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말한 것처럼 백합은 처녀성, 순진함, 천상의 순수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백합이… 못된 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부정한 열정과 유혹을 나타낸다는 거야. 이런 말 들어본 적이 있니?”
“아니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빠요. 백합은 성모 마리아님의 꽃인걸요!”
이어 그는 그녀에게 꽃병에 대해 묻는다.
“꽃병이요? 백합을 담는 단지 아닌가요? 예쁜 단지네요.”
“어느 전통에서는 꽃병이 ‘보물’을 의미하기도 하지. 그리고 수태고지란 신께서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보물을 주셨다는 걸 의미한다. 동의하느냐? 꽃병은 ‘단지’이기도 하고, ‘보물’이기도 해. 하지만 꽃병처럼 일상적인 물건들조차 두 개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연금술에서 꽃병이란 처녀의 자궁처럼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를 뜻한다. 꽃병의 주둥이는 천우신조를 받아들이는 곳이지.”---p.53
그녀의 옆모습이다. 투명한 손목에 비친 그녀의 정맥. 겉옷 아래 곡선을 그리며 드러난 그녀의 등. 팬에 데어 생긴 작은 흉터. 그녀의 침착함. 그녀의 의중. 그녀의 동작. 그는 그런 것들을 본다. 치마의 주름. 앞뒤로 움직이는 치맛단. 그녀는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쓸고, 쓸고, 또 쓸고, 그녀가 쓸기를 끝낸 마룻바닥에는 먼지 한 점 없다. 잠시 손을 멈추고 코를 긁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 감동적이기까지 한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녀에게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그녀는 예쁘다. 그는 참을 수가 없다.
그는 문득 그녀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어떤 감정을 느낀다.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친숙한 감정이다. 그는 그녀의 몸을 탐하고,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의 몸을 드러내고,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그는 그녀를 원하지만, 아니,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의 감정은 고상하고, 그의 동기는 순수하지만,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풀어내리고, 그녀의 뺨을 만지고, 그녀의 턱을 더듬는다. 그는 그녀의 놀람을 호기심으로, 머뭇거림을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결국 그녀를 가질 것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교감. 그들의 공감. 둥글게 벌어진 분홍빛 입술은 키스로 채워질 것이다.---p.92
에스더는 조심스럽게 층층이 쌓인 옷들에서 이것저것을 꺼내본다. 가족과 관련된 서류 몇 장과 편지들, 악보가 여기 보관돼 있다. 유리병에 담긴 유치, 동방에서 온 향수병, 여분의 가죽, 자수실, 그리고 책들. 세 권의 책은 전부 유리나가 원하지 않았던 선물이었다. 하녀는 유리나가 책을 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리나의 책들, 문학서적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유리나는 칼뱅파 성경만을 읽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에스더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을 유혹이 찾아온다. 에스더가 갈망하는 것은 주인마님의 지위도 부유함도 아니다. 주인님도 아니다. 그녀는 잠시 앉을 수 있는 자유를, 직접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한다. 긴장감. 또 다른 그녀가 빛 속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는 느낌.---p.110
“그들은 내가 인체를 그리는 법을 모른다고, 해부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그래서 내 작품은 언제나 열등할 거라고 말하죠. 제가 해부학을 모르는 이유를 아시나요?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인체를 그리는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제게 필요한 기법들을 배울 기회도 주지 않아요. 그러면서 제가 그런 기법들을 모른다며 비웃죠. 전 조각이나 다른 그림들로 해부학을 배워야 했어요. 다른 사람의 눈, 다른 사람의 선입관, 다른 사람의 재능의 한계를 거친 신체를 보고 말이죠.”---p.174
《책 읽는 소녀》에는 모두 일곱 명의 여자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대는 1333년부터 2060년까지. 실제로 존재했겠지만 우리로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인물부터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인물,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인물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책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수줍게, 짓궂게, 강인하게, 날카롭게, 우아하게, 고집스럽게, 고결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말은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직설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종의 최소주의적인 화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책을 한 권씩 든 모습으로. 마치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듯.
우리는 결코 타인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내게 바라보이는 어떤 모습을 통해 상대방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타인의 모습이란, 다만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처럼 단편적이고 단면적인 모습들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그림이나 사진이 어떤 결정적인 모습을 담고 있을 때 혹은 우리가 그렇다고 믿을 때, 우리는 낯선 타인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중략) 어쩌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우리를,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인 우리를, 한때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면서.
---p.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