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법학분야에서 실증분석의 비중이 확대되는 현상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은 몇 해 전부터이다. 비록 법학 관련 주제에 실증분석을 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전통적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에서는 실증 분석을 응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우리는 실증분석 기법에 대한 공동강좌의 개설이 필요할 뿐 아니라 새로운 강좌 개설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실증분석을 우리 연구의 핵심분석 기법으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우리들 중 한 명이 버릇처럼 사용하는 전문용어(terminology)를 빌어 표현하자면, 실증분석 기법에 대한 공동강좌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우리는 그러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이론와 경험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우리는 강의를 통해 실증분석에 관한 기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단순히 실증분석 기법을 이론적으로 개관하거나 특정한 사례를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교수법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원인은 첫째, 법학에서 실증분석을 활용한 문헌들을 실증분석의 개관 속에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없었다. 둘째, 강의에서 실증분석을 활용한 문헌을 자주 인용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논문의 내용보다 분석기법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이는 연구논문을 강의 주제에 부합하도록 활용하려는 우리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셋째, 실증분석을 활용한 연구논문들은 그 연구에 사용된 실증 분석 기법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연구논문들이 다루는 (혹은 적어도 관심을 갖는) 주제에 대한 전문적이고 다양한 지식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 중 어떤 것은 세미나를 개최해야 할 정도로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이었으며, 한 주는 사형제도, 다음 주는 기업소유구조 등 매주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주제들을 조명하기보다는 실증 분석의 기법들을 가르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확률론, 추론적 통계, 그리고 회귀분석과 같은 주제를 과도하게 기술적으로 가르치는데 대한 법학도들의 반발로, 이는 오래지 않아 학생들이 우리의 우려(憂慮)를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들 중 한 명이 결합확률(joint probability)과 조건부확률(conditional probability)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강의한 직후 한 학생이 수강을 포기해 버렸다. 유럽의 법률가들 사이에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 법률가는 계산하지 않는다(Iudex non calculat). 그리고 미국의 학생들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학(數學)을 공부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우리는 법학도를 대상으로 하는 실증 분석의 기법에 대한 강의는 법학도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사례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동의를 얻어) 강의 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들 - 예컨대, 개업 변호사 매뉴얼의 일부분, 통계학 및 계량경제학 교재의 일부 장들(chapters), 일반 독자들도 복잡한 통계 절차와 시사점 따위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비전문가들을 위한 입문서 등 - 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강의를 실증분석의 기법에 초점을 맞추기로 변경한 후 우리가 직면한 두 번째 어려움은 법학분야에서 실증 분석에 관한 연구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찾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참고할 만한 내용을 찾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찾은 내용을 강의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각각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학부생을 위한 (최고 수준의) 통계학 교재들이 우리가 찾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었으나, 그 논의들은 지나치게 자주 분석 기법에 치중하거나 비법학도, 예를 들어 경영학도를 겨냥한 것이어서 사례로 들고 있는 것들이 법학도들에게는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세 번째 어려움은 법학도들은 실증 분석의 방법을 활용하기 위하여 기존의 자료들을 이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는 극복하기 매우 힘든 것이었는데, 원인은 일리노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개설된 법학 강좌의 대부분이 실증 자료를 활용하지 않고 실용적, 법적 상식에 기초하여 이해되었기 때문에 법학 강의에서 실증 자료 활용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 기인한 것이었다.
우리는 강좌를 계획하면서 강좌의 수준을 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우리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알맞게 강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제13장의 핵심에 있는 교훈). 우리는 강의 수준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높은 수준은 (1) 법학도로 하여금 향후 실증분석을 수행하는 연구자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고, 낮은 수준은 (2) 법학도로 하여금 실증분석에 대한 정보를 가진 소비자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방식이 요구될 뿐 아니라 다루어지는 범위도 매우 상이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독자들이 정보를 가진 소비자가 되도록 하는 데 비중을 두어 집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되도록 교육시키는 것과 실증분석을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다. 결국 우리는 적어도 수업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양 극단 간에 실제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통계적 기법을 설명할 때에는 비기술적인(nontechnical) 논조를 유지하되,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한 법학 분야로부터 많은 사례들을 찾아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한 학기 동안 학생들로 하여금 팀을 짜서 자체적인 실증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요구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의사들이 새로운 의료기술을 배울 때 받는 지침 세 가지`―`“관찰하라, 시행하라, 가르쳐라”`―`가운데 앞의 두 가지를 적용한 것이다.
적당한 논조를 발견하고,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는 법학 분야의 사례들을 찾아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을 집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수 년간 본고를 집필하던 과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우리들 중 누구도 혼자서는 이 책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공저의 저자들이 유사한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확언하는 데는 명확하고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매우 상이한 경로를 거쳐 실증분석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우리들 중 한 명은 심리학 박사이자 변호사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변호사로서 처음에는 유명한 저자들과 팀을 구성하였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실증 분석에 관한 방법론을 스스로 익혔는데, 이는 지금껏 그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경제학 박사이다. 이러한 세 경로들은 우리에게 매우 여러 가지 면에서 실증 분석에 관한 기술들을 제공하였다. 비록 중복되기도 하지만 심리학과 경제학은 우리에게 다양한 실증 분석 기법들을 제공하였고, 독학자의 경험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특정한 연구 질문에 접근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만약 우리들 중 한 명 또는 두 명이 이 책을 썼더라면, 지금과는 매우 다르게 서술되었을 것이며 그 결과는 훨씬 덜 유익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공동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 강의,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활용한 연구 등을 통해 모두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법학연구 분야에서 실증연구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다룬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조심해야 할 점과 함정을 고려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비기술적인 방식으로 실증연구의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실험적이다. 그리고 법학연구 분야의 실증연구 프로젝트 수행과정 상 많은 단계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실험적이다. 다른 학문분야에서는 수많은 훌륭한 실증연구에 관한 종합적 매뉴얼들이 있고, 그 중에 상당수를 참고문헌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책이 법학연구 분야의 실증분석에 관한 광범위한 내용`―`독자들의 실증연구에 대한 문제제기,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한 연구방법 결정, 자료의 수집, 코딩(coding) 및 분석, 그리고 결과의 소통`―`을 다룬 최초의 시도 중 하나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 책이 수많은 국가의 독자들, 교수들과 학생들, 변호사와 판사들,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법학 분야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