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는 자주 회색을 이야기했다. 예쁘게 단장한 자신의 손톱이 취재원의 삶 앞에서 부끄러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슬프게도 혹은 기쁘게도, 이 친구가 나처럼 헤매며 살 것을 직감했다. 모호한 것을 글에 담는다고 분명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호한 것 자체로 선명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마침내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설 수 있다. 경계에 선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를 건희의 글에서 보았다. 그의 글을 좀 더 읽고 싶어서, 편지를 보내 달라고 했다.
--- p.14
1922년에 태어나 1973년에 죽은 미술가의 자소상을 최근에 보았어요. 5년 전 이 작가의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 조각상이 살아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제 알게 되었어요. 착각이 아니라는 걸요. 조각들은 살아서 숨 쉬고 있었어요. 자소상의 옆모습을 바라보면 제 시선은 자연스레 자소상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무엇을 보고 있었냐고,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고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소상이 되물어요. “당신은요?” 동시대를 살았더라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겠구나. 서로를 제때에 놓쳐서 나는 이 사람을 영원히 미화할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했네요.
--- p.19
윤이 살아온 시간, 만난 사람들, 본 것, 윤의 영감과 사랑, 그의 낮과 밤, 꿈속. 한 사람의 세상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미지로, 오브제로 경험하는 일만큼 근사한 일을 미미는 아직 찾지 못했다.
--- p.74
작가는 처음부터 사용할 재료와 완성될 이미지에 확신을 가졌을까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라 잘 모르지만, 수많은 밤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재료와 방법을 실험했을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많은 작가가 그럴 거예요. 그런 밤들을 지새우는 동안 몇 개의 확신을 찾아내고, 그걸 쌓아서 이미지를 만들어내죠.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미지를 보고 그 작가의 선명한 색이라고 말하고요. 그 또렷한 작품과 태도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가끔 시간을 거슬러 되짚으며 생각해 봅니다.
--- p.85
드 발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파울 첼란 등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대요.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한 그의 글에서 발견한 문장이 인상적이에요. “붕괴된 가정에서 자란 외로운 아이들에게 놀이공원만 한 장소가 없다. 나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이 불안한, 연약해 다치기 쉬운 아름다움이 머물 장소를 그는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제는 진실이었으나 오늘은 알지 못하는 마음이 머물 집은, 어디일까요.
--- p.95
불완전한 우리를 지켜주는 건 결국 사랑의 대상만을 막연하게 믿거나 눈에 보이는 조건에 매달리기보다, 사랑의 힘을 가진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 미지의 타인과 관계를 이루며 삶을 지어 보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어쩌면 결심의 문제예요.
--- p.102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자기의 말을 상대 배우만 듣고 있다는 듯이 말하지만 객석의 관객들도 듣고 있어요. 실은, 관객 들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웃든 울든 숨을 돌리든 어떤 의미를 발견하든 뭐든 하라고, 극장에 앉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죠. 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펜을 쥐면 무대에 오른 배우가 된 심정이에요.
--- p.111
무언가 쓰고 그린다는 건 때때로 쏟아지는 별들에 맞아 죽는 행복 같지만, 저는 늘 누구도 죽지 않을 결말을 그린답니다. 쓰고 그리고 만드는 것, 그 어떤 것도 삶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 p.124
밝은 대낮에 작업실에서 봤던 그림과 달리, 깊은 밤에 혼자 다시 보는 그날의 사진 속 그림은 또 다른 풍경이예요. 무언가 장맛비처럼 격정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이 보여요. 어둡지만 슬프지 않고요. 머리 위로 쏟아지는 그것은 아마 사랑의 다음 장면일 거예요. 미래는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와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쏟아지는 사랑의 미래’라고 붙이기로 했어요.
--- p.143
저는 가끔 어떤 작품 앞에서 자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껴요. 이 그림, 조각, 설치, 영상 앞에 누워 잠들고 싶다.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작품들이 있어요. 마음을 강하게 붙들어서 그 앞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한참 서 있으면 발바닥과 허리가 아파오고 주저 앉고 싶어져요. 앉으면 눕고 싶어질 것이고, 모로 누워 작품에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언제 잠든 지도 모르는 채로 잠 속에 빠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 p.167
지난 겨울 아주 추웠던 어느 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건넸을 때 당신의 눈이 붉어졌던 걸 기억해요. 언제가 되었든 이 사람은 꼭 좋은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죠.
--- p.177
프리츠 한센의 가구는 참 우아해요. 그 가구들이 연상하는 삶의 풍경도 우아하고요. 그런데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우아함이라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련되어 있는 듯해요. 저에게 우아함은요. 자가용 뒷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출퇴근하는 모습이 아니라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휠체어 타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지각한 사원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이고요.
--- pp.186~187
안정감을 주는 건 부서지지 않을 단단한 집이 아니라, 새벽녘에 혹 잠이 깰까 조심조심 안아보는 연인이에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 p.187
나는 나니까, 내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물어보지 않아서 몰랐던 마음들이 많았어요. 그걸 알고 나니까 계속 써야겠구나 싶었어요. 계속 쓰고 싶다. 이건 살아 있지만 더 온전하게 살아있고 싶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에요.
--- p.188
그날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미술관 로비에 앉아 ?뮤지엄 아워스?의 카메라 워크를 떠올렸어요. 요한이 박물관에서 일하며 보던 조각상과 그림들, 관객들의 얼굴, 앤의 쓸쓸한 표정, 눈 내리는 빈의 강둑, 서늘한 겨울 풍경까지, 카메라는 동등한 시선으로 담아냈거든요. 영화를 보고 결국 우리 사는 것과 예술작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데에 생각이 이르자, 눈앞에 보이는 모르는 이들의 표정이 참 아름다워 보였고. 갑자기 무엇보다 생생한 작품들로 가득 찬 전시장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었답니다.
--- pp.193~194
예술도 그런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여기 있고, 아무것도 아닌 당신이 거기 있지만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로 연결되며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하나의 의미가 돼요. 작가가 만드는 작품, 작품들을 잇는 전시와 공간을 꾸리는 사람들의 노고, 거기 더해지는 비평가와 관객의 숨, 서로가 오가는 공간에서 연결되는 마음과 생성하는 이야기. 우리는 그저 작은 점이지만 보이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갈 수 있어요. 세상의 다음 장면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어요.
---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