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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시인동네 시인선-20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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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25*204*20mm
ISBN13 9791158966003
ISBN10 115896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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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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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아름답고
반은 쓸쓸해서

내가 사랑을 하면 저럴까 생각했다

그림자는 자꾸만 길어지고
방울 소리는 홀로 산 아래로 내려간다

입이 있으나 말할 수 없고
내 눈 속에 있지만 내게 없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슬픔처럼
그리운 것들은 다 너머에만 있다

눈부시게 잘 있을 것이다

반은 쓸쓸했으니까
그 반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소」중에서

계란을 쥐어 본다
온도가 없는 세계
온기를 내어줄 세계는 떠난 지 오래

불임인 내가 가만히 응시한다
내게 있으나 내 것이 아닌 세계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아직 표정이 되지 못한 세계
힘껏 쥐지도 못하는 세계

낮은 높이에서 떨어져도 깨지고 마는
그런 세계의 약속

누가 나를 들어 가만히 떨어트린다
오래
떨어진다

감자탕집 좁은 골목에 앉아 깊고 길게 담배를 피운 적 있다
골목에는 언제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들과 나는 어떤 약속도 없다
내가 낯설어질 때마다 겨우 울었던가
끈적한 점액질이 발바닥 밑으로 흘러들었다

너무 쉽게 깨진다는 생각
마치 깨어질 것을 예상했다는 듯
금이 간 모든 것들은 이미 후회로 가득했다

깨진 후에야 깨닫게 되는 생
비린내가 진동한다

거세된 모습은 서로 물끄러미 말이 없다
---「계란의 세계」중에서

매번 당신은 울거나 웃고 있다

누가 더 가엾을까
누가 더 오래 우는 것일까

다만 나는 참는다
단정하려고 애쓴다
피투성이가 되어

내 꿈이 해석될 때마다 당신의 하루가 닫힌다
단 하나의 문장만 그물에 걸려 파닥인다

오래 옮겨가는 마음을 본다
어디에도 닿을 수 없어서
썩어갈 수 없어서

나를 밀어가는 것이 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드림캐쳐」중에서

몇 번을 더 덖어내면
당신의 가장 찬란했던 슬픔이 가벼워질까
그럴 리 없다
이 적막이 따뜻해질 리 없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둥근 꽃잎들

꽃들을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오래 쏟아지는 마음을 보고 있다
이젠 내 마음도 당신 마음도 아닌 것
색깔을 버리고 빛을 잃고
잠드는 다정함

당신의 모든 것은 메마름을 간직하는 것
잊으면 아플 것 같은 계절의 모습으로
오래 간직하려는 향기를 향해
시간의 결 바람이 다 가져가도
미라의 방식으로 고백들이 남을 때

나는 나를 놓치고 만다
달아났던 색깔들이 물속에서 웃고 있다
참으로 따뜻한 잠이구나
달콤하게 풀리는 고요

당신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나요
물속의 잠이 눈처럼 내릴 때
나는 그 속을 걷는다
물결의 흐름에 따라 출렁이는 슬픔도
지금은 한낮의 잠

마른 꽃을 담그며 나는 본다
상처가 결국에는 그 온유로 덮이는 것도
나는 나를 잃고서야 보는 것이다
---「국화차」중에서

어떤 울음은 속이 비어 있다

먹구름 속에서
끝내 떨어지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빗방울처럼

내 안에 그런 울음이 있다고
이미 오래되었다고
마음속엔 울지 못하는 먹구름만 부풀어가고
속없는 울음만 둥글게 뭉쳐지고 있다

빈 것은 빈 것인 채로
그것이 울음일지라도
나의 마음속 우물에 닿는 일일 테니
조금 울어도 괜찮다

아직 내가 가야 할 내일이 있고
아직도 알 수 없는 바람의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야 할 오늘이 있다
---「어떤 울음」중에서

누군가의 면벽은 허공이었다
너무 많은 길은 갈 수 없는 길이라고
선문답처럼
새들이 하늘 속으로 미끄러질 때

멀리 동해를 향해
끝없이 절반의 자세만을 타전하고 있는 나는
침엽의 그늘 속에서
온힘을 다해

웃는다, 웃지 않는다
그러므로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묻지 못한 말들이 허공에서 구름이 되는 동안
---「누군가의 안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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