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는 두번째로 내게 그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네가 물고늘어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 네가 이기든지 거꾸러지든지 어쨌든 상대는 나다...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혐오로 가득 찬 것 같기도 한 그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네 아버지의 원수의 아들이며 죽은 네 애인의 대리다, 이래도 도망칠 수 있겠니 하고 그 눈은 웃음 뒤쪽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사람 좋은 듯한 표정 뒤에서 처음으로 나는 그의 진짜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소리는 변명이 아니다. 결혼 상대로 그처럼 쉽게 나를 선택한,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해명이 되지 않는 그 과정이 그것을 증명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사실로 변했을 때, 어찌 그것을 우연이나 미신의 탓으로 돌릴 수 가 있겠는가. 더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일 주일 전쯤에야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의 어머니 반응도 역시 그런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충격이 심할 것 같아 처음 일어났던 일에서부터 띄엄띄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멍하니 벽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엄마? 왜 이런 일이 있으면 안돼?”
여러 가지 준비 때문에 회사로 계속 찾아오는 그쪽 사람들과 주위의 수군거림을 더이상 견딜 도리가 없어 사표를 냈던 날이었다. 최진우는 좀더 일찍 직장을 그만두기를 바랐지만, 결혼 뒤에도 나는 나갈 결심을 하고 있었다. 쫓아내면 싸우고, 그래도 별수 없게 되면 최소한 식 올리는 전날까지도 버티고 싶었다.놀고 먹으려고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의 억측처럼 내 결혼은 팔자가 핀 그 따위 행운 같은 것이 아니다. 죽든가 죽이든가, 아무튼 전부를 내걸고 범의 굴로 들어가는 거다... 그런 각오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가 그 집안 자식하고 피를 섞어?” 여전히 벽만 바로본 채,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머니는 한참 만에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요, 엄마. 일이 그렇게 됐어요. 그래선 안 되는 거야?” 될수 있는 대로 부드러운 말을 골라 쓰려 자제를 하면서도, 내 목소리는 거친 그런 것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어떤 끔찍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꺽이지 않을 작정으로 나는 그쪽을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