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삶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요소이고, 인간은 결코 전쟁을 영원히 제거할 수 없으므로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있는 그대로 전쟁을 이해할 수밖에 없고, 냉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쟁을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억제하며, 수행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전장을 다루는 모든 병법서나 군사 이론들은 불안과 공포, 희망, 욕구와 감정 등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의 심리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전쟁사를 살펴보더라도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군을 제압하거나 항전의 의지를 상실시키고,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무찌른 사례를 자주 본다. 전쟁을 일으키고 전투에 사용되는 무기와 장비를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며, 전투를 통해 제압하고자 하는 대상도 모두 인간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자국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탈냉전시대의 여러 국가에서 냉전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갈등, 미국과 구소련 간의 핵 갈등, 그리고 억제되었던 모든 종류의 분쟁이 갑자기 노출되었다. 그것은 민족, 종교, 식민지, 전후 처리, 정권 쟁탈, 민주화, 영토, 자원, 분리독립, 패권, 이념, 통일 등이었다. 냉전 속의 전쟁이나 탈냉전 이후 분쟁은 당시 정치지도자, 국내 정세 또는 국제관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중 지도자의 오해와 오판이 전쟁의 발발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빌헬름 2세, 제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와 무솔리니, 6·25전쟁의 김일성, 중동전의 나세르, 걸프전의 후세인 등이 이에 해당된다. 더구나 인류 역사의 수많은 전쟁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적 목적, 내부의 갈등, 민족과 종교 및 문화의 갈등, 원한과 테러 등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 p.37
전쟁은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기도 했다. 인류의 기술 중 상당수는 전쟁 수행 및 전쟁을 대비하려는 수요에 따라 전파되어 왔다. 전쟁은 파괴된 사회의 기반시설 복구 등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무기를 개발하고 물자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돈을 흐르게 함으로써 시장을 확대하고 발전시켰다. 기술은 개발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있어야만 가치를 발휘한다. 전쟁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기회이기도 하다. 대규모 건축 기술은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요새와 성을 쌓는 기술에서 발전했고, 강철 제조 기술은 대포를 만들기 위해, 화약은 대포를 작동시키기 위해 보급되었다. 전쟁에 필요한 기술들은 이후 군사 분야가 아닌 민간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전쟁과 연관된 건강이나 생명 관련 기술은 빠르게 보급되었고, 시장이 커진 후 그 기술은 민간 분야로 옮겨갔다.
--- p.60
군대의 단체심리는 단순히 군인 개개인의 심리를 합친 것이 아니다. 이는 일정한 특수성과 표현 방식을 갖추고 있으며, 군인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전투 중에 단체가 함께 돌격을 외치면 아무리 겁이 많은 군인이라도 용감하게 공격한다. 마찬가지로 군인 개개인의 심리도 군대의 단체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은 군대의 독립된 행동이 아니다. 교전하는 양측이 군사력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외교, 과학과 문화를 둘러싸고 펼치는 전면적인 힘겨루기다. 사회단체심리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유체계와 공통적인 목적, 의지, 도덕규칙 등 심리 현상의 총합이다. 이는 군대를 포함한 전체 시민들의 심리를 반영하는데, 특히 계층 및 민족의 심리적 특징을 나타낸다.
--- p.111
특히 자본주의경제의 확산에 따라 국제적 상호 의존성과 무역이 증대되면 전쟁이라는 비상사태가 환영받기 어렵고, 국민복지가 우선되어 군비에 대한 투자가 쉽지 않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군비가 감축되고, 군비 증가의 둔화로 전쟁에 대한 염려도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확산이 전쟁의 감소와 직결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발발하고 있고, 아직까지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아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테러 등에서 보듯 미래의 전쟁은 과거와 달리 전혀 다른 형태로 수행될 수 있다. 전쟁은 쌍방의 합의가 아니라 일방의 시도로 발발하기 때문에 특정한 국가가 침략할 경우 민주주의국가라도 전쟁에 임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정한 국익이 침해받으면 전체주의와 유사하게 국민감정이 격양되어 전쟁을 발발할 수 있다. 또한 개개인은 도덕적이라고 하더라도 국가라는 조직 안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극단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