해 사유하거나 궁리하거나 공부하라는 권유를 별로 받지 못한 채 이 사회에 내던져졌다.
--- p.163
사람다움은 세상다움으로 이어진다. 공자가 구상한 세상다운 세상은 품격 있고 정이 있는 사회다. 유정한 세상, 품위 있는 천하를 만들기 위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 맞게 언행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를 리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다.
--- p.173
최소한 ‘공공의 이해’를 위한 기반을 닦아줘야 할 의무가 건축과 도시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지 않지만, 너무 복잡하지 않게, 이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불특정 다수’, 즉 ‘공공’에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건축과 도시는 눈을 즐겁게 해준다. 눈이 즐거우면 ‘기분’은 자연스럽게 좋아지기 마련이다.
--- p.195
한편 ‘물가 경관’은 순수하게 감각적인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인간은 경관으로부터 무엇을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가 기대하며 그 기대가 충족될수록 아름답다고 느낀다. 물가에서 인간이 원초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물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거나, 물가를 걷거나, 물에 다가가거나,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과 같은 친수 행위이다. 따라서 친수 행위를 충족할 수 있는 친수공간은 ‘물가 경관’의 체험에 큰 영향을 준다.
--- p.200
고야는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힘은 이성적인 것뿐 아니라 비이성적인 것도 있다고 본다. 비이성적인 힘이 폭력과 광기가 되어 나와 타자를 억압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성찰 또는 반성일 것이다.
--- p.224
일본어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 중에 ‘공기를 읽다’ 空氣を讀む , 혹은 ‘공기를 읽지 못하다’ 空氣を讀めない 라는 말이 있다. 번역하기 다소 애매하지만 이 말은 보통 옮겨지듯 주변의 분위기나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헤아리는 일상적인 차원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심층적인 함의를 가진다.
--- p.227
화이트 트라우마.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어도 화이트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알다시피 부정적 경험이 삶의 전반에 불행한 일을 결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긍정적 경험이 삶에 지속적인 행복 에너지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긍정 경험이 행복 에너지를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경우를 화이트 트라우마라고 한다.
---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