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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33*221*20mm
ISBN13 9791188502264
ISBN10 118850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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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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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다 손님처럼 온다 하셨다
산길 물길 휘돌고 돌아
야윈 지팡이 하나 옆에 세우고

오다가 물 만나면 물 되었다가
바위 만나면 잠시 바위 되었다가
비 온다고 숨는 법 없다 하셨다

그 고즈넉한 산기슭에 자리 잡고
누우신 지 몇 년이던가
때마다 기웃기웃 오실 거라더니

그리움 꽉 찬 이 가을날
어느 밤쯤 오시려나
내 아버지께서는.
---「가을비」중에서

그리운 것들이
늦은 밤 가로등 아래 흔들리며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한낱 소박한 꿈들이 서성이며 오가는 시간 앞에서
허물어진 담장 아래 피어난 풀꽃을 보았던가
불빛 아래 흐드러진 희망을 읽었던가
살아가는 일이 몹시 마른기침 소리 되어
허공을 떠돌던 시절
청춘의 발자국마다 찍힌 허무와
무의식의 긴 그림자
야윈 어깨 위로 삶이 내려앉아 갈 길을 잃었던가
기차는 오래된 기억을 태우고 긴 여정을 지나
끝도 없는 시간의 언저리로 향하고
이미 지나온 간이역마다
그리운 것들이
늦은 밤 가로등 아래 흔들리며
꽃으로 피어 있었다
---「밤차」중에서

미안하오
나 살아 있음에도
살고 있음을 그대들에게 전하지 못했소

그대 살아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여쭙지 못한 나를 용서하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감히 오늘은 그대들의 안부가
궁금하오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그리운 날

어쩌다 보니 어느날 노을이 지고 있고
저 붉은 강물 끝자락
그대들의 얼굴이 비치고

미안하오
놓치고 지내는 것이 너무 많은 시간들
결코 잊고 사는 것이 아닌 시간들

술잔을 스치던
바람 한 줄기도 애틋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안부」중에서

꿈속에서 기찻길이 보입니다
푸른 나뭇가지들 무성히 흔들리고
하늘엔 실구름 떠다닙니다
잠자리 높이 떼 지어 날고
기차는 긴 여운을 남기며 달려갑니다
동화처럼 놓인 오막살이 하나
그곳엔 누가 살고 있을까요

유년의 아득함으로 달리는 기차
내가 뛰어놀던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엄마 너는 아빠 소꿉놀이와
먼 산 바라보는 놀이와
지금도 아득한 꿈 이야기와
사람이 만나서 헤어지지 않는 이야기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더란다 이야기와

꿈속 오막살이 한 채 지어두고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봅니다
그곳엔 잔잔한 웃음만 있고
슬픔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막살이」중에서

괜찮아
괜찮아
잘 살아왔어
늘 주변도 잘 챙기면서
힘든 내색없이 잘 해왔어

어느덧 오십 끝자락 나이
이제 좀 내려놓아도 돼
어깨에 지고 온 무거운 짐들
모두 내려놔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으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긍정의 힘으로 묵묵히 길을 찾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기

내가 좋아하는 꽃여행도 다니고
좋은 사람들과 늦도록
이야기꽃도 도란도란 피우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그래,
괜찮아
괜찮아
---「내가 나에게」중에서

어무이 부뚜막에 앉아
밥숟가락으로 감자껍질 훑어내고
아부지 마당에서
멍멍이 쫑 밥 먹이고
언니 동생 분주히
빗자루질 걸레질

빨래 또아리는 내가 야물게 잘 틀어
빨랫줄에 탈탈 털어 널었는데

식구들 하나 둘
스물스물 연기처럼 사라져
그리움 되었고
남은 식구들도 멀찌감치
만나기 힘드니
돌아가고픈 어린 시절
꿈속이더라
---「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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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대구 여자, 시를 쓰는 고운 후배. 최경옥 시인의 시를 읽으면 놀처럼, 안개비처럼 혹은 맑은 날의 햇살처럼 짙고도 촉촉하고도 반짝거리는 그리움의 감정이 후욱 인다. 지금은 추억으로 묻혔지만. 시화전이 열리던 복도가 있고 문학청년들이 모여드는 그네가 있던, 그 시절의 Y 놀이터. 시인의 웅숭깊은 시를 읽으면 이미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풍화되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네가 흔들리고 축제처럼 시화전이 다시 열리는 듯하다. 실타래 풀리듯이. 얼었던 물이 흐르기 시작하듯이. 시인의 시가 마음속 풍금을 울리기 시작한다. 한 편을 읽으면 다음 시가 물처럼 바람처럼 저절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를 읽는 동안 아마도,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가장 그리운 먹먹한 시간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 이미애 (동화작가)
지나가는 바람결 하나, 흔들리는 가녀린 꽃망울 하나의 모습도 꽃바람처럼 시로 날리는 그녀만의 재주 덕을 톡톡히 보고 살아온 여럿 중에 하나다 내가. 덕분에 문득문득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참 많이도 돌고 돌아왔지만 풋풋했던 스무살의 청춘이었던 그녀는 시인이 되고 나 또한 꿈꿔왔던 화가가 되었다. 오랫동안 갈고 닦아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유려한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낸다는 그녀에게 어떤 언어로도 그녀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쉽다. 어느덧 이쯤의 나이가 되고보니 인생의 어떠한 이야기도 정겹게 들리는 것은 生이 물들고 익어간다는 방증이 아닐까. 살아오면서 아름답고 행복했던 이야기들 사이에 코끝시린 이야기들조차도 美麗한 詩語로 담금질해낸 그녀의 글이 모든 이에게 용기가 되고 위안이 되리라 믿는다. (추천의 말 中)
- 최화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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