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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아닌 세계

세계 아닌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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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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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2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708쪽 | 768g | 133*200*40mm
ISBN13 9788995894224
ISBN10 899589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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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호르헤 볼피 Jorge Volpi
크랙 세대의 대표 주자인 호르헤 볼피는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에서 법학과 문학을 공부한 후 스페인의 살라망카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상인 ‘간이 도서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 『클링조르를 찾아서En busca de Klingsor(1999)』를 필두로, 이후 『광기의 끝El fin de la locura(2003)』과 『세계 아닌 세계No sera la Tierra(2006)』로 이어지는 3부작을 통해 20세기를 재해석해 낸 바 있다. 이 세 작품을 흔히 20세기 3부작이라고 일컫는다. 최근작인 『La tejedora de sombras(2012)』로 ‘플라네타-카사 데 아메리카 상’을 수상했으며 현 멕시코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조혜진
고려대학교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원이자 중남미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군부독재, 페미니즘, 서발턴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역서로는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 『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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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제단인 IMF에서 제니퍼는 군대 지휘관처럼 생각하는 법을 터득했다. 다만 그녀 휘하의 군인들은 무기를 들거나 도시를 포위하고 게릴라나 테러리스트와 맞닥뜨리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협정 임무가 탱크나 보병대가 하는 일과 딱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정복은 매우 은밀하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그녀에 따르면, 오히려 폭력은 필연적이다). --- p.38

어느 새벽, 사랑을 나눈 후 에바가 내게 말했다. 감정이란 진화의 연쇄적인 불안이고, 지성의 병리적 징후이며,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해도 자기 보호를 위한 설명서일 뿐이야. 술에 취하고 벌거벗은 채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랑은 번식을 위한 접착제이고, 분노는 위험 앞의 뇌관이며, 두려움은 고통의, 어쩌면 죽음의 대용물이야. 마치 이런 말들이 최음제라도 되는 양 에바는 쉬지 않고 되풀이했다. --- p.43-44

우리를 괴멸시키는 데에는 적의 침입이나 특별한 무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큰 재난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한 방울의 부주의, 다른 한 방울의 즉흥, 그리고 극소량의 오만함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 p.293

아아, 안누쉬카, 이 러시아라는 지옥, 혹은 연옥에 떨어진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곳엔 온통 유령만 살고 있어요. 당신도 관료의 옷을 입은 땔나무꾼 고르바초프나 술에 찌든 과격한 농부 옐친을 본다면 아마 웃음이 통곡으로 바뀔 거예요. 그렇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에게 반한 미치광이 스탈린은 이제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듣고 놀라는 아이들도 없으며, 그의 얼굴을 본다고 해서 전율이 느껴지지도 않아요. --- p.443-444

소비에트연방은 끔찍한 악몽이었고, 억압과 고문의 원천이었다. 정말 그랬다. 그러나 이리나는 사막에 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과거를 지워버리려는 개혁론자들의 맹목적인 의지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무에서 미래를 건설할 수 있으며, 어떻게 단숨에 백 년간의 역사를 지우려고 할 수 있을까? --- p.444

에바는 서른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노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녀의 등에는 너무나 많은 도시, 너무나 많은 정보, 너무나 많은 남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끊임없는 이동이자 도피였다. 존재를 설명하는 기묘한 방법. 그러나 어쩌면 인생의 유일한 의미는 단지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기에는 소박하고 평범한 목표 같지만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만보다는 더 현명하다. --- p.481

그것은 더럽고 혼돈스러운, 대대로 이어져 온 공포였으며, 이제 막 열린 시대의 명백한 전조였다. 모스크바로 돌아갔을 때, 내 육체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단지 알코올과 폭력, 나 자신의 잔여물로 부풀어 오른 거죽에 불과했다. 비록 평범한 사람-모두가 내게 기대하듯 명석하고 사명감 있는 기자?처럼 처신했지만, 나 역시 한 구의 시체였다. --- p.532

그녀의 유전자는 그녀에게 수천 가지 일을 하도록 강요했고, 절망에 몸부림치게 하거나 심연의 나락으로 내던졌고, 정신이 나갈 때까지, 실신할 때까지 교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유라는 최후의 보루는 지켰다. 어쩌면 인간이 소유한 유일하고 진정한 자유. 종족 번식을 하지 않을 자유, 우리를 평생 옭죄는 그 유전자들을 사형시킬 자유. --- p.544

하지만 언젠가는 너도 네가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겠지. 너는 여기 잠시 있는 거고 네가 원할 때 떠날 수 있어.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아니야. 넌 아프면 약을 구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엔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병원으로 갈 수 있지만 그들은 아니야. 날씨 좋은 어느 날, 불편한 생활과 향토색이 지겨우면 너는 텔아비브에 있는 쇼핑센터나 디스코텍에 갈 수 있지. 그렇지만 그들은 아니야. 큰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어, 앨리슨. 우리는 의사로 여기 있는 거고 언젠가 떠나겠지만 그들은 여기에 몇 백 년이고 계속 있을 거거든. 그리고 그들도 우리만큼이나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
--- p.59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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