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고지도를 보면 뒤로 산과 언덕이 있는 이 도시에서 가운데를 흐르는 청계천에는 남쪽과 북쪽에서 많은 작은 하천이 흘러들어 독특한 물의 도시를 이룬 모습이 떠오릅니다. 물을 축으로 한 서울의 도시 공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제기한 것과 같은 관점에서 도쿄와 서울의 비교 연구가 진전되기를 기대합니다.
--- p.7, 「’한국어판 서문’」중에서
스미다강은 신앙과 연결되어 신성한 의미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연극 같은 세속적인 놀이 공간과 유곽 같은 욕망의 장소가 생겨났다. ‘성’과 ‘속’이 뒤섞이거나 표리관계로 공존하는 에도의 특징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에도라는 도시 전체를 볼 때 스미다강 안쪽 깊숙한 곳에 이처럼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뒤섞이게 되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매료했다.
--- p.33, 「1장 스미다강―‘물의 도시’의 상징‘」중에서
쇼와시대 초기의 모던 도쿄에서는 서구 도시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물가에 등장한 여러 건축물이 서로 그 맥락을 고려하여 지어졌고, 상관관계 속에서 무리를 이루어 물의 공간축 또는 시가지를 형성했다. 베네치아의 대운하와 상통하는 건물군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모던 도쿄가 물가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이와도 부합한다.
--- p.88, 「2장 니혼바시강―모던 도쿄의 주요 무대」중에서
근대화의 일정 단계에서 도쿄의 ‘동=시타마치’, ‘서=야마노테’의 의미와 역학 관계가 바뀌어 도시의 주역이 시타마치에서 야마노테로 바뀐 것은 에도·도쿄의 조감도 묘사 방법, 구체적으로는 시점의 위치가 달라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1921년 〈대도쿄 조감도〉를 보면 남쪽 고지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구도로 바뀌었다.
--- p.100, 「3장 고토江東―‘강 건너’ 물의 도시론」중에서
에도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베이 에어리어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에 들어 물류 공간이 형성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베이 에어리어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해 왔다. 그 기층을 이어받았고, 그 기억이 남아 있다. 이처럼 에도·도쿄의 해변까지 관심을 넓히면 상상력은 무한히 펼쳐진다.
--- p.125, 「4장 베이 에어리어―개발은 문화로부터」중에서
에도·도쿄가 도시로서 흥미로운 점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울퉁불퉁한 지형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때로는 인공적인 변화도 가미하면서 특징을 살린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 에도는 높낮이 차가 30미터에 이르는 곳에 세워져 지리적·공간적으로 다채로운 도시다. 이렇게 기복이 심한 땅에서 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3차원적인 물의 도시를 발전시킨 예는 에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 p.174, 「5장 왕의 거주지와 해자―역동적인 도시 공간」중에서
최근 들어 특이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기복이 심한 도쿄 지형에 주목하고 그 특징과 재미를 마니아적으로 탐구하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초고층 빌딩이 늘고 오래된 건물과 골목이 사라지는 가운데 시간을 초월한 대지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그 울퉁불퉁한 지형이 만들어내는 불가사의한 분위기에서 도쿄다움의 정수를 발견한다.
--- p.207, 「6장 야마노테―울퉁불퉁한 지형에 숨은 의미」중에서
내가 두 살 때부터 자란 스기나미구의 나리무네(成宗: 현 나리타히가시. 가장 가까운 역은 아사가야역) 주변도 전형적인 교외 지역의 하나였다. 이렇다 할 특별한 것도 없는 도쿄 교외를 어떻게 사람들이 좀 더 재미있고 풍요로운 곳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게 할 수 있을까? 교외 주택지로 발전한 근대만 살펴보아서는 연구에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 기능성과 효율성에 기반한 경제 논리만 눈에 띌 뿐이다. 장소에 깃든 드라마를 발견하고 기억의 단층을 파헤치는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 p.231, 「7장 스기나미·나리무네―원풍경을 찾아서」중에서
무사시노 대지를 흐르는 강의 중요한 수원(水源)이기도 한 ‘연못’에 주목해 보자. 이들 연못은 모두 도쿄 특유의 자연 조건이 가져다주는 혜택, 곧 ‘용수(湧水)’가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도심 속 오아시스로 자리잡은 용수에 의해 형성된 연못이 많은 것도 물의 도시 도쿄의 특징 중 하나다.
--- p.259, 「8장 무사시노―이노카시라 연못, 간다강, 다마강 상수시설」중에서
발상을 전환하고 확장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물의 도시 도쿄를 연구해 보면 이렇게 지형 변화가 많고 다양한 수자원의 혜택을 받은 도시는 국내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뚜렷이 나타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특징인 일본다운 물의 도시를 생각하는 것은, 한계를 드러내 온 도시 문명을 성찰하는 서구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 p.334, 「‘나가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