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푸른 열차군요.' 레녹스가 말했다. '기차는 참 냉혹하죠, 포와로씨? 사람들이 죽고 죽여도 기차는 상관없이 달리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제 말의 뜻을 아실 거에요.'
'물론 알죠. 인생은 기차 같은 겁니다, 마드모와젤. 계속 달리죠. 사실은 그런 게 좋은 거에요.'
'왜요?'
'기차도 결국은 종착역에서는 멈추니까요. 영국 속담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끝난다.' 레녹스가 웃었다. '그 속담은 제게는 해당되지 않아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요. 기차를 믿어요, 마드모와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시니까.'
엔진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기차를 믿어요, 마드모와젤.' 포와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에르큘 포와로를 믿어요. 그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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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서 그는 갈색 종이로 아무렇게나 산 꾸러미를 꺼냈다. 종이를 벗기자 크고 볼품없는 빨간 벨벳상자가 나왔다. 그 가운데에는 휘갈겨 쓴 문자들이 있었고, 그 위에 왕관이 새겨져 있었다. 뚜껑을 열자 비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약간 때 묻은 하얀색을 바탕으로 보석이 피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루비들 중에서 세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일세. 러시아의 캐더린 왕비가 가지고 잇었던 거네. 가운데 있는 것이 '불의 심장'이라고 알려진 것이지. 완벽한 보석이야 ----- 흠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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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임박할 무렵 한 남자가 콩코드 광장을 걷고 있었다. 멋진 털외투가 그의 빈약한 체구를 감싸고 있었지만, 어딘지 음울한 인상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스파이 같은 얼굴을 가진 키가 작은 남자 였다. 겉으로 봐서는 두드러진 역할은 할 수 없고, 어떤 분야에서도 제 몫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별볼일 없어 보이는 이 사람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막대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는 스파이 세계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지금 대사관에서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그것은 대사관측에서는 모르는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달빛에 그의 희고 날카로운 얼굴이 드러났다. 가는 코의 윤곽이 뚜렸했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태인으로 보석상이었다. 그가 그날 밤에 외출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기던 사업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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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올딘은 바로 커즌 가로 가지 않았다. 먼저 시내로 가서 두 사람과 얘기를 나눈 그는 더욱 만족해 했다. 거기에서 그는 지하철을 타고 다운 가로 갔다. 그가 커즌 가를 걷고 있을 때, 160번지 쪽에서 어떤 사람이 나오더니 뒤쪽의 거리로 사라졌다. 그들은 서로 지나쳤다. 그 순간 백만장자는 그 사람이 디렉 케터링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키와 몸집이 비슷했다. 낯선 얼굴도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 만나는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히 뭔가 짚히는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유쾌한 기억은 아닌 듯했다. 그는 기억해 내려고 애썼지만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흔들며 다시 걸었다. 공연히 쓸데 없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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