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이라는 용어는 페미니즘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 비판받아 왔음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는 물결 서사와 관련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기보다는, [물결 서사가 가진]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러 생산적인 가능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현재 순간의 정동적인 즉시성에 어떻게 과거와 미래가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하면, 물결은 페미니즘 시간성(feminist temporality)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p.10
나의 목적은 물결 서사에 대하여 정체성이나 세대에 입각하지 않은 접근법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물결의 분리적인 측면이 아닌 에너지의 예외적인 급등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시간성을 퀴어링(queering)할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나는 물결이 강도의 순간으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할 것이다. 제4물결은 나르시시즘적 선언이 아니며, 이전 물결의 단순한 반복도 아니다. 제4물결은 페미니즘 행동주의가 정동적으로 격렬해지는 시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pp.24,27
물결 서사의 배제적인 특성이 교정될 수 있는 만큼, 물결에 번호를 붙이는 접근법은 앞선 물결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함축하지 않는다. 대신 제2물결, 제3물결, 제4물결 운동에 참여했던 페미니스트들이 여전히 활동 중인 가운데에서 유익한 대화가 생겨날 수 있다.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완전한 재발명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새로운 물결의 현현이 사회의 변화된 맥락에 맞추어 달리 응답해야 함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pp.41,42
물결은 확실성을 택하고 정체성을 고정시키고 배제적인 관행을 확립하는 실천이 아닌, 불확실성, 개방성, 정동, 동시대적인 순간과 연관될 수 있다. 동시대는 시간성의 다양한 가능성을 재현하며, 현재 순간을 [과거와 미래가] 수렴하는 자리이자 촉각적인 시간으로 여긴다. 이렇게 물결 서사를 확실성의 기표로 보기를 거부하면 다중성과 불확실성이 번성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이 ‘다중’이라는 관념은 제4물결의 순간에 다양한 목소리와 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언론에서 좋아하는 일부 간판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들과 활동가들이] 일찌감치 식민화되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p.70
선형성을 거부하는 퀴어 시간 기록 및 페미니즘 시간성은 시간과 다른 형태의 관여를 맺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관여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언제나 동시대 행동주의의 즉각적인 순간 속에서 특정한 전진을 제안한다. 이것은 ‘촉각적 시간성’ 또는 ‘닿는(touching) 시간들’의 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서 느낌과 정동은, 과거와 미래 모두에 의해 움직이면서 현재라는 시간 속에 행동주의의 급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pp.78,79
시간적 이동성은 교차성이 동시대 속에서만 실천되지 않고 페미니즘의 역사와 미래에 적용되도록 보장하면서 역사적인 ‘타자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열어젖히는 이러한 방법론은 “과거의 통찰력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이고 지적인 실천에 대한 골치 아프고 미해결된 논쟁 속에 존재하는 미래의 잠재적인 돌파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동시대를 가능케 한다. 나는 제4물결의 출현에 따라 시간성이 수정될 수 있도록 페미니즘의 사유를 동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p.89
물결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연대순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물결의 존재가 오로지 시간의 경과로 귀착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물결의 도래가 필요해진 이유는 페미니즘 밖에서의 시간의 흐름,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기술 내에서 일어난 진보 때문이다. 물결은 연대기적이지만, 물결들이 시간성과 맺는 관계는 시간선이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물결들의 현존은 새로운 물결이 이전의 물결 이후에 그저 시간의 흐름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식으로 임의적인 간격으로 출현한다기보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예고해 온 동시대적 순간에 대한 물결들의 반응성을 통해 결정된다.
---p.95
동시대는 행동주의의 순간에 효력을 발휘하지만, 과거가 현재 행동주의의 조건들 안에서 약화되거나 잊히지 않도록 하면서 행동주의의 순간을 페미니즘의 역사적 지식과 결합한다. 제4물결의 에너지는 정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가게 하는, 페미니즘 활동의 또 다른 급등을 보여 준다. 현재 순간의 형성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과거와 그러한 과거의 실천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물결의 발전은 거의 전적으로 순간의 조건들에 의해 좌우된다. 행동주의가 형태를 갖추는 것은 이 불확실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시간성들의 충돌 속에서다.
---p.103
물결의 순간 속에서 동시대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한 줄기 밝은 빛을 동반하는 어둠을 인지하는 것이자, 진보의 광선이 만드는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p.110
시간에 대한 선형적 이해로 페미니즘을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다양성과 다중성을 삭제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더욱이 이는 이론가들로 하여금 특정한 정체성을 체현하는 것으로 각 물결에 접근하도록 강요한다. 페미니즘의 일부 측면을 과거에 갇혀 있도록 만드는 한편, 하나의 역사적 위치에 그 정체성을 고정시킨다.
---p.113
나는 순간 속에서 나타나는 정동들을 해독하는 방법론을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떻게 정동이 제한된 기간 동안 스스로를 지탱하는 특정한 형태의 공적 느낌을 만들어 정치적 주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지 탐구하려 한다. 정동의 불확실성과 힘, 그리고 정동이 시간을 관통해 생성하는 이행이 독단이나 정확성을 즉시 요청하지 않고도 페미니즘 물결을 출현시킨다.
---p.120
정동의 명사 형태에서조차도 정동을 움직임으로 강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동은 느낌이나 욕망을 단지 압축하는 것만이 아니라 결과적 행위로도 실현된다. 정동들은 정적이지 않다. 정동들은 느낌이나 욕망을 경험하는 주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pp.122,123
느낌을 퍼뜨리는 것은 공공 운동이나 정치 운동에 반응과 감정이 필수 불가결한 맥락을 만들어 낸다.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소셜 미디어에 의존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외밀성’은 “한때는 사적인 정념으로 여겨졌던 것을 전달하는 데 공적 영역이 점점 더 많이 이용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징후다. 이는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 촉진된 고백 문화와 동시대 기술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해 사유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기술은 공적 친밀감과 그에 따른 정동적 결과라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신체 및 개인적 경험과 관련된 사생활이 필연적으로 공적 영역으로 전이되어, 이러한 느낌들이 만들어 내는 정동이 페미니스트 집합체들을 자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p.133
페미니즘은 너무 감정적이라는 혐의로 침묵당한 이력이 있다. 여성들을 히스테리, 느낌에 대한 과잉 열광, 극단적인 예민함과 관련짓는 견고한 역사가 존재한다. 데이비드 캐머런이 2011년 하원 의사당에서 야당 여성 의원에게 “자기야, 진정해(calm down, dear)”라고 한 것은 페미니스트의 정념이나 솔직함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잘 보여 주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p.139
“페미니스트를 감정적이라고 무시하는 것에 대해 페미니즘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는 감정을 ‘생각 없음unthought’으로 이해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p.140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아래에서 살면서 생기는 느낌들로 만들어진 부정적 정동의 다양성에서 나온 것이다. 놀랄 것도 없이, 많은 여성들은 부정적인 정동을 통해 페미니즘으로 왔다. 그 부정적인 정동이 일상적인 성차별에 대한 분노든, 진척 없음에 대한 불만이든, 또는 계속되는 불평등에 수반되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이든 간에 말이다.
---p.142
정동은 들러붙는 특질을 통해 촉각적인 시간성을 만드는 것 외에도 하나의 강력한 움직임 안에서 정치적 주체들을 서로 접착시킬 수 있다. 페미니즘의 관념, 가치 및 대상은 서로 들러붙으며, 따라서 활동가들에게서 특정한 형태의 끈적함을 요구한다. 이는 이러한 대상과 관념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유발하는 정동들이 특정한 느낌의 순간 속 정치에 페미니스트 주체가 붙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p.147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계속 활용하는 동시에 페미니즘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더 광범위한 사회와 같은 방식으로 이 범주를 휘두르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라는 용어를 계속 해체하는 동시에 그러한 정체성 범주와 결부된 불평등을 더 큰 맥락 안에서 다루는 것은 페미니즘의 특권일 것이다.
---p.158
슬럿 워크는 이제 영국의 제4물결 페미니즘에서 기세를 잃은 듯하다. 제4물결은 몸짓과 신속성, 즉각성을 통해 구성될 수 있으며, 물결이 본연의 소멸점에 도달하기 전에 어떤 형태의 행동주의가 필연적으로 사라지거나 멈춘다. 이것이 약점이 아닌 것은 빠르게 조직된 캠페인과 행진은 정치적인 운동 내에서 더 많은 표현을 구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 대상 폭력이라는 지속적인 문제, 그러한 범죄에 대한 투쟁의 필요성에 불이 붙으면서 단일 사건들이 국제적인 현상이 된다. 비록 응답이 페미니즘의 남은 기간에 지속되지 않더라도, 지금은 개별적인 성차별 사건들이 문서화되지 않거나 응답받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pp.186,187
아카이빙 실천은 동시대에 특히 흥미로운 도전 과제들을 제시한다. 아카이빙은 경험의 위계를 만들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우선시함으로써, 큐레이션이 덜 선별적인 새로운 아카이빙 실천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큐레이터는 대부분 수신되는 정보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어, 성희롱과 학대라는 고유한 경험을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분량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대조와 수집을 통해 광범위한 여성 경험에 대한 통찰력을 허용하고, 그렇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사람들의 관점 변화를 가져온다는 의미가 있다.
---pp.188,189
인터넷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던 유토피아적 공간이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은 젠더가 없는 자유의 공간이라는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은 오프라인 현실의 사회적 역학을 복제했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사람들이 물질적 세계에서보다 더 많은 곤경을 쉽게 만들어 내는 무책임한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온라인상에서 가짜 계정과 이름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에, 무례함을 동반한 트롤링이 발생할 수 있다. 여성이 자신의 간단한 정보를 웹상에 노출하는 것은 성폭력과 신체 위협을 감수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폭력에 대한 일종의 책임을 여성의 행위에 묻는 강간 문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사용자가 많은 큰 규모의 플랫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종종 증오와 위협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p.212
트롤이 증가함에 따라 페미니즘 내부에 분노와 저항도 증가한다. 사실상 물결의 시간성과 겹칠 정도로 더 빠른 속도로 발생하는 반격 때문에 물결 자체가 부정성을 키우고 있다. 인터넷에 의해 촉진되는 대화는 활동가들이 ‘반격’에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물결과 그로 인한 반작용이 동일한 시간성 안에서 발생하여 서로를 정동한다는 사실을 공고히 한다. 인터넷이 우리의 현실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관여하고 현실을 창조하는 공간이다.
---p.213
‘클릭티비즘clicktivism’ 현상은 행동주의가 일련의 클릭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용어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캠페인은 청원서에 서명하는 것에 기꺼이 응하지만 컴퓨터를 넘어서서 행동할 필요는 없는, 그러한 인터넷 이용자들로부터 막대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행동주의는 구체적인 쟁점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인터넷 영역에 머무를 뿐이다. 온라인 행동주의는 실제적인 의미에서 행동주의가 아니다. 온라인 행동주의는 점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될 것이지만, 이 행동주의가 물질적 변화로 바뀌지 않는다면, 인터넷에서의 행동주의와 인터넷 바깥의 현실 속 여성 경험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pp.272,273
제4물결은 이 동시대에 활력을 얻어 등장했지만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는 없다. 활동가들은 휴식 없이 싸울 에너지가 없으며, 캠페인도 마찬가지로 그 출현의 맥락이 내적으로 변화하여 페미니즘의 물결에서 이탈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네 번의 페미니즘 물결들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페미니즘은 제도화된 노력 및 풀뿌리 운동과 결합하면서 다시 출현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더 나은 미래에 이르는 운동과 관련해서 맥락과 정동들이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끈적한 급등을 형성하기 위해 수렴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p.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