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번역자.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 당선. 「사이언스 타임스」, 「판타스틱」, 「과학동아」, 「크로스 로드」, '네이버' 등에 단편소설을 실었다. 옮긴 책으로 『뉴로맨서』, 『이상한 존』, 『무드셀라의 아이들』 등이 있다. 「프레시안 북스」에 서평을 게재 중이며 SF 창작 강의도 하고 있다.
에타 세타 IV는 여기저기로 확장 중인 세타간다 제국의 심장이자 모성이었다. 마일즈는 정상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여덟 개의 선진 행성뿐 아니라 연합 관계를 맺고 있거나 괴뢰정부가 수립된 동수의 속국들도 제국의 범위에 넣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타간다의 겜 귀족들은 이웃 국가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세를 더 멀리 확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능하기만 했다면.---1장
마일즈는 반쯤 옷을 걸친 채 손에 든 번쩍거리는 막대를 돌려보면서 바라야 대사가 할당해준 광활한 거실형 침실 안을 거닐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걸 가질 생각이라면 여기에 숨기든가 직접 품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야?” 이반은 깃이 높은 군용 재킷과 옆줄에 장식이 들어간 바지와 새 녹색 평복과 짝을 이루는 반장화를 단정하게 차려 입고 천장을 보며 눈을 굴렸다. “그것 좀 그만 갖고 놀고 옷을 입지그래? 안 그러면 늦는다고. 어쩌면 그건 예쁘장한 커튼 추인지도 모르잖아. 그런데도 깊은 의미에다가 음모까지 욱여넣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네 얘기를 듣다가 미치든가. 겜 귀족 하나가 짓궂은 장난에 쓰려고 만든 걸 수도 있잖아.”---2장
몇 살일까? 스물? 마흔? 그녀는 호트 여성이었다. 따라서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옛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그녀보다 훨씬 덜 영광스러운, 은박과 금박을 입힌 성상을 숭배했다. 지금 마일즈는 무릎을 꿇고 있었으며 어떻게 그 자리에 왔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일즈는 이제 사람들이 왜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느낌은 자유낙하시에 밀려오는 메슥거리는 현기증과 도 같았다. 그리고 그와 똑같이 엄청난 흥분이 몰려왔고, 그다음 차례는 빠르게 밀려오는 현실과 충돌하면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지겨운 확실성이었다. 마일즈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흰 슬리퍼를 신고 있으며 완벽하게 생긴 그녀의 발 앞에 대열쇠를 내려놓은 다음 뒤로 물러나서 기다렸다. 이게 운명의 장난이로구나.---5장
바라야에 불충할 생각은 없었지만 마일즈는 어느새 자신이 세타간다 보안사 소속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바 루라 자살 사건의 수사 책임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고 그런 자료에 접근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리안이 그럴 만한 정신력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세타간다 보안사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는 게 아주 필수적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일즈는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한숨을 쉬었다.---7장
“흠.” 보르리디가 의자에 몸을 묻고 뺨을 문질렀다. “자.” 그가 쌀쌀맞게 말했다. “자네가 신에게서 비밀 임무를 받고 여기에 온 거라면.” 보안사 요원의 관점에서 볼 때 신과 사이먼 일리얀은 같은 존재였다. “자네는 ‘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이라고 적힌 명령서 같은 걸 들고 왔겠지. 그러면 불쌍한 보안사 지부 요원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될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