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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철자의 역사

영어 철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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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49g | 153*225*20mm
ISBN13 9788968171086
ISBN10 896817108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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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영국에 살던 켈트족과 로만 브리튼족들은 물결처럼 밀려든 대륙의 게르만 정착자들에게 정복당했다. 이들 게르만족 중 대다수는 앵글족과 색슨족 두 부족이었다. 인종적으로 앵글로 색슨족이라 불리는 침략자들이 사용한 게르만 방언은 공통 게르만어에 속하는 다른 언어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점차 발전시켰고, 우리는 편의상 영국으로 이주한 시기부터의 게르만어를 영어라 부른다.

영어 철자의 역사는 영어라는 언어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로마와 아일랜드 선교사들이 앵글로 색슨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6세기말에는 양피지를 사용하는 방법과 함께 로만 알파벳을 소개해준 것이 [영어 철자의] 시작이다.

앵글로 색슨족이 이주한 이후부터 기독교 개종까지의 기간 동안에 쓰인 영어 기록물 샘플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들이 글자를 쓰는 방법을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 침략 이전 오랫동안 모든 게르만 부족은 룬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비교적 늦은 시기(7세기 이후로 계속)의 기록물로 남아있긴 하지만 앵글로 색슨족이 5세기에 룬 문자를 그들과 함께 가져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룬 문자는 유럽 공통 알파벳 가운데 북 이탈리아 형에서부터 유래되어 그리스도 탄생 이전 여러 세기 동안 변형되어 왔으며, 어떤 글자에서는 로만 알파벳 글자들과의 관련성도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룬 문자에 대한 현대식 이름인 F-U-TH-O-R-C(프소락)의 [f]와 [r] 글자가 있다. 프소락의 특별한 특징, 즉 다른 인구어의 알파벳과 구분되는 특징은 글자 형태가 직선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으로 이는 특히 나무, 돌, 뼈에 글자를 새길 때 유용하다.

영국에서의 쓰기의 발전이 룬 문자를 새기는 것에서 기독교 시대의 로만 알파벳쓰기로 연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룬 문자의 초기 사용은 엄격하게 말해 이 책에서 말하는 철자의 역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룬 문자가 일단 이교도적 성격을 상실한 이후에는 여러 세기 동안 룬 문자에 대한 관심이 경미하게 되살아났었다. 10세기 말에 만들어진 룬 유물이 영국에서 발견되었으며, 또한 룬 문자들은 옛것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글자 수수께끼(acrostics)로 주의를 끌기 위해 때때로 문헌에 사용되기도 했으며 일부는 약어의 형태로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예: M-룬 글자의 이름인 man은 보통명사 man, 즉 사람이나 남자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영어 철자의 역사에 있어 더 의미 있는 사실은, 두 개의 룬 문자가 영국에서 사용된 로만 알파벳을 보충하기 위해 도입되어, 라틴어 음소 체계에는 없는 영어에서의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중요한 글자는 프소락의 세 번째 글자인 쏜(thorn)으로, 8세기 말부터 문헌에서 발견되는 [þ]이다. 이 글자는 치조 마찰음인 /ð/과 /θ/을 나타내었다. 쏜은 거의 천년 동안 영어로 된 문헌에 사용되었다. 중세영어시기1)에 들어서면서 이 쏜은 그리스어 쎄타2)를 표기하기 위해 라틴어에 사용되었던 철자인 [th]로 점차 대체되었으나, 인쇄기가 대륙으로부터 도입되었던 15세기에도 여전히 충분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용에 반해 대륙형 [인쇄]활자에는 이 글자가 없었기에 당시의 식자공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인 캑스턴(Caxton)은 일반적으로 [th]를 사용했으나 때때로 기존의 인쇄활자 중 쏜과 가장 유사한 형태인[y]를 사용함으로서 타협점을 찾았다.3) 따라서 쏜은 17세기까지 개인적인 논문과 인쇄된 책에, 특히 정관사와 지시형용사의 축약형, ye (the), yt (that)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도 Ye Olde Redde Bulle(이때 /ji/가 아니라 /ði/로 발음된다)(역주: 현대영어로 바꾸면 The Old Red Bull ‘늙은 빨간 황소’)과 같이 일부러 고어처럼 보이게 만든 표지판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다.

영어 철자의 지속적인 역사는 바로 기독교의 도래와 더불어 시작한다. 글로 쓰인 말씀은 신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부속물이었다. 역사의 초기부터 교회는 지상에서 신과 함께 살면서 직접 접촉해왔던 사람들이 글로 써서 남긴 가르침에 많이 의존해 왔었다. 영국의 기독교 개종으로 인한 궁극적인 성공은 외국 선교사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젊은 성직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으며, 그 교육은 성경에 대한 지식과 예배 책의 사용에 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읽고 쓰기 교육의 전파는 아마도 개종의 주춧돌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쓰기가 교회 안에서만 관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은 세속의 통치에서도 교회가 잠재적으로 유용하다는 것을 밝히는데 지체하지 않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앵글로 색슨족의 개종에 있어 중요한 시기는 597년이다. 이때 그레고리 교황(Pope Gregory the Great)이 파견한 선교단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인솔 하에 켄트(Kent)에 도착했다. 어떤 면에서 교황의 권위는 로마 황제의 권위가 존속하고 있음을 나타내었고, 초기 교회는 황실의 선임자로부터 효율적인 조직이 갖는 가치를 배워왔다. 이는 영국에서 교회가 법률을 문서로 집대성하는 것에 즉각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로마의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된 최초의 영국 군주인 켄트의 에델베르흐트(Æðelberht)의 법령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도착한 후 20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616년부터 그가 죽기 전까지 기간 동안의 기록이 되었다. 비록 훨씬 이후의 기록물이긴 하지만, 7세기 켄트의 법령이 3개 이상 남아있다는 사실은 법률 기록이 초기시기에도 잘 확립되어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후 교회와 정부를 동일시하는 태도는 노르만 정복이후 오랫동안 성직자로 넘쳐났던 왕의 비서실(Secretariat), 즉 문서실의 성장에서 알 수 있다. 10세기까지만 해도 문서실(이후에는 Chancery라 불림)은 왕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매일 매일의 업무와, 왕의 법령, 조례의 기록, 그리고 재정기록을 책임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쓰기 교육이 수도원에 한정되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기술은 일반적으로 세속인들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쓰기의 중요성은 영국에서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의 광범위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영국의 기독교는 두 개의 뿌리에서 비롯한다. 뿌리 하나는 로마에 나머지 하나는 아일랜드에 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남쪽의 켄트에 도착하였을 무렵 북쪽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 아일랜드의 수도사들이 이미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영어 문헌에 사용된 글자는 영국의 개종 초기시기에 있었던 아일랜드인들이 가져다 준 가르침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고대영어 글자는 로만 알파벳을 아일랜드인들이 변형해 놓은 것을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기독교는 수도 생활에 대한 열정과 학문에 대한 헌신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앵글로 색슨족은 어디에서나 이 두 가지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열정은 넓게는 영국을 좁게는 노섬브리아를 7세기 말 유럽 지성의 중심지가 되게 하였다. 당시 장서가 잘 보관된 영국의 많은 도서관은 주로 고울(Gaul)에서 수입한 책으로 가득 찼으나, 7세기 중순 이후에는 오히려 영국에서 생산된 책들이 해외로 보내진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노섬브리아의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하였던 비드(Bede) 주교가 죽었던 735년까지 영국 필경사와 학자가 만들어낸 많은 저작물이 유럽에 수출되고 있었다. 물론 이 저작물들은 교회의 국제어인 라틴어로 쓰였지만, 비드는 자신이 복음서와 다른 자료들을 영어로 번역하였다는 기록을 스스로 남기고 있다. 또한 영국 최초의 시인으로 알려진 캐드몬(Cædmon)이 쓴 9행의 시도 영어로 쓰였는데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최초의 영어 기록물로 비드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영국민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tica Gentis Anglorum,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English People).(두 권 모두 비드가 죽기 1~2년 전에 만들어졌다)의 여백에서 볼 수 있다(비드는 캐드몬의 일생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문어체 영어의 역사는 7세기 법령과 비드에 의한 영어 번역물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후자는 오늘날 남아있지 않으며 전자는 이미 현대화된 철자로 바뀐 12세기 사본에만 남아있다. 따라서 영어 철자의 초기 역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원래의 시작점보다는 좀 더 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책의 여백 혹은 행간에 수록된 영어로 쓰인 자료들(캐드몬의 시처럼)은 8세기 라틴어로 된 몇 개의 문헌에 등장한다. 9세기에는 영어로 쓰인 법률 문서가 있고 이후의 사소한 행간 주석은 좀 더 많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철자의 역사를 자세하게 추적할 수 있게끔 충분한 기록이 존재한 것은 바로 알프레드(Alfred) 왕(899년에 죽음) 시기부터이다.

아마도 초기 영국의 왕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알프레드는 사실 영국 전체의 왕이 아니라 웨섹스(Wessex)의 왕이었다.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으로 이주한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소위 현재 영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는 작은 왕국이 많이 등장했다. 그러다 점차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면서 8세기 말에는 단 세 왕국만이 남았다: 험버(Humber) 강 어구부터 동쪽의 포스 퍼스(Firth of Forth)까지 자리하고 있는 노섬브리아, 중부지역의 왕국인 머시아(Mercia) 그리고 템스 강 이남에서 웨스트 색슨족이 지배하고 있었던 웨섹스 3국이다.

9세기 동안 동쪽에서 공격해온 덴마크 바이킹들이 노섬브리아와 머시아를 정복하였고, 9세기 말 알프레드는 웨섹스 후방에서 방어적으로 바이킹들에 대항해 싸웠는데 궁극적으로 성공하여 덴마크인들이 정착하고 통치하는 지역을 대략 런던에서 더비(Derby)까지 이어지는 선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동북쪽 지역으로만 제한할 수 있게 되었다. 10세기 알프레드의 후계자들은 덴마크인들이 사는 지역을 정복하였고 결국 영국의 국경을 오늘날의 것과 거의 유사하게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은 웨스트 색슨 왕실의 지배하에 통일되었다.
---「1장 토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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