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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38쪽 | 214g | 130*205*20mm
ISBN13 9791162433966
ISBN10 1162433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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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신을 굼벵이라고 한다. 느리지만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기어가는. 시인은 밥도 제 손으로 먹을 수 없고, 물도 제 손으로 마실 수 없으며, 뒤처리도 제 손으로 할 수가 없다. 사지 마비인 그에겐 말과 생각, 기쁨과 슬픔만이 오롯이 존재한다. 감정과 이성이 너무나도 또렷하다. 이 자각으로 하여 늘 아프다. 시인은 갇힌 방에서 세상 밖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는 분노하고 자책하고 절망하고 슬퍼하며 조용히 울었다. 깊은 내면의 울음이 어디론가 은하수가 되어 흘러갔다.

어느 날, 시인은 입에 막대기를 물고 자판을 하나씩 하나씩 누르기 시작했다. 화면에 글자들이 어지러이 찍혀 나갔다. 모래사장 위에 남겨진 새 발자국처럼. 비록 뒤뚱거리는 걸음마지만 또렷이 자신의 흔적을 찍어놓았다. 그 길이 바로 시인이 걸어야 할 숙명의 길이었다. 시인이 태어난 곳은 안개의 도시 춘천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쓴 시들은 밤새 썼다가 지운 수많은 편지처럼 안개 속에 지워진다. 안개는 감춤이지만 마음의 아늑함이기도 하다. 그는 이 안개가 곧 걷히리라는 걸 알고 있다. 종이학을 타고 아내와 훨훨 날고픈 시인아.
- 최돈선 (시인)
그렇기도 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순식간이지만 우주의 시간은 상대성 이론에 따라 유연하게 흐르며 가히 천문학적이기도 하다. 눈 한 번 깜빡거리는 데 걸리는 시간인 ‘순瞬’과, 숨 한 번 내쉬는 데 걸리는 시간인 ‘식息’의 순식간 동안에, 그보다도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0.23초 동안의 시간에, 우리는 사랑과 절망을 느끼며, 기쁨과 슬픔을 체험하며, 상상의 구름 세계와 환락적 세속을 들락거리며, 몽실몽실한 꿈을 꾸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며 깨기도 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0.23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황원교 시인에게는, 그리고 확장된 그의 시 세계를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 최계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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