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도 않은 책들이 쌓여 있지만 읽지 않고 오래 두니 이미 다 읽어버린 양 처음 책을 살 때의 호기심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읽을 책이 멀쩡히 있는데도, 그래도 다른 책을 사게 됩니다. 이미 사둔 거니까 언젠가는 보겠지하는 게으른 자의 변명과 함께.
얼마 전에 인터넷 도서쇼핑몰을 서핑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냥 제목만 보고 골랐습니다. 책 소개를 보니 MBC 느낌표 선정 도서인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로 유명하다던데, 그런 책들에 큰 관심도 없었고, 따라서 저자에 대해 들은 바도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제게는 처음 접하는 작가일 뿐입니다.
가끔 전혀 모르는 작가의 글을 읽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오히려 선입견 없이 그의 글만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오히려 배경 지식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책 선정은 대성공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자꾸자꾸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반성하게 됩니다. 다짐하게 됩니다. 마음이 아프다가도 다시 힘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책을 덮고 제 가슴 속에 '유용주'라는 이름을 깊이 새깁니다. 감히 인생의 스승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유용주의 글은 '잘 다듬어진 글'이라기 보다는 '잘 살아온 글'입니다. 그의 글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삶' 그 자체입니다. 문학이라고 하기에 그의 글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이러합니다.
여기 불을 피워 삶을 녹이는 사람이 있다. 삶은 그 자체로 놓아두면 도대체 뻣뻣하고 딱딱해서 쓸모가 없을뿐더러 깎을 수도 다듬을 수도 휠 수도 없으며 볶거나 데치거나 삶거나 구워 먹을 수가 없는 아주 지독한 놈이다. 가만 놔두면 금방 곰팡이가 슬고 쉬어 빠져서 그냥 내다버릴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는 놈이어서, 요놈은 그저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
사람은 변해야한다느니, 자기 수양을 해야한다느니,하는 말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이라는 게 그냥 놔두면 금방 곰팡이가 슬고...요놈은 그저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니...
그래서 그는 '삶은 문학보다 투철해야 하고 엄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삶에서 좋은 문학이 나오고, 흐트러진 삶에서는 엄정한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남의 글을 빌어 잡문 몇 줄 쓰는 것이 전부인 제게도 게으른 잠이 번쩍 깨는 죽비소리로 들립니다. 저의 나태함을 후려치는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관념에 빠지지 않는 것, 싫증을 내지 않는 것, 울화를 쌓지 않는 것,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 그것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어머니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이겠지요.
일상의 작고 사소한 부분을 시에 담으면 좀팽이라고 무시하고 멀리 떠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풍광을 노래하면 크고 장엄하다고 착각하는데, 이것 참 큰 병폐가 아닌가. 먼저 이곳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먼저 이곳에서 부딪쳐서 피 흘리고 해결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면, 섬기고 모시지 않으면 거기 가서도 별로 얻을 수 없다는 말일세.
그래서 그의 글은 철저하게 현실적입니다. 그의 죽비소리는 그래서 더욱 가까이서 또렷하게 들립니다.
마흔, 귀신도 무섭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많이 포기하고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다. 피도 삭고 뼈도 삭고 정신도 삭아 자꾸 무너지는 나이다.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다. 이 문장을 쓰는데 꼬박 사십 년이 넘게 걸렸다.
나이 마흔에 피도 삭고 뼈도 삭고 정신도 삭다니...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벌써 무너지는 나이라니...
다른 누군가가 만약 이런 말을 했다면, 비록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로(早老)를 비웃었을테지만, 감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꽉 차게 살자. 절대 고독을 견디는 것. 그것은 가을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절대 고독을 견디는 자에게 절대 자유가 온다. 저 잘 익어 떨어지는 씨앗을 보아라. 완전한 단절이 완전한 자유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완전히 끊어 집착하지 않는 삶이 꽉 차게 사는 삶이다. 저 숲길처럼 외로움을 혼자 고스란히 견디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 나는 왜 가을을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고백하자면, 이 가을이 너무 아파 난생 처음 정신과에 상담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의사 말이 '시즈널 디프레션'이라 하는데, 결국은 가을을 탄다는 얘기이고, 의사가 주는 약은 뒤로 하고 맥주로 대신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가을은 선물이기도 병이기도 합니다.
이제 말 줄이고 사는 법, 사람 만나지 않고도 사는 법, 내 스스로 존엄을 지키는 법, 다스려야 한다. 뒤돌아보면 너무 느슨하지 않았는가. 오래 입다 보면 저절로 느슨해지는 속옷 고무줄처럼, 스스로 그냥 늙어버린 것 아닌가. 그 험한 세월을, 얼마나...... 그래, 이렇게 비 오고 바람 불어도 신문배달은 어김없이 오듯 삶은 빈틈없이 저렇게 오는데.
그의 글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A4용지, 곱빼기, 신문배달, 고속버스, 전철, 냄비, 김치, 쏘주, 콘테이너 야드 관계자들, 오륙도 횟집, 노무자, 술병을 꼬불쳐 온 사람, 공공근로, 기계톱...
그에게는 삶 자체가 문학입니다.
그의 글은 삶을 꿰뚫어보되 관조하지 아니하고, 성찰하되 멀리서 하지 아니하고, 깨닫되 문학으로 표현하여 저같은 이에게도 깨달음의 기회를 줍니다. 성찰은 개인의 것이지만 문학은 만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성찰의 문학'입니다.
책을 덮습니다. 유용주를 생각합니다. 나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합니다.
거듭 죽어 거듭 태어나도록 치열하되, 절 마당의 싸리비 자국처럼, 그렇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