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다소 긴 주기 중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경험하는 몸 크기의 변화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에 몸의 크기가 변하는 일이 실제로 존재할까? 정답은, 그렇다! (중략) 나비목 친구들 가운데 중앙아메리카에 분포하는 스핑크스 나방Hemeroplanes triptolemus의 애벌레는 아주 두드러지는 방어 사례를 보여준다. 휴식 상태의 애벌레에게는 딱히 놀라운 점이 없다. 몸의 윗부분은 옅은 노란색이고, 아랫부분은 갈색인 아주 평범한 애벌레다. 하지만 애벌레를 간질이는 순간, 펑! 애벌레는 머리와 발을 집어넣고, 가슴을 부풀린 다음 몸의 앞부분을 뒤집어서 완벽하게 뱀 머리 모양을 만들어 낸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된 두 개의 무늬는 흡사 뱀의 눈처럼 보인다. 더욱 실감나는 부분은, 뱀이 상대를 위협할 때 내는 휘파람 소리 같은 숨소리를 애벌레가 흉내 낸다는 사실이다.
--- p.35-36
앨리스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체셔 고양이는 사실, 초판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체셔 고양이는 ‘돼지와 후추’ 챕터에 나오는 공작부인의 부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부엌에서 재채기하지 않는 건 요리사와 아궁이 앞에 엎드린 채 입이 귀까지 걸려 웃고 있는 덩치 큰 고양이뿐이었다.” (중략) 고양이 표정 부호화 시스템(Cat FACS)은 고양이에게서 근육의 움직임과 연관된 열다섯 가지 행동, 귀의 움직임과 관련된 일곱 가지 행동, 스스로 핥기, 소리내기 또는 무언가를 핥기 등 열두 가지 기타 행동을 찾아냈다. (중략) 고양이도 사람처럼 입술을 움직이고 웃는 표정을 만드는 데 여러 근육이 관여한다. ‘대관골근’이라는 특수한 근육의 움직임으로 입술 가장자리를 귀까지 들어올리는 것은 ‘AU12’라는 기호로 표시한다. 그런데 사실 고양이의 입술 가장자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고양이는 돌출악이라서 사람보다 턱이 상당히 두드러진 데다가 털이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가린다. 결국 고양이도 웃을 수 있지만, 그 웃음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고양이의 근육 움직임이 사람의 근육 움직임과 유사하다고 해도, 과연 그 표현이 사람과 고양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일까?
--- p.44-47
앨리스가 애벌레를 만났을 때, 애벌레는 버섯 꼭대기에서 가만히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중략) ‘앨리스’ 책에서는 애벌레 생김새에 관해 이렇다 할 만한 묘사가 없고, 푸른색이라는 정도만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팀 버튼의 영화 등 각색된 작품에서야 색이 입혀진 모습이다. (중략) 그런데 자연에서 실제로 이런 색깔을 갖는 게 가능할까? 정답은, 그렇다! 사실 애벌레는 꽤 선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헤테로캄파 움브라타Heterocampa umbrata의 애벌레는 분홍색과 보라색이고,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노란색과 검은색을 가진 산호랑나비Papilio machaon의 애벌레는 성장 맨 마지막 단계에 초록색, 주황색, 검은색으로 몸을 치장한다.
--- p.86-87
앨리스에게 가장 많은 호감을 얻고, 두 번째 모험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가축은 바로 고양이인데, 그 주인공은 첫 번째 책에 잠시 언급된 다이나와 다이나의 두 딸이자 두 번째 책에 등장하는 아기 고양이 스노드롭과 키티다. 앨리스는 눈물바다에 빠진 다른 동물들에게 다이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중략) “다이나는 우리 고양이야. 생쥐 잡는 데는 우리 고양이를 따라올 게 없지. 게다가! 너희도 다이나가 새 사냥하는 걸 보면 좋을 텐데! 너희 같은 새를 보면 말할 틈도 없이 잡아먹는다니까!” (중략) 지금은 고양이가 가정에서 아주 인기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에는 고양이를 마녀와 악마의 동반자로 여겨서 기피했다. 14세기 중반에 이르러, 흑사병이 유행하자(1346~1350) 고양이가 벼룩을 통해 병을 옮기는 쥐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다는 점이 알려졌다. 빅토리아시대에 루이스 캐럴의 동시대인들은, 동물을 사랑하기로 소문난 빅토리아 여왕에게 자극을 받아 다시 유행처럼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 p.173-174
루이스 캐럴이 살던 시대에는 “mad as a hatter”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중략) 다른 사람들은 이 표현이 19세기에 몇몇 모자 장수가 모자를 만들 때 쓰이는 수은에 노출돼 미쳐버린 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19세기 중반까지 사람들이 착용하는 모자는 주로 펠트 소재였는데, 펠트는 직조되지 않은 섬유로, 양털, 동물 털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합성섬유를 이용해 기계적 작용(마찰, 압력)과 습기, 열을 가해 원자재를 단단히 얽히게 해서 만든다. 과거에는 비버 털이 가장 좋은 재료로 쓰였지만 무분별한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유럽 비버에 이어서 북아메리카 비버까지 희귀해졌고 값도 비싸졌다. 걱정할 필요 없다. 산토끼와 집토끼의 털로 대체가 됐으니 말이다. 다만 토끼털은 생각만큼 펠트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산에 녹인 수은을 이용해 털을 처리하는 ‘캐로팅(carrotting)’이라는 기술이 사용됐다. (중략) 앨리스의 첫 번째 모험 마지막 부분에서, 여왕의 타르트를 훔쳤다고 의심받은 하트잭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모자 장수는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두려움에 몸을 떨다 찻잔에 빵을 빠뜨렸고, 중얼거리며 대답하다가 “너무 심하게 몸을 떤 나머지, 신발까지 벗겨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증상은 수은중독 때문일 수 있다. 앨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는 꽤 밝은 모습이었던 모자 장수가 변했다. 그사이에 중독된 것일까?
--- p.186-19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중 하나는 앨리스가 후카를 피우는 애벌레와 만나는 장면이다. 후카는 수연통과 아주 흡사한 인도의 물담배다. (중략) 사람들은 환각제 사용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앨리스와 애벌레의 만남을 많이 언급한다. 그런데 앨리스의 지각능력이 변한 것이 환각물질을 섭취했기 때문일까? (중략) 애벌레는 앨리스와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떠나면서, 앨리스에게 딱 맞는 몸의 크기를 되찾고 싶으면 버섯조각을 먹으라고 조언한다. (중략) 1955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토드는 이 책을 토대로 하나의 증후군을 새롭게 설명했다. 존 토드는, 어떤 사람은 두통이 있을 때, 물건이나 자기 몸의 비율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앨리스가 버섯조각을 먹었을 때, 머리가 점점 발에서 멀어져 나무 꼭대기 위로 나온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들은 환청을 듣기도 하고, 촉각에 왜곡이 생기거나, 시간개념을 잃기도 한다. 루이스 캐럴 역시 비슷한 증상을 동반한 두통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1856년, 루이스 캐럴은 두통이 원인으로 보이는 시력문제로 안과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작가는 자기 경험을 토대로 앨리스가 겪은 몸의 변화를 묘사했을 수 있다.
--- 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