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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 보고서

프레이저 보고서

: 악당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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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676쪽 | 610g | 172*248*35mm
ISBN13 9788997792030
ISBN10 899779203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연구회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는 위원장인 프레이저의원의 이름을 따서 프레이저위원회라고도 불린다. 소위원회는 1976년 내내 소규모의 조사를 통해 한국정부가 미합중국에서 매수와 뇌물, 협박과 괴롭힘 등 부적절하고 불법적인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강력한 암시들을 찾아냈고, 한-미관계의 조사에 들어가서 이 보고서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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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확실한 공산주의자였다

주한 미 관리들의 반대가 많았던 것은 쿠데타 지도자들의 배경에 대한 무지에서 줄기가 나왔는데, 과거에 공산주의 활동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담은 미 정보보고서 때문이다. 이 보고서들에는 남한에서 몇 개의 그룹들로 통제력이 분명해지기 전인 1940년대 중반, 군 장교로 있던 박정희가 공산주의와 시시덕거렸다고 되어있었다. 증거에 의하면, 1948년 여수반란 내내 박정희는 확실한 공산주의자였다. 이후 재판을 받아 유죄가 입증되었고, 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략 3백여 명에 이르는 공산주의자 요원들의 체포를 이끌어내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명백한 이유로, 형 집행이 취소되었다. 박의 형량은 정일권과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10년으로 감형되었다고 한다.
미 대사관의 공보담당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이 넌지시 말하기를, 대부분의 쿠데타 참가자들이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과 미군 사이의 접촉이 제한적이었다고 했다.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 통제로 복귀시키는 것도 쟁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장면정부는 대리대사 마셜 그린, 정치자문관 도널드 레너드(Donald Ranard), 공보관 그레고리 헨더슨 등 대사관의 핵심 그룹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장면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들 그룹은 장면정부가 이승만정부보다 훨씬 민주적일뿐더러, 부분적으로는 미 대사관의 요구로 마지못해 경제와 국방, 그리고 외교정책을 채택했지만, 훨씬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게다가 방위비의 매우 큰 부분을 부담하기로 동의했다. 후에 헨더슨은, 그렇게 광범위한 조처를 실행하는데 있어 장면정부가 직면했던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 기술했다. 비록 의도는 좋았더라도, 미국이 그러한 정책을 고집한 것은 장면정부의 취약성 때문에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들 미국 관리들이 이후 10년 동안 한-미관계에서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 50쪽

내가 국가다

11월 21일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91.9%가 투표에 참여했고, 그 중 91.5%가 찬성했다. 정부는 유신 개혁 아래에서 신속히 움직였다. 12월 13일에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박 대통령은 12월 23일에 새로운 헌법에 의해 제공된 통일주체국민회의라 불리는 특별한 선거기관에 의해 유효표 모두를 획득함으로써 재선되었다. 12월 27일 취임식에서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다음 해 2월 27일 146명의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선출되었다. 그중 73명은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소속이었다. 나머지 49명의 지지자들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형식적 승인을 거쳐 박정희가 임명했다. 국회는 3월 12일에 개원했다. 같은 날 박은 대중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켰다.
본질적으로, 유신헌법은 모든 권력을 사실상 박대통령의 수중에 두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장이고, 선거를 감독하는 중앙선거위원회의 구성원들을 임명하며, 국회의원의 1/3을 지명하고, 언제든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또한 모든 법관들의 임명권과 징계권을 가지며, 국회에서 통과되는 법이 합헌적인지를 결정하는 헌법위원회의 모든 위원들을 임명한다.
이러한 합의들이 부적절하다고 대통령에 의해 간주되면, ‘국가안보나 공공의 안전과 질서가 심각히 위협받거나 받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라는 그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어떠한 국가적 문제에 관해서도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 78쪽

백악관 보좌관에게 1만 달러를 들이밀다

한국중앙정보부는 한국정부를 대신해서 활동하고 있는 비-외교사절들에게 운영의 책임들을 더욱 위임함으로써 인력 문제들의 일부를 해결한 것으로 보였다. 그 결과 중 하나가 활동들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한국중정의 노출도를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이 기간 내내 주한 미 대사관은 여전히 박동선의 서울 활동을 주의 깊게 감시했다. 1974년 2월에 주한 미국 대사는 국무부에 두 통의 편지를 발송했는데, 박동선이 계속적으로 의회사절단에 간섭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비브 대사는 대사관의 어느 누구도 박동선과 접촉하지 말하는 경고를 다시 언급했다. 그는 방문 중인 의원들에게 이런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고 적었다.
1974년 봄에 국무부 관리들은 한국이 백악관에 대한 작업을 확대하려고 시도 중이라는 첫 번째 징후를 접수했다. 한국 출장 중이던 백악관 보좌관 존 나이덱커가 출국 직전에 박종규의 측근에게서 봉투를 하나 받았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로비스트’로 신원 확인된 한국 국회의원 노진환이 앞서 접근한 것이 의심스러웠던 데다가, 방문기간 내내 그를 수행했던 한국 경호원들이 지나치게 통제를 한 것도 의심스러웠던 나이덱커는 봉투를 열어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미 대사관 참모에게 넘겨주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헤이그 장군과 존 프뢰브(John Froebe)에게 사건을 보고했다. 봉투의 내용물은 1백 달러짜리 지폐로 된 1만 달러였다고, 그에게 통보되었다. 국무부 문서는 1974년 5월 6일에 하비브 대사가 편지와 함께 1만 달러를 박종규에게 돌려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지에는 박종규로부터 온 봉투가 반환되어야 한다고, 나이덱커가 말했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결과적으로 하비브가 직접 박종규에게 거절을 표명했다.
나이덱커는 노진환이 다시 몇 차례 그를 찾아왔다고 증언했다. 한 번은 그가 대통령, 대통령 가족, 개인참모 그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참모들을 위한 선물을 가져왔다. 모든 것이 되돌려졌다. 또 다른 경우에 노진환은 박종규를 미국에 데려올 테니 나이덱커가 접대해달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노진환은 또한 하원의원들과 상원의원들 선거운동에 기부하는데 나이덱커가 연결통로로서 일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하원의원 후보에게는 5천 달러, 상원의원 후보에게는 3만 달러까지 제공하기 원했다.
---------------- 241쪽
한국에 대한 미국의 목표

한-미 경제관계는 양국의 전략적 안보적 관심사를 살펴보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AID가 한국의 경제 개발에 개입한 것은, 미국의 목적들을 광범위하게 지원하는데 있었다.
발전은 궁극적으로 한국이 스스로를 방어할 것이고,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공산국가들 사이의 확고한 완충장치를 만들어 낼 것이고, 한국 방어의 재정적 부담으로부터 미국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또한 발전은 이러한 목적들을 떠받치는 정치적 안정과 국내적 치안을 육성할 것이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강력한 한국은 비공산주의적 발전 체계의 효력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많은 부분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보았는데, 충분한 경제력으로 자주국방을 이루고 미국에 대한 군사 의존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이것은 특히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그랬다. 한국인들이 미국의 공약 축소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인식했고, 엄격한 내부 통제에 대한 정당화로 사용했다.
한 가지 역설적인 의미는, 한국의 경제적 성공을 위한 조치와 이를 위해 미국이 취한 조치가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들을 발생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에 군 병력수준을 감축하려는 미국의 입장은, 부분적으로는 한국 경제가 방위부담의 상당 부분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결론에 근거했다. 한국 섬유산업의 성장과 미국 경제의 주요부분에 대한 영향의 결과로 미국은 섬유 수출을 제한하려 노력했다.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수출을 제한하는 미국의 정책에 저항했다. 한국의 저항 역시 경제적 자립을 위한 강렬한 열망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과거 의존의 흔적이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과 그것들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미국인들과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강렬한 노력들을 포함하여, 많은 부분에서 한-미관계의 일반적 본질을 결정했다. 심지어 미국정부조차도 경제발전이 한국이 가진 능력들에 대한 인식을 앞질렀다는 것을 인지하는데 실패했고, 의회에 제출한 지원 수준들을 넘어선 궁극적 힘을 강조함으로써 이러 시도들의 개시에 일조했다. --------------------------- 326쪽

자금세탁 업무의 분장

한국에서 권력 정치와 뒤엉키게 된 상행위들, 해외 사업 및 자금 정치의 자금세탁 시스템의 정도에 대한 또 다른 표시는 행정부에서 나왔다는 보고가 서울에서 왔다. 특히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의 결론 이후, 그리고 대규모 일본 상업차관의 유입 이래로 경제 및 상거래 업무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이는 대한민국 내부의 정치업무의 균형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민주공화당의 핵심 및 야당정치인들이 예비선거 해에 지위와 정치적 생존을 유지하는 능력은, 정치자금의 지속적 원천을 제공하는 능력과 함께 상거래 활동들에 직접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기본적으로 4개의 정치경제 권력 구심들이 박정희에 의해 거의 균형 잡히고 통제되면서 발전해가는 것으로 보였다. 김종필(민주공화당 의장), 김성곤(민주공화당 재정위원회 위원장), 이후락(대통령 비서실장), 김형욱(한국중앙정보부 부장)이 그들이었다.
김종필의 활동은 갈수록 다른 3인과 갈등을 일으켰다. 그들 3인의 자금 조달책임은 다음과 같이 굳어졌다. 김성곤은 수표로 지불되는 자금을 수집했다. 김형욱은 김성곤으로부터 받은 수표를 현금화하는 동시에 현금으로 지불되는 정치자금을 수집했다. 이후락은 스위스에 은밀한 정부자금을 예치하고 관리했다.
상기 사실과 함께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영 역시 자금 조달을 위해 그의 지위를 이용하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1966년 5월에 어느 한국 기업가가 정부차관을 수월하게하기 위해 자금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추가로 더글라스 항공사는 1967년, 알려진 바로는 장의 지원을 대가로 1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요구를 거래상에게 받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장기영은 위에서 언급한 4명에 비해 자금 조달의 핵심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위해, 그리고 개인적 권력을 위해 경쟁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자금 조달자들 사이의 갈등은 급격히 발전했다. 가장 컸던 것 중 하나는 이후락(김형욱과 김성곤은 자주 그와 동맹을 맺었다)과 김종필의 갈등이었다. 이 갈등은 1969년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이미 1965년에 분명해졌다고 앞에서 지적했다.
------------------ 364쪽

이후락은 박정희의 스위스계좌 관리인

박대통령에게 전달된 자금들과 관련하여 본 소위에서 작성한 증언들과 기록들은, 이후락에 의해 수집된 자금들이 스위스 은행계좌에 예치되었고, 원칙적으로 대통령에 의한 용도였다고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후락과 다른 사람들도 대통령에게 자금을 제공했다. 그 돈들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탁자 뒤에 있는 금고 안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스위스 계좌의 존재는 은행 기록들로 구체화되었고, 이동훈(이후락의 아들들 중 한 명)에 의해,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 다수의 청와대 고위관리들 중 최측근에 의해 확인되었다.(후자의 취재원 역시 청와대 은닉처에서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자금들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동훈은 본 소위에서, 스위스의 그 돈들은 대통령이 사용하기 위한 ‘정부자금’이었다고 진술했다. 즉 그 자금은 이후락이 관리했지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추가로, 이동훈은 이후락을 위해 일본에 2백만 달러를 예치했다고 말했다.
한 가지 명백한 의문은, 왜 박정희는 임의로 사용할 비밀자금들을 가질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것이다. 이후락의 아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큰일을 당한 야당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지지자들에게도 지불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한 행정부 보고에 따르면, 이런 과정에서 때때로 정부를 대신해서 활동했던 한 한국인 기업가는, 1973년에 야당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실질적으로 지불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가 언급하기를, 최근보다는 1970년대 초까지도 대통령은 군부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서 육군의 핵심지휘관들을 매수했고, 개인적 기여보다 더 관대하게 지불했다고 보고되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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