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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짓다

: 서정민 에세이 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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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180*245*30mm
ISBN13 9788964479285
ISBN10 896447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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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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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글처럼 짓고, 글은 그림 그리듯 쓴다

2022년 서울에 1년 체재하면서는 늘 쓰던 에세이와 계속 연습 중인 그림을 더욱 적극적으로 연결시켰다.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그림을 그리며 든 생각, 그림을 그리는 마음, 오랜 기억, 회상, 사고의 일부를 짧은 글로 써서 붙였다. ? 이 책은 그림은 쓰고 문장은 그린다는 기분으로 만들었다. 역설적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직 자신 있게 그림을 그린다고는 말하지 못할 듯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전, 혹은 그린 그림을 보면서, 글을 써서 덧붙일 때는 오히려 문장을 그림 그리듯 쓰곤 했다. 그래서 이 에세이 화집은 그 중간의 이미지, 즉 그림을 짓는다는 어설프면서도 진솔한 느낌을 제목으로 삼았다.
---「머리말」중에서

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는다. 봄은 활력이나 활력은 보이지 않는다. 연이어 봄꽃, 그중에서도 매화와 동백을 거듭 그린다. 지조와 소신과 절개와 당당한 기개가 모두 사라져 가는 시대의 아픔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한옥 앞뜰에 변함없이 절개와 기개로 피어난 붉은 매화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 새로운 다짐이 되었으면 한다.
---「1장_기억, 봄날 같았던 시절과 사람들의 향수(鄕愁)」중에서

초겨울, 햇살이 부시다. 그런데 어느덧 봄날을 꿈꾼다. 사람이 이렇게 조급하고 변덕스럽다. 보내는 가을을 아쉬워한 적이 언제인가. 더구나 오는 겨울에 설레며 눈발 날리는 겨울 풍경을 기다리며 그림도 그렸다. 아직 겨울은 다 오지 않았다. 특히 나는 시간과 계절에 늘 앞서가는 성정이다. 공간을 이동해 다니기도 즐기지만, 그보다 시간을 전후로 가로지르는 것을 즐긴다. 겨울이 미처 다 오기도 전에 봄을 꿈꾼다. 고즈넉한 봄날의 창을 이번엔 마당에 서서 바라본다. 그렇게 한가롭고 고요하며 평화로울 수가 없다. 봄날이 다시 올 때 햇살 가득 빛나기를. 봄 햇살 따사로울 때, 바람이 부드러울 때 모두에게 평화 가득하기를 미리 꿈꾼다.
---「2장_ 일상, 내 삶의 주변을 그리다」중에서

봄볕이 화려하다. 이제 일본의 벚꽃은 만개이다. 꽃은 참 신비롭다. 밝은 마음으로 보면 그 빛이 더 빛나고, 어두운 마음으로 보면 그 빛이 더 진하다. 우리 마음을 제일 잘 받아들이는 물상이다. 오늘 꽃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심상함으로 본다. 무심하게 너 거기 피었는가 하고, 단 꽃을 한 묶음의 군락으로 바라보지 않고 힘겹게 피어오른 꽃 가지를 유심히 가까이 본다. 순간 아름다움에 다다라 힘껏 피어나기 위해 혼신을 다해 목숨을 건, 그 미의 정점에 숨이 딱 멈추며 무뚝뚝하고 시무룩하던 마음에 눈물이 어린다. 눈물 눈으로 보는 꽃은 오늘 그림처럼 흐릿한 형상이다. 배경도 흐리고, 정작 초점을 맞춘 꽃마저 형이 뚜렷하지 않다. 정녕 마음으로 보는 꽃이다. 이 봄에도 어김없이 꽃이여 그대, 거기 그렇게 피었는가. 물감을 10분의 1도 쓰지 않았다. 젯소, 연분홍, 검정과 황토색, 모두 아주 조금 쓰는 둥 마는 둥 했다. 캔버스 위의 서양화풍이 분명한데, 도화지 위의 흐린 수채화, 아니면 화선지 위의 엷은 채색의 동양화 같다. 그린 그림을 다시 심상하게 무뚝뚝하고 시무룩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3장_ 일본, 상념과 풍경들」중에서

떠나가는 배도 있다, 막 포구에 돌아온 배도 있다, 오랜 시간 일렁이며 그곳에 머물러 선 배도 있다. 나는 배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모든 것이 때로는 머물러, 서 있는 모습에 더 마음이 갈 때가 있다. 특히 배는 힘차게 닻을 올리고 돛을 돋우어 나아가는 배보다, 머물러 정박해 서 있는 배에 늘 정서가 실린다. 그래서 어쩌면 그림으로도 포구에,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자주 그렸다. 요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은 나에게 가장 이국적이며 낭만적인 풍광의 하나이다.이곳저곳 여행 중에 요트가 늘어서 일렁이는 풍경을 자주 보았다. 특히 미국 여행에서는 늘 만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 기억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모습은 캐나다 밴쿠버의 스탠리파크이다. 푸른 하늘, 더 푸른 바다, 흰 구름, 흰 요트가 펼쳐진 잔잔한 추억이다. 머물러 일렁이는 배는 평화이며 쉼이며, 고요의 상징처럼 마음의 평온을 부른다. 오늘 그림은 형태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 느낌과 색감만으로 그린다. 붓에 물감을 묻혀 그냥 툭툭 찍는다. 마음속에만 머물러 선 요트를 그린다고 생각할 뿐이다, 마음이 더 푸르고 평화롭길 바라면서.
---「4장_ 여행, 그 냄새, 그 향기」중에서

낮이면 밤을 생각하고, 밤에 찬란한 아침을 떠올리자. 화창한 봄날에 지난겨울을 돌아보고, 겨울이면 빛나는 봄을 꿈꾸자. 새해 벽두에는 유서를 쓰고, 한 해가 저물 때 연서를 쓰자. 비바람 거칠 때 잔잔한 초원의 꽃길을 바라보고, 바람이 부드럽고 푸르른 날에 눈보라 몰아치는 들판을 상상하자. 내 나름 지금까지 평생을 살면서 거듭 되뇌어 온 역설적 마음의 형언이다. 오늘 따뜻한 봄날 밝은 햇살 아래 마음을 되돌아 지난 겨울밤을 회상한다. 겨울나무, 진보랏빛 하늘, 은가루를 뿌린 하늘가. 결과적으로 그림이 어둡다. 그림은 마음의 표상이며, 색감은 정서의 채도 그대로이다. 그래도 빛나며 쏟아지는 별빛이 희망이다.
---「5장_ 생각, 그림 속에 담긴 나의 이야기」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저자의 생각은 그 넓이와 깊이가 가히 상상불허이다. 게다가 그 생각의 방향조차 어디서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는 정도다. 그런데 그의 전공이 역사학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역사학이 저자의 전공이 맞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은 가까운 지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했음직하다. ‘이런 사람은 원래 예술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인문학자의 소양이 이런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래서일까,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저자는 오래전부터 꿈꾸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짓다”는 글이 앞서기도, 때로 그림이 앞서기도 하며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 지은 그림-글이다. 그 사유의 여정에 동행하여 깊이를 가늠할 몫은 독자에게 있다.
- 김영호 (〈첫 독자로서 감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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