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장안리에사는 선자라고 아세요?"
서글서글한 눈썹 밑에 자수정 같은 눈이 반짝 빛난다.
"아, 예....., 제 동창인데요."
"어머, 어머, 내 생각이 맞았네. 오빠, 나, 선자 동생 선숙이에요, 오빠 육학년 때 나, 삼학년이었는데. 기억 안 나지요? 나는 오빠 기억 다 나는데. 조회 설 때....., 음, 운동회 연습할 때도 맨 앞에서 구령을 넣었잖아."
그랬나? 선자는 기억이 난다. 장안리뿐만 아니라 금촌, 송계를 포함한 삼동에서 선자 따라갈 억척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꺽정이'였으니 말이다. 얼마나 힘이 센지 말만한 머슴애들도 선자에겐 꼼짝 못했으니까. 언젠가 북치재에서 집채만한 나무를 이고 내려오는 선자를 본 적이 있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머슴들이 지게로 져야 할 만큼이나 나뭇짐이 커 보였다. 그런 선자에게 이런 동생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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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더는 햇살을 반사하지 않는다, 숲이 성글어졌기 때문이다. 햇살은 짧고 깊게 숲 속을 찌른다. 헐거워지면서 단단해지는 가을 숲, 바닥까지 환하게 보인다. 가을은 밖에서보다 안에서먼저 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 그래야 내부(마음속)의 숨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다. 풀벌레 소리 점점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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