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얇아지고 사고는 쪼개지는 시대에 모처럼 오케스트라의 종합 편성을 가진 글을 만나는 반가움. 지적이고 예술적인 ‘풀코스의 파인다이닝’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이런 생각의 근육을 가진 이가 우리 다음 세대에 있고 더구나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젊은 친구라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한때 ‘벚꽃 동산’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절, 규범과 도리에 진심인 아버지와 그저 모성일 수만은 없었던 엄마, 그리고 나의 길고 짧은 사랑들과 다시 다가오는 사랑, 최여정 40년 여정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 조선희 (작가 | 『세 여자』,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사랑이 무엇일까. 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이런 의문으로 책을 펼쳤다. 이토록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책이라니. 사랑이라고 소리 내어 읽고 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랑이 찬란하고 눈부신 달콤함만이 아님을 알게 된 오늘이라서일까.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녀의 글을 따라 연극을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글이 참 달지만 시큰거려 마음에 손을 대고 “괜찮아.” 하고 말해 본다. 그새 마음이 환하고 해사하게 피어났다. 참 봄꽃 같은 책이다. 온 힘을 다해 생을 사랑하고픈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래도 사랑.
- 윤정은 (작가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후딱 읽었습니다. 산문집을 이렇게 단숨에 읽어 보기도 처음입니다. 독자의 마음을 속속까지 읽어 가며 씁니다. 연극을 깊이 사랑해서일까요. 말을 그만두어야 할 때, 지적으로 인용을 해야 할 때, 감상에 잠겨야 할 때를 제대로 압니다. 그래서 구애됨이 없이 막 읽힙니다. 시냇물이 흘러가네 싶을 정도의 천연 그대로라서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길어 올린 글들은 가슴이나 머리로 짜내지 않고, 배로 쓴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와서 부딪히는 말맛과 말의 힘에 저릿저릿해집니다. 솔직하면서 풋풋하고, 세련되었으나 유기농스럽습니다. 단언합니다. 이 산문집을 읽고 나면 최여정과 기필코 와인 한 잔을 하면서 수다를 떨고 싶으실 겁니다. 문득 그녀가 소설을 쓰면 어떨까 지극하게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 챕터를 덮는 순간, 제 마음을 곧장 이해하실 겁니다.
- 고선웅 (연출가 | 서울시립극단 예술 감독)
사랑이라는 어쩌면 가장 뻔한 희곡은 누가, 언제, 누구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지에 따라 매번 다른 작품이 된다. “같은 희곡, 같은 무대라도 어젯밤 보았던 연극이 오늘과 같을 수 없는” 연극처럼. 40대 여성 작가 최여정의 버전은 청춘처럼 마냥 달뜨지도, 노인처럼 완고하게 단념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고유하다. 연극과 사랑을 수려하게 포개 놓은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찬란했기에 더 처절했던 지난 사랑이 생생하게 ‘상영’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최윤아 (한겨레신문 기자 |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보고, 만지고, 냄새 맡기 위한, 객관적 거리 따위는 없다. 최여정은 그냥 안는다. 아주 강하고, 때로는 처절한 끌어안음. 그는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이 무대 위의 ‘극’인지, 자기 가슴의 ‘혼’인지 굳이 구분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대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무수한 크랙을 내곤 거기에 유동하는 무엇인가를 들이붓는다. 사랑? 그래 사랑! 최여정의 사랑은 마치 ‘자성유체(ferrofluid)’ 같달까. 나노 단위로 섬세하게 부서진 쇳가루는 액체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영원히 부유한다. 말하자면 읽는 자의 눈을 액화해 버리는 문장. 그의 문장은 순식간에 스며들어 누구도 쉽게는 예상할 수 없는 모양을 만든다. 우리가 사랑하려는 모든 것의 모양. 그게 연극이든, 인생이든.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무것도 못 쓰겠다.
-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