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여기에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사람과 돈이 몰리고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미술은 본래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점점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단어로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미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미술을 금융과 부동산, 정치와 행정, 엔터테인먼트와 셀러브리티의 산물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미술품은 양도차익을 통해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자산이며, 동시에 가장 궁극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술품을 다루는 세금 체계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미술품이라는 자산이 이미 제도권 안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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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트시 플랫폼에 새롭게 유입된 한국인 컬렉터의 비율은 2021년 대비 230% 증가하여 성장률 1위에 등극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컬렉터들이 생각보다 모바일을 더욱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에서 아트시 앱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다운로드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이는 모든 유통 채널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동안에도 미술 시장이 여전히 오프라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를 ‘화질’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미술계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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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들이 독식하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의 미술 시장은 훨씬 역동적이다. MZ 컬렉터들이 미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액은 아직 미미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막대하다. 사실 모든 자산 시장을 관통하고 있는 10년 주기설이나 버블론을 차치하고 MZ 컬렉터들이 자체적인 성숙기에 도래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미술 시장을 안정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성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감각과 시각, 하물며 이전에는 없었던 가치 소비라는 새로운 이슈까지 있다. 미술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 계산해야 할 조건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우리는 앞으로의 미술 시장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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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것이 모난 구석이 없는 미술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럴 때는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한눈에 보여줄 때 사용하는 방사형 그래프를 그려보면 판단에 도움이 된다. 거미줄을 연상케 하는 이 그래프를 활용하면 각 능력치가 얼마나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 당신의 마음속에 꽂혀버린 그 작품을 대입해보자. 작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예를 들어 작품의 제작 연도와 소재, 도상,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상징적인 소재와 색상 등을 점수화하고 방사형 그래프를 만든다고 가정해보면 한결 쉽다. 각 요소가 현저히 낮거나 뛰어나다면 들쭉날쭉한 별 모양의 그래프가 완성될 것이다. 반대로 그래프가 완만한 정다각형 형태에 가까울수록 빠지는 구석이 없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미술품이 호불호를 타지 않을 확률은 당연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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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국어사전 읽던 버릇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단어의 의미를 꼼꼼하게 뜯어보거나, 어원을 골똘하게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품’이라는 단어는 그 본질과 완벽히 부합하는 것 같다.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미술’과 물건의 성질과 바탕을 의미하는 명사인 ‘품’이 만나 완성된 ‘미술품’은 음악이나 무용과는 달리 유일하게 거래가 가능한 실재적 예술이다. 이는 실물 자산으로서 양도차익을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 수단이 된다. 이러한 맥락으로 일부 컬렉터들은 미술품을 ‘영혼이 있는 황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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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림 감상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당연히 그림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다. 갤러리의 개념이 프랑스 궁정에서 유래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도 아주 오랜 시간 사회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전시와 작가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시장의 3대 성립 조건인 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중개자가 갖춰지면서 마침내 미술 시장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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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갤러리의 부사장 애덤 셰퍼(Adam Sheffer)가 인터뷰 중 남겼다는 “갤러리는 비즈니스 맨이 아니라 창조적인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말처럼 갤러리는 가장 창조적인 직업을 가진 작가와, 작가보다 더 열정적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컬렉터를 잇는 미술 시장의 최중심부에 서 있다. 앞서 말했듯, 갤러리의 성공은 곧 작가의 성공을 의미한다. 공급자와 중개자의 성공은 곧 수요자의 성공과 직결된다. 이 3개의 톱니바퀴가 완벽한 선순환을 그리며 박자가 딱딱 맞을 때, 미술 시장의 호황기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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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1인당 평균 소비액은 6,106달러로 일반 외래관광객보다 44%나 높다. 비행기를 타고 글로벌 아트페어를 관람하러 온 컬렉터들, 일명 ‘플라잉 컬렉터(flying collector)’들은 컬렉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구매력과 열정을 가졌다. 이들은 높은 성급의 호텔과 훌륭한 한식당을 비롯한 서울의 미쉐린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국내 럭셔리 문화를 향유하며 서울을 경험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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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미술 전시에 이토록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같은 ‘다 판다’ 식의 접근은 아닐 테고 말이다. 백화점이 명품 브랜드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면 쉽게 해답이 나온다. 명품 마케팅의 핵심은 럭셔리, 즉 ‘고급화’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이 기존의 중장년층에서 MZ세대로 소비 타깃층과 눈높이를 한층 낮추며 다가가는 요즘이다. 미술품은 백화점의 ‘이미지 고급화’ 전략의 새로운 대안이 된다. 백화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VIP고객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트바젤이 고액 순자산가 컬렉터들의 컬렉팅 동향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모든 시장의 매출은 소수의 VIP가 만들어 낸다.
--- p.130~131
2023년 4월 삼청동 본점에서 선보이는 이우환 작가와 알렉산더 칼더, 그리고 장미셸 오토니엘의 전시는 국제갤러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과 근사한 비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세계적인 세 작가의 작품들은 갤러리의 각 공간에 들어서 있었지만, 관람객의 눈으로 본 세 작가의 작품은 세 가지 악기가 하나의 하모니로 선율을 만들어낸 듯 서로 아름답게 겹쳐졌다.
--- p.182
글로벌 1, 2, 3위 경매회사가 홍콩에 큰돈을 들여 신사옥을 짓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은 홍콩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왕관을 뺏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23년 3월 홍콩 바젤이 코로나19 직전의 수준으로 행사를 재개하는 동안, 홍콩은 아트시티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하고자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에 감동한 일부 관계자들은 이번 홍콩 바젤로서 다른 도시가 홍콩의 새로운 대안이 될 가능성은 다시 ‘0’에 수렴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 p.225
2023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람의 특성에 근거해 예술을 구분짓는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트 브뤼는 어떠한 예술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초에 대중의 인정이나 찬사도 없이 뚜렷하게 존재해왔다. 그들이 창조하는 모든 세계관과 작품은 전적으로 그 자신만의 것이다. 100년 전 미술계가 우연처럼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을 통해 완벽히 새로운 예술을 만난 것처럼, 아트 브뤼도 현대미술계에 최후로 남아있는 새로운 예술 사조일 수 있다.
--- p.261
앞으로 20년이 흐른 후 우리는 레드칩 작가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미술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시기가 앞으로도 분명히 올 것이고, 그 시점을 위해 모든 작가는 색깔 계급장을 떼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컬렉터로서 후에 역사가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 p.298
과거 한 지역에서만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특별한 조개껍데기가 지구 반대편의 어느 산기슭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미술 시장도 다이내믹한 역사 속에서 예기치 못한 충돌과 탄생을 반복하며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광경을 비교적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컬렉터로서의 즐거움이고 작가로서의 특권이었다. 나의 경험과 분석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더없이 기쁘기만 하다. 동시에 우아함과 다이내믹의 끝판왕인 미술 시장이 나를 또 어디로 이끌어 갈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 p.306~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