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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외전(外傳)

차마고도 외전(外傳)

현대시세계 시인선-15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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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28*210*20mm
ISBN13 9791165121518
ISBN10 116512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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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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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걸을수록 멀어지고
오를수록 오늘의 끝으로 다가가는
깎아지른 빌딩의 그림자 꼿꼿한 도시
자신을 되비치는 유리창 벽들 빛나고
또 빛나는 길이 시작하고 끝나는
인도 앞과 뒤와 옆, 또 그 앞과 뒤와 옆
그 어디고 천 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니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한다
뒤를 돌아보는 후회 따위는 남기지 말고

아하, 추락은 가능해도
상승이나 횡단과 추월은 허용되지 않는
어떤 것도 그림자 남기지 못하는
금빛 햇살이 소리 없이 녹아내리는
바람마저 툭툭 끊겨 가쁜 숨소리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도시 한복판

백척간두, 아찔한 빌딩 꼭대기
발가락 닳고 짓물러 뭉개지기 전에
도착한 어느 곳
그저 삼보일배 고행을 강요하는데
걸음은 결코 더디어지지 않는다
벼랑이다 걸을수록 기어갈수록
멀어진 세상과 가까워지는
허공에 발 딛듯 안전하게 걸어야 한다
---「차마고도 외전(外傳)」중에서

살포시 실바람이 타는 천 갈래 구름의 현악(絃樂)
봄볕 좋은 물가에 앉아 귀에 고이는 소리 담는 게지

소리는 발가락을 적시고 무릎으로 허벅지로 굽은 등 짚고 척추 따라 정수리 거쳐 지그시 감은 눈동자 속으로 차가운 심장 한가운데 맴돌고 맴돌아 다시 목뼈 타고 백회혈 뚫고 더욱더 위로 오르고 올라서 동토(凍土)가 품었던 햇살의 추억에 닿지 그 하늘 끝에 되돌려놓는 게지 자잘하고 소소한 파문 무궁무진의 허공 뒤덮는 게지

파르르 파르르
흐르고 오래 흘러서 오래도록 길게
갓 피운 연두의 여운, 결코 멈추지 않는 게지
---「파르르 연두」중에서

며칠 전부터 듣기 시작한 비가 긋지 않네
늦은 밤부터 이른 낮까지 퍼붓는 빗줄기가 천지에 후줄근하네
흠뻑 젖은 삭신 몽롱몽롱 구름 속을 걷듯 헤매네

낮은 곳, 깊이를 모르는 곳
어두운 곳, 꽃향기 더러운 곳
그 어디에 떨어져도
소리를 울려 침묵이 되는

새벽 동트기 시작한, 딱 한순간 하늘이 맑게 개네
아직도 떨어지다 만 빗방울 몇 개 어디선가 떨어지네
갈증 길고 길어 메말랐던 목청마저 감미로워지네
---「궁상각치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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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놈 조현석은 아직도 서울에서 불법체류 중이다. 아무도 그에게 고통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고통이 고통인 줄도 모른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고통의 근원에는 “퇴색한”, “갑갑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가족의 부재가 자리잡고 있다. 소식이 오리무중이었던 남동생, “부처님 오신 뒷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와 감악산 아래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말라가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그는 천애 고아가 되었다. 여간해선 가족사를 드러내지 않던 그가 이번 시집에선 내밀한 가족사를 덤덤하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왕십리 집에서 홀로 살다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는 대신 안으로 더 단단해진다. 삶은 찰나이고, 괴로운 것이다. 괴로움과 고통은 살아 있기에 생겨나고, 집착과 탐욕을 버리면 인생은 즐거워진다. 그가 가끔 절을 찾아 합장하고, 만인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이유다. “낙타가 사막을/ 길 안 잃고 가는 건/ 울음을 따라가기 때문”이고, “그 낙타 울음소리 어디서든 들리는 듯”하기에 불법체류자 조현석은 오늘도 고통을 시로 승화시킨다.
-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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