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홍수의 시대에서 초 단위로 반응하는 현란한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책이라는 것이 이제 꽤 낡은 방식의 매체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쉽고 빠른 것들에 익숙해져 글을 읽는 것에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학이사독서아카데미를 만났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강의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이 기다려지게 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이 구체화되어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은 8기 회원들의 그 경험을 엮은 결과물입니다. 지난해 강의를 시작으로 올해 마지막 교정까지 함께하면서, 이제야 아카데미가 마무리되는 기분입니다. ‘책 읽는 자들은 책이라는 배를 갈아타면서 스스로의 바다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카데미는 끝이 났지만, 각자의 바다에서 항해할 모두를 생각하니 마냥 아쉽지만은 않습니다.
2023년 8월
학이사독서아카데미 8기
회장 김경엽
---「머리말」중에서
지혜로운 노인은 독자를 자연스럽게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화 속에서 소년에게 적절한 시기에 인생과 성공과 행복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말이다. 소년이 스스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순간과 같이. 거창하지 않고 문장이 화려하지도 않다. 어렵지 않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삶의 지혜를 주는 책이다.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행복과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지도를 제시한다.
---「김창희, ‘현재라는 선물-『선물』, 스팬서 존슨, 랜덤하우스코리아」중에서
책에서 보르헤스는 지적인 성실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진정한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보르헤스가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던 책 『신곡』은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의 보고가 된다. 「연옥편」의 피아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서머싯 몸이 『인생의 베일』이라는 명작을 남긴 것도 어쩌면 불행하다고 생각한 지옥에서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중략) 책은 어떤 목적에서 읽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책은 표지가 예뻐서 읽고, 어떤 것은 첫 문단이 매력적이라 보게 된다. 그저 이유 없이 끝까지 읽다 보면 좋아지는 책도 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내 안에 꼬깃꼬깃 숨겨두었던 비밀이 살포시 고개를 드는 책도 있다. 어떤 책을 읽는지는 곧 그 사람이다.
---「박소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잃어버렸으니,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해-『말하는 보르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민음사」중에서
그러고 보니 『변신』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는가. 20세기 초에 던진 카프카의 질문을 21세기를 지나는 우리가 받아야 한다. 적어도 카프카의 시절만큼 일벌레와 밥벌레로 출구가 막혀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답변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이유와 존재의 목적을 카프카에게 다시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레고르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레고르에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개인이 직면한 존재적인 고통과 사회적인 억압,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도끼(책)로 내면의 무지를 깨뜨려야 한다. 어영부영하다 자칫 그레고르처럼 일벌레나 밥벌레로 양극단에서 끝장날지도 모른다.
---「백무연, ‘일벌레와 밥벌레-『변신』, 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중에서
박종채는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그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도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 자식이 아버지를 곁에서 보면서 기록하였기에 다소 객관적인 글일 수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아들이었기에 내용이 더욱 사실적이고 자세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장대한 기골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정서를 가졌는지도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연암 박지원의 삶에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연암의 시대가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 따뜻함과 인간적인 모습,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 그의 문장 등은 시대가 지나도 결코 낡거나 녹슬지 않았다.
---「안영희,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박지원을 만나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돌베개」중에서
꿈을 꾸며 살아간 조핵공, 딸깍발이가 토해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덩달아 조핵공이 되고 딸깍발이가 된다. 2023년의 딸깍발이는 어떤 모습일까.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일까, 염색하지 않고 들깻가룻빛 머리를 한 그대의 모습일까, 손 일기를 쓰는 당신일까. 대부분 사람이 어리석어 남과 비교하다 시간을 허비한다. 인간이라면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필수문제를 쾌활하게 풀고, 꾸준히 한길, 한글 연구에 집중한 그의 삶, 삶과 하나가 된 스물두 꼭지를 읽었다. ‘골계미’의 진수를 느낀다. 이 책은 그의 외모처럼 작고 얇지만, 내용은 93년간 산 삶의 흔적이 깊게 얽히고설켜 그윽한 울림이 있다. 조핵공은 그 시절 제일 키가 컸었던 김부귀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어서 읽어보기 바란다.
---「이풍경, ‘한길-『딸깍발이』, 이희승, 범우사」중에서
우리는 매혹을 갈구하면서도 여전히 통속적인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짜릿하고 강렬한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갈망하지만 매혹은 언제나 찰나였고, 책임이라는 무게만 남는다. 그래서 인생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외면한 채 찰나의 사랑을 선택한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지도. 혹시 매혹의 세상에서 뛰쳐나와 일상적인 세계에 진입한 소설 속 그녀들을 지켜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지는 않았는가. 하지만 이렇게 한번 반문하고 싶다. “너의 행복을 왜 나에게 물어?” 도덕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타인을 의식하며, 지극히 통속적인 세상에 안주하기를 바라는 이 시대에 매혹이 남기는 잔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는 작품이다.
---「정규진, ‘미치도록 매혹적인-『태연한 인생』, 은희경, 창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