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부속고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1995년부터 한국경제신문에서 8년간 기자로 근무했다. 제4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언론위원장과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의 이사를 맡고 있다.
201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33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2004년 변호사 개업과 동시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가입하였고 2009년 6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민변 상근 사무차장으로 근무하면서 주로 표현의 자유, 사법개혁, 정보인권 등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 2011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특별전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으나 많은 정보인권 현안에도 불구하고 특위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으로 위원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어 위원직에서 사퇴하였다. 현재는 부산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3년 겨울에 태어나서 대원외국어학교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철거촌의 주민들과 추운 겨울 구청장을 만나기 위해 거의 하루 종일 눈을 맞으며 기다려야 했던 경험을 통해 변호사가 되고자 마음먹게 되었고, 현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1센티라도 돌리겠다는 마음으로 민변과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된 관심사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들로 야간집회금지조항 헌법불합치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시청광장 경찰차벽 봉쇄 위헌사건, 제한상영가등급분류기준에 대한 위헌사건 등을 맡아 진행한 바 있다.
1974년 대구 출생. 대구 성화여자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다.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으로 35기로 수료하고 변호사가 된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언론위원회 및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2010년 5월부터 2년간 사무차장을 역임하였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 그리고 성매매피해여성 자활지원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에서 법률지원단으로 함께하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법률자문 및 출연진들의 변호인으로 관련 사건들과 씨름 중이다.
1968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31기를 수료하고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참여하여 언론위원장을 역임하였고, 언론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의 이사(정책위원)로도 일하고 있고, 온라인광고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한양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상법전공)을 수료하였고,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겸임교수(상법 및 계약법)를 하고 있다. 경남기업(주), 농협중앙회, 신용보증기금, 신한생명(주) 등의 자문을 하고 있다.
1966년 경남 함안 시골에서 태어나 마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다녔다. 87년 민주항쟁 한가운데서 학생운동 리더로 있다 방위병으로 군에 입대한다. 제대하고 새 길을 걷겠다며 홀연히 중소기업 공장에 취직한다. 위장취업이 아닌 취업! 지금의 처를 만나러 미국에 가서 넓은 세상을 보고 공장생활 2년 8개월 만에 또 다른 도전, 유학의 길에 나선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법대 LLM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귀국한 뒤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헌법을 공부한다. 그 중간 사법시험에도 합격한 뒤 국내 대형로펌에 취업했다 ‘이건 내 길이 아냐’라고 결정하고 ‘거리의 변호사(Street Lawyer)’ 비슷한 길을 간다. 민주사회를 변호사 모임의 회원이 되어 촛불변호사, 용산참사 변호인으로 활약하고 민변 사무차장 겸 대변인을 지낸다. 정치를 바꿔야 삶이 바뀐다는 생각에 총선에도 도전하지만, 미끄럼을 탄다. 다음에 뭘 할지 고민 중이다. 공저로는 민변 변호사들과 함께 만든 《쫄지마, 형사절차》(1999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