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씻고 세상 사람 사는 일 듣지 않고 / 푸른 솔과 사슴 무리와 벗을 삼는다.” 당나라 시인 진일제(陳一齊)의 시 ‘은자(隱者)’, 즉 ‘산속에 숨어 지내는 사람’의 첫 구절입니다. 세상의 명리를 뒤로 하고 산, 그윽한 골짜기에 초막을 짓고 은둔해 유유자적 살면서 수심(修心), 수도(修道), 음풍영월(吟風詠月)하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세에 그 이름이 길이길이 빛나는 도연명, 이태백, 두보, 왕유 등이 대표적 은자 아니었던가요. 그들은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미련 없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초야에 묻혀 야인으로 살았습니다. 대중의 취향에 따르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된 세계를 피력한,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언더그라운드, 비주류인 셈입니다. 속칭 인디문화의 시조(始祖)인 은둔자들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들을 그저 멍하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높은 산봉우리에 걸린 흰 구름이 연출하는 매 순간, 그 아름다움의 광경을 포착해 멋스러운 시문과 한 폭 산수화로 영원불멸의 작품을 남겨 후세인들에게 삶의 이치와 진리, 이상향을 전했습니다.
시은(詩隱) 할아버지의 시 속에도 세속을 멀리하고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은자(隱者)들의 독특한 정서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물을 향하는 어른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그 어린애의 심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시인의 가장 불행이라던 워즈워스, 시은 조부님의 시에서는 가장 귀한 자산인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장난기가 가득하지요. 꽃 한 송이, 나는 곤충들, 새들, 특히 구름들의 움직임에 감흥하시는 조부님의 시구들을 접하며 어쩌면 이토록 ‘은자(隱者)’의 시구와 딱 들어맞을까 새삼 놀랐습니다. 같지 않고 닮지 않음을 불초라 했던가요. 맞습니다. 읽어가는 내내 불초 손녀는 시의 감흥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 지 어언 삼십 년이 넘었지만 글 앞에선 여전히 떨리는 초보의 심정입니다. 제 이름 내걸고 발표된 글은 제가 사라져도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은 살아생전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 같은 등단의 과정도, 하물며 흔한 동인지에 자신의 시 한 편 실어보지 못한 그는 훗날 조국인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일본에 시비(詩碑)가 세워진 국내 유일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돈 3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그토록 바라던 자필 시집의 출간이 좌절된 채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잊힐 뻔한 윤동주 시인. 그의 작품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은 후배이자 친구였던 정병욱에 의해서였지요. 시인이 일제에 검거된 반년 후 정병욱 역시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윤동주가 헌사한 원고의 보관을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신신당부했더랍니다. 처음엔 장롱 깊숙이, 때론 술독까지 번갈아 가며 고이 간수된 원고입니다. 그래서 부상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정병욱에 의해 천신만고 끝에 시인의 원고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윤동주 시인의 시집에 대한 장황한 내력을 굳이 끄집어내는 이유가 뭘까요.
감히 나서도 될까 망설였습니다. 그야말로 여성 상위 시대라는 말조차 식상한 요즈음인데 ‘출가지외인(出嫁之外人)’이라는 고루한 벽도 저를 잠시 주춤거리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백호 임제 선생의 태몽에 관한 일화가 스쳐갔습니다. 어느날 길몽을 꾼 백호 선생은 그 멋진 길몽의 서기(瑞氣)를 며느리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친정을 찾은 따님은 아버지를 졸라 그 꿈을 얻게 되고 그렇게 해서 외손자가 태어났습니다. 뛰어난 인품으로 과거도 거치지 않고 영의정에 오른 미수 허목이라는 큰 인물이지요. 여자라고 나서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또 우리 집안 외손들의 영특함, 굳이 외풍이라고 가른다면 참으로 자랑하고픈 우리 외손들입니다. 충남대 명예교수님이신 김병욱 오빠를 필두로 석 박사가 즐비하며, 지혜병원의 이지혜 병원장이야말로 여성파워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나선 이른바 거풍입니다. 곰팡내 쿰쿰 풍기는 옛집의 문이란 문을 다 열어 놓고 바람을 들이듯 옛 어른의 정신을 다시금 펼쳐내 환기(換氣)해보려는 시도라고나 할까요. 자칫 묵혀 사라질 뻔한 조부님의 시를 아버님이 번역하신 연유도 그러하셨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시 끄트머리에 잇댄 어쭙잖은 문장 몇 자, 이 손녀의 가장 큰 명분이 거풍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자이자 우리 집의 대들보인 동생 이증순도 흔쾌히 거든 이 작업의 흐뭇함이라뇨. 사실 할아버지 한시집, 『시은집』 탄생은 외손인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이자 평론가이신 김병욱 오라버니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오빠의 서둚이 없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릴레이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훗날 이 피 내림의 배턴을 후손 누군가가 이어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이런 문기(文氣)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음인지, 수필가로 활동한 덕택에 생가의 대문 앞에 형제들의 적극 권유로 명패를 걸었습니다. 또한 시대가 시대인지라 할아버님의 한시라는 장르를 요즘 현대인들에게 주는 낯섦을 완화해 보고 싶은 제 무모한 욕심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런 등 떠밈에 우선하여 조부님 시를 거풍하신 부친의 뜻을 잇고자 하는 념으로 용감무쌍 외람되이 이 작업에 나섰습니다. 부디 따뜻한 눈길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책머리에: 점화 시집을 펴내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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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得春暉草心亭 보득춘휘초심정
翼然逈出世塵冥 익연형출세진명
江通大野千年綠 강통대야천년록
地接東山一抹靑 지접동산일말청
屢典郡縣聲績好 누전군현성적호
更歸田畝寸心醒 갱귀전묘촌심성
於今倫理存虛位 어금윤리존허위
惟有令公守孝經 유유영공수효경
봄 햇빛의 효도를 갚아드리려 풀의 마음으로 정자 이름을 지었으니
튀어나게 멀리 세상 티끌의 어두운 것을 벗어났네.
강물은 큰 들판을 통해 흘러 천년이나 변함없이 푸르게 흐르고
땅 형세는 동산에 닿아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푸르구나!
여러 번 군수와 현감을 지내면서 어진 소리와 성적 좋게 들렸고
다시 벼슬을 마치고 돌아와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을 깨우쳤네.
지금 세상의 윤리 헛된 자리에 떨어져 있는 판에
오직 영공만이 홀로 있어서 효경을 지키려고 하시는 도다.
봄 햇살 다숩기
어버이 품만 할까
뼛속 깊숙이
올올이 스민 은혜
새길수록 훈훈하다
그리운 맘
꽃잎 삼아
띄운 강물
유장하니
후대에 전한
음덕 잠언인 양
되새긴다
---「김장성의 초심정 원운에 차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