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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재들

최고의 인재들

: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

[ 양장 ] 걸작 논픽션-007이동
리뷰 총점9.5 리뷰 11건 | 판매지수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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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1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104쪽 | 1660g | 153*224*60mm
ISBN13 9788967350925
ISBN10 896735092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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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황지현
부산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중국을 경영하라』 『미국 시대의 종말』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최고의 인재들』 등이 있다. 현재 외서 기획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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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1967년 가을에 베트남으로 향했던 길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3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목격한 것들에 대해 두려움과 환멸을 느꼈다. 사이공 사령부는 낙관하고 있었지만, 전쟁은 이미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우리는 군사적 우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정치적 우위에 있었다. 사실 이는 우리가 작정하기만 하면 어떤 전투든 이길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잃어버린 전장을 쉽게 보충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일은 사이공의 미국 엘리트들에게서 목격한 낙관주의였다. 내게 그것은 자기기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최종 승리에 다가서고 있고, 한편으로 상대를 궤멸시킬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매우 성급한 논의도 있었다. 심지어 그해 12월에는 몇몇 고위 외교관이 서광이 비친다면서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p.8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책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목적의식까지 얻었다. 나는 우리가 왜, 어떻게 베트남에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전쟁의 판을 짠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이 지닌 기본적인 의문은 금세기에 가장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북전쟁 이래 가장 최악의 비극을 기획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p.13

그러나 케네디 집권 초기에는 행정부와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전혀 의심을 사지 않았다. 새로운 행정부 구성원들이 워싱턴의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인들로부터 개인적 차원에서 동정어린 조언이라도 받았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훌륭한 기자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스스로 계몽되어 계몽적인 기관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라서 케네디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이 추구하는 내용과 똑같은 것을 지향했다. 게다가 대통령 자신의 특출한 스타일과 기자들을 다루는 자신감과 편안함, 텔레비전을 활용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 아찔할 정도로 깍듯한 매너 등은 그가 죽은 뒤 엄청난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의 각료들 중 많은 사람이 뛰어난 작가였는데, 그들은 케네디가 살해된 뒤 그의 재임 시절에 대한 회상을 깊은 슬픔과 함께(때로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감동적인 문장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이는 케네디에 대한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p.17

케네디-존슨 팀에게서 배운 또 다른 사실은 그들 모두 매우 총명하고 이성적인 관리자로 유명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대단히 형편없는 관리자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선택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선택에 대한 가능성의 문은 닫혀만 갔다. 인도차이나의 불행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역사란 준엄한 선생이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치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1946년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남아 있던 선택권들이 점점 사라져갔던 것이다. 그것도 폭넓은 선택권과 선택에 필요한 최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프랑스에 돌아갈 권리를 주었고, 그들의 의지를 베트남에 무력으로 강요했다. 1950년까지 우리는 반공산주의라는 글로벌 비전에 사로잡혀 이 전쟁을 식민-반식민 전쟁으로 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전쟁 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돈이 뿌려지는 곳마다 거창한 수사가 덧붙여졌다. 우리는 대중을 향한 성명과 많은 기사를 조종해서 그것을 반공에 저항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베트남의 빈민들은 이 전쟁을 토착 민족주의에 대항하는 식민 세력의 전쟁으로 보았을 것이다.---p.21

민주당은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트루먼과 애치슨이 지속적으로 받았던 공격 여파로 인해 중국을 잃으면 백악관까지 잃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매카시가 사라진 뒤에도 민주당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에 관대하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물론 공화당은 중국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그들이 마지막으로 제안했던 것은 전투를 위해 미국 청년들을 중국에 파견하자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들에게는 마땅히 제안할 정책도 없었다. 중국은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었고, 사건들은 우리 통제 바깥에 있었으며, 우리가 지닌 봉건적 대리권은 역사의 영향력에 휩쓸려갔기 때문이다. 그 정치적 암흑기에서 역사의 성쇠는 민주당의 탓으로 돌려지기 쉬웠다.---p.23

그것은 매카시 시대의 끔찍한 그림자였고, 그 그림자는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계산에도 은연중에 무겁게 깔려 있었다. 물론 주요 신문이나 잡지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정책을 분석하자는 논의는 없었다. 그것은 매우 비밀스러운 주제로서 잠재된 공포의 반증이었다. 미국이 전투부대를 파견하거나 증강할 경우 적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판단하는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그 지역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볼런과 케넌에 대응하는 아시아 전문가들은 중국의 함락과 함께 설 자리를 잃었다. 아시아에 대해 자문했던 사람들은 유럽 전문가이거나 펜타곤에서 차출된 이들이었다. 마침내 책을 끝마치고 출판사 발행인의 승인을 얻었을 때 나는 그 점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장을 추가해 특출한 중국통이었던 존 페이턴 데이비스의 이야기를 실었다. 매카시 시절에 그의 경력은 완전히 난도질당했다. 건강하고 나은 사회라면 베트남에 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 데이비스 같은 사람을 국무차관보 자리에 앉혀야 했다.---p.24

러스크는 상호안전보장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남베트남은 상호안전보장과 관계를 맺었고, 따라서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했다. 베트남은 존재 자체를 뛰어넘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에 있는 러스크의 부하들이 품고 있던 의심은 그의 자신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미국인이 해야 하는 것을 확신했고,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군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굳게 믿었다. 군의 보고와 추정을 위험할 정도로 거의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던 그는 부하들에게 하노이에서 보내는 신호를 감시하고 기다리는 것이 자네들 임무라고 말했다. 신호가 나타나면 그것은 그들이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일 것이고, 그때부터 국무부의 임무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자네들은 그 신호를 찾아야 하고, 그들이 신호를 보내는 순간 내게 보고해야 하네.” 러스크가 보좌관들에게 한 말이었다. 어느 부관은 절대 위선적이지 않은 것이 러스크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진실함의 결정체였던 그는 세상을 아직도 삼십대의 젊은 시절에 발견했던 방식 그대로 믿었다. 곧, 선善은 우리 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동적인 믿음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니까.---p.1001

베트남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던 과거 1964년과 1965년의 그 기나긴 고통의 시기에 그들은 모두 합리적인 해결책을 논의했던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호찌민 역시 이성적이라는 가정 아래 토의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찌민이 미국의 관점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판명되고 전쟁 역시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갑자기 린든 존슨도 굉장히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무엇이 잘못 진행되고 있고,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아는 훌륭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거꾸러지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덫에 걸렸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전 국민이 숫자놀음을 깨닫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수록 그는 더욱 숫자를 감추었다.---p.1003

로스토는 러스크와 맥나마라, 특히 맥나마라와 함께 게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능력 또한 발휘했다. 그는 방대한 군의 정보를 꼼꼼히 읽고 한두 건의 긍정적인 것들만 선별해서 갖고 나왔다. 그리고 그는 매우 쾌활하고 낙천적인 어조로 러스크와 맥나마라를 불렀다. “최근에 입수한 문서들을 보셨습니까? 정말 대단하죠! 안쑤옌 전투에 대한 것도 보셨습니까? 대단한 승리를 거뒀더군요. 한 민간 경비 회사가 베트콩 연대를 이겼다지요? 쩌우독에서의 사상자 수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거대하고 방대한 전쟁에서 일어나는 훨씬 비관적인 수백 가지의 에피소드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 차지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맥나마라와 러스크는 비관적인 것들을 도태시키기 위해 몇 시간을 바쁘게 보냈고, 일을 마친 다음에야 대통령의 호출에 따를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었고, 정부의 훌륭한 인재들은 스스로 매복되지 않기 위해 소대가 매복된 것을 확인시켜주는 내용이 없는지 샅샅이 확인했다. 전쟁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업무 때문에 이미 고립된 상태였던 린든 존슨은 사실로부터 더욱 멀어져갔다.---pp.1027~1028

사이공이 신뢰감과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반면, 워싱턴과 미국은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사이공을 워싱턴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1967년에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에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웨스트모얼랜드와 벙커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전쟁의 이미지에 윤을 내고 늘어가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고안된 연설을 맡겼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웨스트모얼랜드의 등장은 더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대통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군을 조종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벙커와 웨스트모얼랜드로서는 대통령이 국내에서 매우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처음으로 접할 기회였을 것이다. 이제 반전 시위는 공격적인 소규모 집단의 목소리에 머무르지 않았다.---p.1041

구정 대공세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적의 인내와 지속성, 빠른 회복력이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게 선명하게 노출되었던 것이다. 과거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멀리 떨어진 정글이나 논에서 재빨리 공격을 한 뒤 밤이 되면 사라지곤 했다. 그들이 억세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실감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구정 대공세에서 그들이 의도적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처음으로 그들은 도시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는 매일 미국 기자들과 더 중요하게는 텔레비전 카메라맨들이 그들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미국의 소모 전략에 대한 신뢰는 구정 대공세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현재 존슨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동지인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의 신뢰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웨스트모얼랜드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면, 존슨에 대한 신뢰 역시 사라지는 것이 당연했다. 구정 대공세는 전쟁과 관련해 존슨을 발거벗겼다. 존슨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그의 행정부에 대한 신뢰 역시 무참히 파괴되었다.---pp.1042~1043

맥조지 번디는 합리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치적 인본주의의 필요성이 재점화되던 시기의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도덕적 가이드라인 없이 과정의 한계를 무력화시킨 것처럼 보였던 행정부의 운용과 절차를 담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기득권층의 사람이었다. 올바른 정책을 올바른 방식으로 결정하는 올바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엘리트 통치자의 능력과 권리를 믿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 명성을 손상시켜 어떤 생각이나 입후보자를 은밀하게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규칙과 관련한 엘리트의 권리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했다. 상원에서는 자신이 행정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었던 주도적 온건파들이 직원들을 보강해 외교정책에 더 큰 역할을 행사했다. 그 몇 년의 시간은 미국 내의 다른 모든 정치집단으로 하여금 그들이 외교 정책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자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10년의 세월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외국인과 흑인, 여성, 노동자들이 나서서 더 큰 역할을 맡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해자(성 주위를 둘러싼 못)에 도착했고,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pp.1056~1057

그러나 존슨 행정부처럼 닉슨 행정부 역시 사건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들은 티에우에게 공군력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그가 정말로 요구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그것은 베트남 국민이 인정하는 진정한 정치적 합법성이었다. 티에우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여위고 깨지기 쉬운 상태로 흘러가던 시기에 북베트남은 완벽한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시간은 그들 편이었고, 그들은 혁명의 합법적 상속자였다. 그 나라에 떨어지는 미국의 폭탄보다 그들의 합법성을 명확히 확신시켜주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결국 미국이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1966년 12월에 하노이에서 자신감에 찬 팜반동은 『뉴욕타임스』의 해리슨 솔즈베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솔즈베리 씨, 미국은 얼마나 오래 싸우고 싶어합니까? 1년? 2년? 3년? 5년? 10년? 20년? 당신들의 바람에 기꺼이 부응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미 공군은 제한된 목표만을 수행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 많은 비용으로 남베트남 사람들을 특정 루트로 전송하는 일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행정부 소식통들은 평화 회복의 진전에 찬사를 보냈지만 진정한 평화조약은 없었다. 1972년에 북베트남군의 공격이 미국의 허약한 소득마저 유린해버리자, 절망에 빠진 닉슨은 북베트남에 대한 더욱 맹렬한 폭격 작전을 승인했다. 이는 존슨 시절에 이미 규제 사항으로 정해진 수많은 것을 해제하는 행위였다. 전 세계가 폭격을 주시하고 대의명분이 사라진 가운데, 미국은 더욱 잔인한 존재로 비치게 되었다. 1972년 여름에 평화는 그 어디에도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미국의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었다. 시간은 적의 편이었고,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위치, 빠져나갈 수 없는 위치, 포로들을 집으로 보내줄 수 없는 위치, 오로지 상대를 후려치고 폭격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베트남에 우리의 의지를 강요했던 미국의 무능이 이미 1968년에 증명되었는데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그 실패를 교훈삼아 우리의 목표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 나라는 갈가리 찢기고 있었다. 초기의 분노는 망연자실로 바뀐 듯했다. 그렇게 미국인들은 터널 끝에서도 빛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더욱 어두워진 암흑만이 있을 뿐이었다.
---pp.1069~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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