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웬만하면 집구석에 눌러앉아 있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나이 칠십이 넘었으면 모르는 척 눈 딱, 감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동안은 꾹, 꾹, 누르며 참고 또 참았다. 맘엔 없어도 이따금 언죽번죽 비위도 맞춰주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꼴만큼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사십 년 동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몸을 사르며 수고한 나보다 어떻게 그 조그만 강아지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지났으나 ㅎ는 여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벤치에 앉아 땀을 닦으며 ㅎ를 기다리던 나는 소리의 향방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벤치였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여자의 무릎에 앉아 있던 이루보다 작은, 까만 털 복송이 강아지가 나를 발견하곤 짖어대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강아지는 이빨까지 드러내고 더 앙칼지게 짖어댔다. 여자가 목줄을 놓아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통까지 곧추세우고 버둥거렸다. 그 바람에 나무 그늘을 따라 지나던 행인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힐끔거렸다.
땡볕에도 나무들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무수히 펼쳐진 이파리들 위로 빛발이 모든 것을 태울 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공원에서 건너다보이는 ‘청년 과일가게’와 ‘생생 정육점’, ‘SK 핸드폰’도 문은 열려 있었으나 드나드는 손님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땡볕을 피해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ㅎ는 핸드폰도 받지 않았다. 하긴, 어찌할지 몰라 하는 나에게 한 수 가르쳐줄 친구인데, 조금 늦으면 어떤가. 한숨을 길게 토해낸 나는 그때까지도 나를 노려보며 짖고 있는 강아지에게서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왜, 그래?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까짓 강아지 새끼가 뭐라고……. 세게 찬 것도 아니었다. 어디 찰 데가 있다고 힘껏 차겠는가. 그런데도 나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 아내는 내 변명 따위는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당장 죽을 것처럼 숨넘어가는 소리로 엄살을 부리는 이루를 안고 냅다 고래고래 소리부터 질러댔다. 사실 그런 악다구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귀가 따갑도록 듣곤 하여서 이젠 만성이 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날만큼은 나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이다. 내 존재가치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그냥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큰 소리를 질러 봐도 나보다 더 기를 쓰며 강파르게 달려드는 아내를 당해낼 재주는 없었다. 나는 결국 전병접시를 그대로 놔둔 채 아내를 피해 도망치듯 내 방으로 건너오고 말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들어앉아 혼자 씩씩거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끼눈을 뜨고 있는 아내를 상대로 싸울 방법이란 그나마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궁리해낸 것이 가출이었다. 그래, 떠나자. 나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두렵고 싫었다. 결국은 힘겨운 싸움이 될 게 틀림없었다. 또 그런다고 아내가 항복하거나 타협하자고 하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혹 결과가 그렇더라도 추락할 대로 추락한 나 자신의 위상을 생각하면 더 이상 앞뒤를 재고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이참에 아내 못지않게 나만 보면 이빨을 드러내고 가르랑거리는 조그만 그 녀석에게도 단단히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이 칠십에 가출이라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무작정 등산 배낭에 속옷 몇 개와 티셔츠 등을 쑤셔 넣고 아파트를 나왔다. 그렇다고 특별히 갈 곳을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솟구치는 쾌감에 온몸을 떨었다.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단지를 벗어나면서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음한 날씨였다. 마른장마가 열흘 넘게 계속되고 있는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있었다. 그러나 걸음은 이상스럽게도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처음엔 되도록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낯선 곳에서의 시간이 왠지 불안하고 두려운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결국은 지형지물에 익숙한 곳, 큰 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두어 마장쯤 벗어난 곳에 있는 백조 대중사우나의 지하 찜질방을 택했다. 그동안 아내 몰래 여축한 비상금이 좀 있긴 했으나 그것으로 몇 날을 버틸지 알 수 없는 까닭에 경비는 아무튼 아껴야 할 처지였다.
눈두덩이 유난히 튀어나온 찜질방 카운터 여자는 내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배낭을 맡기자 며칠이나 있을 거냐고 퉁명스레 물었다. 나는 어눌하게 하루, 하고는 정말 그 안에 모든 게 다 끝났으면, 하고 바랐다.
---「아주 이상한 가출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