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는 물론 그 어떤 존재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의 시각과 인식은 어느 시점에 형성된 생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변화하는 존재와 불변하는 고정된 기억 사이의 충돌’에 따라 고통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간은 흐르고 사물은 변화한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보라 선과 악, 죄와 벌, 천국과 죽음,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 위기와 기회, 창과 방패, 시작과 끝, 음과 양이라고 어느 시점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또 다른 어느 시점에서 똑같이 여겨지던가?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악이 되고 악이라고 생각되던 것들이 선이 되는 것, 위기가 기회가 되고 기회가 위기가 되는 것 등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시공간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지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특정한 순간들과 존재에 대해 아름다운 과거로 남겨져 있기에 이 과거를 다시 경험하고 포착하고자 하는 욕망과 현재와의 괴리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욕망이 절대로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항상 모순과 혼돈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피곤하고 힘든 것이다. 고로 우리의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데 어쩔 수 없이 피곤하고 힘들다는 모순적인 특성을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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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고생 끝에 이제야 인생이 피나 했는데 시한부 인생이라니 정말 안타깝구나” 그런데 병문안을 갔다 온 친구 중 한 명이 병문안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고로 죽게 된 친구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겨우 하루밖에 못 사는데 친구가 1년밖에 못 산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위문을 한 셈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위로하다 바로 자신이 죽음에 맞닥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란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세상의 좋고 나쁨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자만할 것도,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너무 낙심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살다 보면 먹구름 뒤에 햇볕이, 햇볕 뒤에 먹구름이 몰려올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변화무쌍하므로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해할 필요도 없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며 우리 손에 달려 있지도 않다. 예측 불가능하고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우리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지 말고 오늘만 살 것처럼 삶을 살고 즐기는 것이 유익하고 바람직한 삶이다. 그러니까 오늘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소중한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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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려고 하면 어느 순간 자신의 자아가 설치게 된다. 내가 아무리 잘하고 내 능력의 최고치를 발휘한다고 할지라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처럼 자연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개개인의 능력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차라리 나를 내려놓고 자신의 운명을 믿으면 된다. 우주 자연의 힘이 우리를 태어나게 했으니 우리를 살게 하는 것도 자연이니까 우리는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고 적당히 순응하고 살면 된다.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그런 무책임한 삶을 살라고 하는 게 아니다.
먼저 내 자아를 내려놓고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살 때 우주의 온갖 기운이 우리를 도와 더욱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내가 내 뜻대로, 내 방식대로 하려는 것은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저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난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주문을 외쳐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감을 덜 수 있으며 에너지가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對天命)이라 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되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종종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본질과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문제는 또 존재한다. 바로 세상과 삶의 의미가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다. 의미는 부서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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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먹고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바라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명예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추구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되고 결국 자신을 망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아직 이루지 못했거나, 얻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이 이루고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쉬지 않고 수고를 마다않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든 우리가 이루거나 이루려고 하는 것들은 결코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텍사스 대학의 하네만 오리츠(Hannemann Ortiz) 교수가 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멕시코의 조그만 어촌 마을을 방문한 한 미국인 벤처투자자가 해변에서 어부를 만났다. 그는 어부에게 물었다.
“이 물고기를 잡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얼마 안 걸렸어, 그저 잠깐.”
투자자가 궁금한 듯 또 물었다.
“왜 더 오래 배를 타면서 더 많은 고기를 잡지 않는 거죠?”
어부는 대답했다.
“그야, 이 정도 물고기면 가족들이 당장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으니까.”
투자자는 다시 물었다.
--- p.161
매사에 위험을 대비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부득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살다 보면 재산적 손실, 소득 감소 등의 재무적 위험이나 실업, 인간관계의 위기, 가족관계의 위기, 자녀 교육, 건강 문제 등 비재무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예기치 않게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위험에 대비하여 행복하고 안정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재무적·비재무적 위험에 처했을 때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위험이 닥쳤을 때 무엇보다도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위험에는 수많은 재무적·비재무적 위험이 존재하기에 각각의 위험에 대한 마음가짐과 대응은 개인의 역량과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수없이 많아 일일이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알 수 없는 위험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안전이 담보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한 재능 중심의 기능주의 사회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안정적인 생존 위에 철저하게 위험을 인지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즉 자본주의에 근간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경제활동을 요구하며 그 가치의 실현은 위험요인에 대한 인지능력과 대응 능력인 위험관리 능력을 요구한다.
--- p.202
우리 인간들은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며 진보하고 있다. 특히나 유별나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속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문득 나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어졌다. 과연 어디로 달리고 있나요? 우리들 인생을 보면 ‘열심히 사는 것’이 삶과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이해하는데 ‘열심히 사는 것’은 도대체 뭘까? 사는 건 그냥 사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어떻게 열심히 살까? 그래서 정말 우리들 인생을 보면 경주마처럼 경쟁하듯 앞만 보고 달리는 느낌이 든다. 숨을 쉬지도 않고 계속 마라톤을 하는 것만 같다. 도대체 어디로 갈까? 도대체 쉼 없이 달려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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