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펴보니, “말하면서 실천함”과 “행하면서 즐김”, 이것이 인자(仁者)가 행하는 바이다. 맹자(孟子)는 예와 악을 논하면서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데서 근본을 추론해서 인의(仁義)의 실제로 삼았으니, 인은 사덕(四德: 仁義禮智)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예와 악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전한서』 「적방진전(翟方進傳)」에는 이 문장을 인용하여 설명하면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베풀어 쓸 곳이 없으니, 인하지 않은데도 재주가 많은 것이 나라의 근심이라는 말이다.”라고 했다. 베풀어 쓸 곳이 없으면 예와 악을 행할 수 없으니, 비록 재주가 많더라도 다만 불선(不善)이 될 따름이다. 공자 당시에는 예와 악이 대부로부터 나와 참절(僭竊)함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고[相仍], 그릇됨이 옳음을 이기는 데 익숙해져 예와 악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p.53
살펴보니, 김방의 설명이 매우 자세하다. 『시경』 「국풍(國風)·제풍(齊風)·의차(?嗟)」에 “종일토록 과녁[侯]에 활을 쏘아도 정곡[正]을 벗어나지 않네.”라고 했으니, 정(正)과 후(侯)가 똑같이 하나의 과녁임이 분명하다. 『시경』 「소아(小雅)·보전지십(甫田之什)·빈지초연(貧之初筵)」의 「소」 에 『주례』의 정중(鄭衆)과 마융의 「주」를 인용했는데, 모두 정(正)이 곡(鵠) 안에 있다고 했다. 정이 곡 안에 있기 때문에 『시경』 「국풍·제풍·의차」에서 활을 쏘아도 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과녁을 맞히는 기술을 자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방이 인용한 가경백의 정이 곡 밖에 있다는 말은 잘못이다. 천자와 제후는 향사례가 없으니, 「향사례·기」에서 말한 웅후(熊侯)니 미후(?侯)니 운운한 것은 모두 연례(燕禮)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김방이 인용해서 연사임을 증명한 것이다.
--- p.178-179
살펴보니, 주나라시대 사람들의 병(屛)의 제도에는, 마땅히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한 소장(蕭牆)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종묘의 병풍은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예기』 「명당위」에서는 그것을 소병(疏屛)이라고 했다. 소(疏)는 새긴다[刻]는 뜻이다. 지금 인가의 조벽(照壁)이, 바로 그 모양을 본뜬 것이다. 『순자(荀子)』 「대략편(大略篇)」에 “천자는 외병(外屛)을 세우고, 제후는 내병(內屛)을 세우는 것이 예이다. 노문(路門)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밖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고, 노문 안에 내병을 세우는 것은 안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회남자』 「주술훈(主術訓)」에는 “천자가 노문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리기 위함이다.”라고 했으니, 병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주」에서 “임금[人君]”이라고 한 것은 천자와 제후를 겸해서 한 말이다.
--- p.285-286
살펴보니, 『춘추번로』 「초장왕(楚莊王)」에 “문왕의 시대는 백성들이 그가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무」음악이라고 한 것이다. 무(武)란 정벌한다[伐]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순임금이 「소」를 만들고 우왕이 「하(夏)」를 만들었으며, 탕(湯)왕이 「호(頀)」를 만들고 문왕이 「무」를 만든 것이다. 네 가지 음악이 이름을 달리하는 것은 각각 그 백성들이 비로소 자기에게서 즐거워하는 것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주(紂)왕이 무도하고 제후들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백성들은 문왕이 노여워함을 즐거워하면서 그를 읊조리며 노래한 것이다. 주나라 사람의 덕이 이미 천하를 윤택하게 해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그것을 「대무」라 하니, 백성들이 처음으로 좋아한 것이 무라고 그렇게들 얘기한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 p.32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