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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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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 김연수 산문집

김연수 | 창비 | 2008년 05월 1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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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90쪽 | 432g | 135*200*20mm
ISBN13 9788936471439
ISBN10 893647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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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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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선 너머는 조국과 민족을 배반하는 자들, 즉 비겁한 자들의 땅이었다. 거기를 꿈꾸다가는 이십대에 은퇴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의 세계 인식 역시 사진으로 찍으면 바닷가에서 찍은 기념사진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는 국경이 필요했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상의 전환 없이도, 혹은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고도 내 다리로 월경(越境)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비겁자가 아닌 몸으로도 얼마든지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깐두부만 먹는 훈츈 사람 이춘대씨」중에서

아무리 멀리 가도 세상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럼 이국이란, 국경의 바깥이란 이제 없어진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미국에도 신화를, 그중에서도 민우를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 아이돌스타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세계다. 해리 캔들이 살던 세계 바깥은 연변대의 그 교수가 살던 세계였고, 그 역도 가능했지만, 이제 우리는 아이돌 스타가 사는 세계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신화 바깥이 없고, 국민 바깥이 없고, 국가 바깥이 없고, 세계 바깥이 없다. (…)
려화는 내게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내 소설을 중국어로 번역하겠노라고 포부를 밝혔다. 외국에서 만나는 코리언들은 다들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
맞아. 이제 번역할 사람이 없어서 소설이 번역되지 않는 건 아닐 거야. 중요한 건 무엇을 쓰느냐의 문제지. 신화 바깥이 없고, 동방신기 바깥이 없다면, 한국문학 바깥도 없다는 소리일 테니까. 정말 한국문학 바깥이 없다면, 네가 써야만 할 건 한국문학이 아니라 문학인 거야…… 그런데 너, 거기서 지금 뭐 하니?
---「신화 바깥도, 동방신기 바깥도 없는데, 너 지금 뭐 하니?」중에서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 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
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가 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내게는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국적만이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다른 존재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만 들고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거의 다른 존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너무나 감미롭다. 그런 점에서 공항은 환각의 극장이며 착각의 궁전이다. 그리하여 공항은 마침내 삶에 대한 절절한 역설이 되는 셈이다. 맞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 「그리고 우리에겐 오직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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