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 동안 스파턴버그 필리스의 단장으로 있으면서 구단이 한 시즌에서 패하자, 스스로를 패배자처럼 생각했다.
6개월 동안 밤낮없이 일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다. 내 자신을 완전히 소모시키면서 필리스를
호전시키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내가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 이룬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암을 고친다거나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했다면 이 정도로 허무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파턴버그 팬들을 위해 한 시즌 우승을 만들어내는 소박한 목표조차 이루지 못했다.
나는 빌 벡에게 전화해 내가 느끼는 혼란과 좌절, 그리고 환멸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팻, 이번 시즌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이 야구장에 다녀갔지?”
“11만 4천 명 정도 다녀갔을 겁니다.”
“관중들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나? 관중들이 즐거워했나? 그렇다면 얼마만큼 즐거워했지?”
“그럼요. 관중들은 아주 즐거워했어요. 관중들은 우리 팀의 승패와 관계없이 저한테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어요.”
“그렇다면, 이번 여름에 자네가 야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만큼의 즐거움을 스파턴버그 시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었겠나? 그렇다면 한 가지만이라도 얘기해 볼 수 있겠어?”
“아니오, 그토록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 거예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팻! 사람들을 즐겁게 한 일은 절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야.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면, 자네는
일을 잘한 거야. 성공한 거라고.”
빌 벡의 질책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물론 우리는 한 시즌을 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했다. 그리고 이익도 남겼다. 나는 그때부터 우리가 이기든 지든 내 귓가에서 빌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즐거움을 팔았다면, 그걸로 이미 성공한 것이다.
빌 벡은 좋은 멘토이자 친구이자 롤 모델이었다. 그는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거의 50년 동안
그에게서 얻은 교훈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장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 26-28p
우든이 89세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 압둘 자바가 월간지 [로스엔젤레스]에 그를 기리는 글을
썼다.
“그의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은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단지 농구를 변화시킨 위대한 감독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위대한 인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단지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는 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감독이자 멘토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인생에서 값진 교훈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지요. 우리는 그의 훈련과 그가 남긴 교훈들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스포츠 선수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 했던 것입니다. 나는 거의 매일 우든 감독이 남긴
교훈들을 생각합니다.”
존 우든 감독이 그의 선수들, 동료, 팬들에게 미친 영향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베테랑 스포츠 경영인인
나, 팻 윌리엄스에게도 똑같이 건전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동안, [뉴욕타임스]가 하버드와 콜롬비아 대학교 연구원들이 수행한 연구-250만 명의 학생들을
20년 동안 조사-를 1면에 소개한 적이 있다.
연구원들은 다른 모든 외부적인 요소를 배제한 뒤에 수준 낮은 선생님, 보통 수준의 선생님, 훌륭한 선생님을
구별하고, 그들이 학생들에게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들은 학생들의 대학진학 여부, 소득 수준, 임신시기, 그 밖의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삶을 분석했는데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10대에 임신할 가능성이 적고,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으며, 성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
이 연구결과는 학생 개개인과 사회 전체에게 광범위한 의미가 있다. 연구원들은 수준 낮은 선생님을 단순히 보통
수준의 선생님으로 교체할 경우 학급의 한 학생 평생 소득이 26만6천 달러 높아지는 점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 수준 낮은 선생님은 한 학급의 학생들의 평생 소득을 100만 달러의 4분의 1만큼 끌어내릴 수 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존 N. 프리드먼John N. Friedman은 “만약 당신이 수준이 낮은 선생님 한 명을 10년 동안 학교에
둔다면… 당신은 가설적으로 약 250만 달러의 수입을 잃는다는 뜻입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버클 씨와 오비애트 씨처럼 진정으로 사람들의 삶을 형성하는 훌륭한 선생님 또는 멘토는 그만큼의 가치를
학생들의 삶과 우리 사회와 경제에 더 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3장 변화의 시작 67-68, 76-77p
1998년, 한국의 신예 골퍼 박세리가 두 개의 메이저 대회인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로 전향한 지 고작 두 해 지난 스무 살의 어린 나이로, 박세리는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젊은 한국 골프선수들이 LPGA에서 쾌거를 이룬 ‘서울 시스터즈’의 붐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시스터즈’ 중에서 큰 활약을 보인 선수는 박인비 이다. 그녀가 아홉 살 때인 1998년, 부모님이 새벽 3시에 그녀를 깨운 덕분에,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맨발투혼으로 멋진 경기를 펼친 박세리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세리 선수의 우승은 그날 이후 어린 박인비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틀 후 박인비는 생애 처음으로 골프채를 쥐게 되었다.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우상을 본 지 10년이 지난 2008년 6월 29일, 박인비 선수는 2008년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LPGA대회에서의 첫 우승이자,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었다.
“박세리 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한국 골프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내셨거든요. 10년 전, 저는 텔레비전에서 그녀가 우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골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었죠. 하지만 저는 박세리 선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바로 골프를 시작했어요.”
박인비 선수가 박세리 선수를 보며 꿈을 키워왔던 것처럼, 지금도 몇 천 명의 젊은 소녀들이 골프채를 휘두르며 ‘제2의 박인비’가 되기 위해 꿈을 키우고 있다
5장 행동으로 말하라 137-138p
나는 암 진단을 받은 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한 마디 말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했다. 요즘 들어, 내게 걸려오
는 전화나 편지, 그리고 이메일에 더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내가 쓴 답장이나 인터뷰에서 했던 말 한 마디가 누군
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글을 쓰거나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말 한 마디의 영
향력을 염두에 두고 한 번 더 생각한다.
몇 년 전, 여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60대 초반에 들어선 여동생과 나는 델러웨어 주 윌밍턴
에서 보낸 유년시절을 추억했다. 그때 여동생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오빠 나는 커가면서 아무도 나한테 예쁘다고 말한 적이 없어. 엄마, 아빠, 오빠들, 친구들, 심지어 남자친구도,
"루스, 너 참 예쁘다. 그 옷을 입으니까 근사해 보여. 머리 그렇게 하니까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 말해 준 적이 없
어. 결국 나는 처음으로 예쁘다고 말해준 그 사람과 결혼했어.”
그 순간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피한 줄 알아라, 팻! 친오빠인데 그런 사소한 것도 몰랐다니’라고 생각했다 루스는 인정받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했는데, 왜 나는 동생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넬 생각도 못 했던 것일까? 왜 나는 '너 오늘 진짜 예쁘다!'라
고 말해주지 못 했을까.
6장 인생을 바꾼 한 마디의 말 154-155p
언젠가 나는 국제연설가 연합 컨벤션에서 아룬 간디와 같은 강단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의 그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그에게 차 키를 주며 말했다.
“차를 가지고 정비소에 가서 수리를 맡기고, 차를 찾을 때까지 영화라도 보러 가거라. 하지만 다섯 시에는 나를 꼭
데리러 와야 한다.”
아룬은 차 수리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극장은 영화 두 편을 동시 상영했고, 두 번째 영화가 6시
정도에 끝나게 되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그 영화를 계속 보기로 했다. 결국 그는 한 시간이나 늦게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30km로 쯤 되는 거리였다. 아룬이 운전하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니?”
“차 수리가 늦어졌어요. 기다려야 했거든요.”
“차 세워라.”
“왜 그러세요, 아버지?”
“집까지 걸어가마. 아버지로서는 실패한 인생이구나. 거짓말하는 아들을 키웠어. 정비소에 전화했더니 네가 6시가
되어서야 차를 찾아갔다고 하더구나.”
아룬은 차를 세웠고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다섯 시간을 걸었고, 어느새 칠흑 같은
밤이 되었다. 아룬은 차로 천천히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 일은 아룬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아버지가 그 먼 길을 걷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절대 잊지 못할
인성 교육이었다. 부모로서,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시킬 의무가 있고, 어른들의 말과 본보기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8장 부모의 자격 240-241p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