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머리
이 장은 단어의 ‘형태’와 ‘의미’ 대응에서 하나의 단어 형태가 둘 이상의 해석을 가질 수 있는 ‘의미 변이(meaning variation)’ 현상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어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그 경계가 불명확하다.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한 어휘 항목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측면에서 의미 변이 현상을 개관한다.
첫째, 의미 변이 현상에 대해서이다. 동일한 형태를 공유한 어휘 항목에 대해 ‘모호성’과 ‘중의성’의 검증을 통해 그 ‘문맥적 변이’를 구별함으로써 의미 변이 현상을 단의어, 다의어, 다면어, 동음이의어의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둘째, 단의어에 대해서이다. 하나의 형태가 하나의 의미를 가진 단의어에 대해 그 설정의 의의, 정의, 기준, 보기를 살펴본다.
셋째, 다의어에 대해서이다. 하나의 단어가 관련된 둘 이상의 의미를 지닌 다의어에 대해 정의, 특성, 그리고 비대칭성을 살펴본다.
넷째, 다면어에 대해서이다. 하나의 어휘 항목이 몇 개의 국면으로 이루어진 다면어를 다의어와 비교해서 기술하며, 다면어의 양상에 대해 두 가지에서 네 가지의 국면으로 이루어진 사례를 살펴본다. 또한, 다면어의 의미 특성을 살펴본다.
다섯째, 동음이의어에 대해서이다. 하나의 어휘 항목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동음이의어의 생성 원인, 경계에 대해 살펴본다.
2. 의미의 변이 현상
동일한 단어 형태가 문맥에 따라 의미적 해석이 다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 형태가 둘 이상의 해석을 가질 수 있는 현상을 ‘의미 변이(meaning variation)’라고 한다(Murphy 2010: 83 참조). 예를 들어, (1)은 하나의 형태이지만 해석이 다른 네 가지 사례이다.
(1) a. 타조는 새1이지만, 새2처럼 날 수 없다.
b. 그는 법1을 전공했지만 세상 사는 법2을 익히지는 못했다.
c. 이 책1은 두껍지만 저 책2만큼 지루하지 않다.
d. 못1이 못2에 빠졌다.
즉, (1a)의 ‘새1’과 ‘새2’는 ‘새’이지만, ‘새2’는 전형적인 ‘새’를 의미한다. (1b)의 ‘법1’은 ‘법률’을 뜻하며 ‘법2’는 ‘이치’나 ‘방식’을 뜻한다. (1c)의 ‘책1’은 [형태]로서 ‘책’을 지칭하고 ‘책2’는 [내용]으로서 ‘책’을 지칭한다. (1d)의 ‘못1’은 ‘목재 따위의 접합이나 고정에 쓰는 물건’이며 ‘못2’는 ‘연못’이다. (1)의 네 가지 용법은 하나의 형태에 대한 의미 변이로서, 그 성격이 다르다.
한 단어의 ‘문맥적 변이(contextual variation)’를 구별하기 위해 ‘모호성’과 ‘중의성’의 검증 방식이 유용한 잣대로 활용될 수 있다.
먼저, ‘모호성(vagueness)’의 경우를 보기로 한다. 어떤 단어가 다양한 문맥에 적용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일반적인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면 그 단어의 의미는 ‘모호하며(vague)’, 이 경우를 ‘단의어’라고 한다. (1a)의 ‘새’는 ‘참새, 까치, 비둘기, 타조’ 등을 동시에 지칭할 수 있으므로 ‘새’의 의미는 모호하며, 따라서 ‘새’는 단의어가 된다.
다음으로, ‘중의성(ambiguity)’의 경우를 보기로 한다. 어떤 단어가 문맥에서 두 가지 용법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면 그 단어의 의미는 ‘중의적이며(ambiguous)’, 다의관계와 동음이의관계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중 ‘다의관계(polysemy)’는 한 단어의 형태가 둘 이상의 관련된 의미를 지닌 것이며, ‘동음이의관계(homonymy)’는 둘 이상 다른 의미의 단어가 하나의 동일한 형태를 지닌 것이다. (1b)의 ‘법’은 ‘법률’과 ‘이치 · 방식’으로, (1c)의 ‘책’은 ‘형태’와 ‘내용’으로 구별되지만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법’의 ‘법률’과 ‘이치 · 방식’은 중심의미와 확장의미의 관계인 반면, ‘책’의 ‘내용’과 ‘형태’는 두 국면이 상호 보완적으로 지각상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변이의 방식이 다르다. 이 점에 유의하여 ‘법’은 ‘다의어’로, ‘책’은 ‘다면어’로 규정한다. 한편, (1d)의 ‘못’은 나무나 쇠로 된 ‘못(釘)’과 ‘연못(池)’으로 구별되므로, 관련성이 없는 ‘동음이의어’이다.
전통적으로 단어의 형태와 의미 간의 변이 또는 불연속성에 대해 ‘단의어’, ‘다의어’, ‘동음이의어’의 세 가지로 구분해 왔다. 그 가운데서 ‘다의어’와 ‘동음이의어’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그 둘은 ‘의미 핵’의 유무 기준으로 구별해 왔다. 곧 의미 핵을 공유하는 경우를 다의어라고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를 동음이의어라고 하는데, 의미 핵의 존재 유무를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는 동음이의어로 처리하였다.
요컨대 이 장에서는 의미 변이를 ‘단의어-다의어-다면어-동음이의어’의 네 가지로 나누고 그 경계는 불명확하다고 보며, 특히 다의어와 동음이의어 간의 경계가 불명확한 경우는 다의어의 개연성에 무게를 두기로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