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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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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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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568쪽 | 722g | 146*206*35mm
ISBN13 9791156623847
ISBN10 115662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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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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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빵이구 과자구 있는 대로 다 내리라요. 사이다랑 시원하게 마실 것들도 다……”
매대 녀인은 자루에 집어넣는다, 구럭지에 넣는다 하며 둘이서도 겨우 들고 갈 만큼 큼직한 짐들을 불이 번쩍 나게 만들어주었다.
기옥은 눈이 동그래서 경식이를 쳐다보았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이게 뭐 많아? 이 더운 때 우리 동무들이 지금 얼마나 땀을 흘리고 있니? 너도 지금 속이 좀 출출하지? 힘들어도 우리 좀 같이 들고 가자꾸나.”
경식은 주머니에서 돈을 아무렇게 훌쩍 꺼내더니 매대 녀인 앞에 척 내밀었다.
“자, 세여 보라요.”
성수 나서 돈을 세여 보던 매대 녀인이 “어쩌나, 좀 모자라는데……” 하며 난처한 눈으로 경식이를 쳐다보았다.
“모자라요?”
경식은 별로 깊은 생각도 없이 얼른 손목시계를 벗어서 내밀었다.
“아주머니, 이 시계를 맡기자요.”
“원……” 하며 매대 녀인은 펄쩍 뛴다.
---「그들의 아들딸들」중에서

수십 년 세월 최국락은 지배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인간으로서나 일군으로서나 거의 부족점(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나라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가슴 깊이 간직할 줄도 알고 당에서 의도하는 일이라면 앞에서 하는 말이나 뒤에서 하는 말이나 늘 똑같았으며 종업원들이 혹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면 제가 먼저 인사를 하는 지배인이였다. 수백 명의 종업원들 속에서 자식들의 걱정스러운 문제만 생기면 초급일군으로부터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떨쳐나 뛰도록 하였다. 자식 문제에 들어가서는 내 자식, 남의 자식이 따로 없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것이 홍유철이였다. 그래서 더구나 종업원들은 그를 두고 ‘우리 지배인’이라고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만 집안에서 자식을 잘못 키운 것 때문에 사람들의 말밥(구설수)에 오르고 일군으로서 처신 문제라도 생기지 않을가 하는 것이 최국락에게는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자식을 이겨내는 부모가 없다더니 우리 지배인도 역시 그래서 그러는지……
---「캄캄한 밤」중에서

“아니다.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작고, 다 똑같은 사과는 아니였다. 그리고 어떤 사과는 빨갛게 잘 익었구 어떤 사과는 시퍼렇게 덜 익었구…… 네 손은 다른 동무들의 손보다 먼저 제일 큰 사과를 골라 쥐더라. 그게 아무리 컸댔자 한 입 차이밖에 안 돼. 그 한 입 차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구 이 담에 어른이 돼서도 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으로까지 돼.……”
그때도 나는 어쩐지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첫 스승들과 그의 제자들」중에서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맞받아 찾아가겠수다. 어데다 대구……”
“뭐?”
“지배인도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사람이고 운전사도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사람인데, 그래 우리 사회에 어디 높은 집이 따로 있구 낮은 집이 따로 있답디까?”
오순은 너무 화가 나서 펄펄 뛰다싶이 하였다.
여기에 기옥이까지 불붙는 데 키질을 하며 투덜대였다.
“내가 그 못난이한테 시집 가? 흥, 어머니! 그 집에 찾아갈 때 나도 같이 가자요. 같이 가서 내가 다 빠개겠어요.……”
최국락의 호령소리가 방안을 들었다 놓았다.
“이건 무슨 란장판(난장판)들이야? 이 집은 가장도 없구 웃사람도 없는 제개비네 집안(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집안. 질서와 규율이 없는 집안)이야?”
---「수수께끼」중에서

어쩌면 우리 아버지가…… 경식은 울음을 참느라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어깨만을 들먹이다가 끝내는 흑흑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그제야 홍유철은 한 발 두 발 원탁 앞에서 천천히 몸을 돌리였다.
“경식아……”
“아버지!”
경식은 와락 달려가서 아버지의 두 손을 부둥켜안았다. 보온병의 더운 물이 쏟아진 아버지의 손등은 아직도 따거운 듯하여 경식의 가슴을 마구 허비였다.
“아버지! 나를 때려주십시오. 아버지 앞에 죄를 지은 이 놈을 때려주십시오, 아버지.”
홍유철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경식의 손등에 뜨거운 것이 뚝뚝 떨어질 뿐이였다.
흐느끼며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도 울고 있었다.
---「끝나자 새로 시작」중에서

“언젠가 우리 약초포전을 같이 걸으면서 그때 자네가 이런 말을 했던 생각이 나네. 꽃보다 더 고운 게 잘 익은 열매인 것 같다구…… 하긴 꽃이 왜 곱게 피겠나? 사랑이지! 그 사랑이 열매를 낳거던. 잎사귀가 푸르싱싱한 건 제가 낳은 그 열매를 자래우기 위한 거구 단풍이 그처럼 불타는 건 마지막까지 저를 깡그리 다 불태워서 제가 낳은 열매를 딴딴히 여물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나? 그런데 나는 제 이름 석 자를 치장질하는 데만 온 정신을 팔았지. 제가 낳은 열매를 충실히 여물도록 할 생각은 미처 못 했거던.……”
홍유철은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흙을 파헤치더니 거기에 은행 씨를 정성껏 심어놓고 꽁꽁 다져주었다. 이 한 알의 씨앗도 이제 멀지 않아 저를 낳아 자래워준 저 은행나무와 꼭 같은 모습으로 이 대지에 솟아나서 무성한 가지를 활짝 펼치게 될 것이다.
---「같이 가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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